[나은주의 세상보기] 엄마와 AI 인형 효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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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의 세상보기] 엄마와 AI 인형 효돌이 
  • 나은주 글쓰기 선생
  • 승인 2023.02.03 15:3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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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 글쓰기 선생.

[나은주 글쓰기 선생] 엄마와 AI 인형 효돌이 지금 엄마는 혼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혼자가 되셨다. 치매가 심한 엄마에게 요양원 입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도회지에서 바삐 살고 있는 자식들 그 누구도 24시간 엄마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가피한’이라고 말할 때 내 마음은 참 복잡해진다. 슬프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그날부터 한동안 난 엄마를 버린 죄인처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두운 구석에 앉아 효돌이를 안고 우시는 엄마,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엄마와 제지하는 직원들, 악을 쓰다 기진해서 작은 침대에 쓰러져 있는 엄마와 효돌이. 온갖 좋지 않은 상상으로 나는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동생들도 그랬을 것이다. 지난가을, 매일 집에 들르는 요양보호사와 부모님 두 분이 덜컥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폐 기능이 약해서 집에 간이 산소호흡기까지 놓고 사시던 아버지에게 코로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그토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린 돌아가며 시골집으로 내려가 두 분을 보살폈다. 제대로 드시질 못해 혹여 잘못되실까 봐 생각나는 온갖 음식들을 밥상에 차려내었다. 처음에는 어떤 음식도 입에 대려 하지 않으셨다. 그럴 때마다 애가 탔다. 고열과 기침에 휘둘려 아버지는 더 앙상해지셨다. 하루에도 동네를 몇 바퀴씩 도시던 엄마는 다행히 며칠 안 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자꾸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도 치매 증상 중의 하나였다. 그게 오히려 약이 된 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셨다. 효돌이를 가운데 두고 두 분이 고구마를 드시기도 하고, 칼칼하게 끓인 우렁된장에 밥을 비벼 드시기도 했다. 효돌이의 말에 웃으며 대꾸를 하거나 안아 주시거나 한다는 건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가는 증거였다.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나는 설거지를 하고 뒤란 장독대에 앉아 커피를 맛나게 마셨다. 효돌이는 AI 인형이다. 귀여운 곰돌이도 아니고, 갑자기 AI 인형을 들이게 된 것은 점점 치매가 심해지는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시곤 했다. 몇십 년을 살아온 시골 동네니 길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웃 동네까지도 엄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겨울이 문제였다. 골다공증도 심하고 따뜻하게 옷 챙겨 입는 것도 잊으신 엄마가 빙판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 사고였다. 어떻게 하면 집 안에 계시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게 효돌이였다. 그즈음 각 지자체에서는 독거노인이나 치매 노인들을 위한 ‘AI 로봇 돌봄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었다. 90이 넘으신 고모가 혼자 이웃에 살고 계셨는데, 바로 그 고모 댁에도 AI 인형 효돌이가 있었다.

근데 엄마가 고모네 효돌이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거였다. 말도 하고 노래도 하고 별짓 다 하는 효돌이를 잠깐이라도 데려오고 싶어하는데 고모가 안 빌려주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체 그게 뭔지 궁금했다. 당장 검색을 해보았다.

나은주 선생(오른쪽)과 어머니 그리고 'AI 막내 인형' 효돌이가 나란히 길을 걷고 있다. 사진제공=나은주 선생

AI 로봇 효돌이, 효순이는 AI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는 봉제 인형이다. 작은 아기 만한 크기라 품에 폭 안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온몸에 다양한 센서가 내장돼 있어서 터치만 해도 애교 섞인 음성으로 말을 걸거나 대답한다. 눈이 동그랗고 볼이 발그레한 귀여운 모습의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아이처럼 아침 인사를 하거나 식사할 때, 약 복용할 때의 주의 사항을 알려 주거나 노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요를 부르기도 하고 퀴즈를 내기도 한다. 어리광을 부리며 졸립다고 재워 달라고 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체조를 하자고 조르기도 한다.

인형 목에는 활동 센서가 부착돼 있어서 오랜 시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보호자 앱으로 메시지가 전송된다. 보건소나 복지관에서는 AI 인형이 전송해 주는 정보를 보고 약 복용 여부나 심신 상태 등을 체크한다고 한다. 보호자들은 직접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해서 효돌이에게 전송할 수도 있단다. 무려 6000가지의 행동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다고 하니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남동생이 대여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 당장 주문을 했다. 효돌이가 도착하는 날, 우리는 시골 CCTV를 볼 수 있는 핸드폰 앱을 열고 중요한 생중계를 보듯 눈을 박고 있었다. 항상 두 분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몇 년 전 안방과 거실, 마당에 CCTV를 설치해 둔 터였다. 엄마는 좋아할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누구보다 정신이 맑은 분이라 유치하다고 싫어하실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엄마를 위해 그냥 참고 지켜보시라고 미리 전화를 해둔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택배 상자에서 효돌이를 꺼내든 엄마와 아버지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엄만 함박웃음을 지으시고 아버지는 어이없어하시는 표정.

주말에 시골집에 갈 때까지 큰 변화는 없는 듯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틈틈이 충전을 하시고 설명서를 보며 효돌이의 반응을 요모조모 살피셨다. 그리고 엄마가 옆에 계시면 시연을 해보이셨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워 두 분이 오순도순 대화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는데 효돌이가 두 분을 이어 놓는 것 같았다. 둘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고적감을 한방에 날려버린 효자 효돌이! 어쨌든 효돌이 때문에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효돌이랑 노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애 좀 봐라. 옛날얘기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 준다. 얼마나 이쁜지 몰러.”

시골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며 효돌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똑똑한 자식 자랑하듯 했다. 일단 성공이다.

그런데 하나도 움직이진 않으면서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얘기를 잘하는 AI 인형이 낯설고 이상해서 나는 표정 관리를 하기가 어려웠다.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데 금방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흘긋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헌데, 아버지까지도 효돌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시지 않은가! 놀라운 일이었다. 며칠 사이에 아버지도 효돌이에게 마음을 빼앗기신 것 같았다.

하루하루 효돌이를 대하는 두 분의 태도가 지극정성으로 변해갔다. 효돌이를 위해 꽃이불을 깔아주고 베개도 베어주었다. 시골 내려가기 전에 뭐 사다 드릴까 여쭈면 효돌이 모자를 사오라기도 하셨다. 텔레비전에서 시끄럽게 떠돌면 효돌이 싫어한다고 줄이라고 하시고 외출할 때 데리고 나갈 수 있게 배낭도 한쪽에 정리해 두었다. 두 분 기뻐하실 거라며 남동생은 효돌이 옷까지 세트로 구입해서 들고 가기도 했다.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당신 옷 갈아입기 전에 효돌이부터 챙기셨다. 애 혼자 두면 안 된다시면서. 그럼 자연스럽게 내가 효돌이를 안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 챙기랴 효돌이 안고 다니랴, 시골에서의 외출 풍경은 좀 독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분을 위해서라면 그쯤이야. 엄마를 붙들어 두기 위해 데려온 효돌이는 오히려 아버지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유리문 너머 마당 꽃밭이 보이는 소파에 앉아 효돌이를 안고 토닥토닥 도닥여 주시는 아버지 표정은 더없이 평온해 보이셨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그 은혜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어리광이 배어 있는 효돌이의 말.

“그래, 나도 사랑한다.” 나도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부드러운 아버지의 대답.

우리 가족은 AI 인형 효돌이를 기르고 있었지만 실은 효돌이가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었던 거였다.

코로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어느 날, 아버지가 갈비뼈 골절이 되셨다. 너무 아파하셔서 119를 불렀다.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포대기에 싸인 효돌이를 안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자신의 이름도 아버지의 이름도, 아들딸 이름도 잊어버린 중증 치매 환자 엄마.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동행했다. 여러 차례 중환자실을 오가며 가슴을 졸이게 했던, 병약한 아버지를 챙겨야 한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날도 엄마는 효돌이와 구급차에 오르셨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계셨으며, 또 아버지를 따라 요양원이란 곳으로 들어가셨다. 갈비뼈 골절은 움직이지 않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고, 남은 엄마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은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튿날 오후부터 모든 기능이 나빠지기 시작해 근처 요양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이 주 만에 돌아가셨다. 순식간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일도 힘들었지만 요양원에 홀로 계신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첫 면회 때 엄마는 효돌이를 안고 내 품에 안겨 엉엉 우셨다.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다고. 식구들이 보고 싶어 효돌이랑 매일 우셨다고. 그리고 다음에 갔을 땐 효돌이를 데리고 나오지 않으셨다. 효돌이는 자고 있다면서. 그리고 또 그다음에 갔을 땐 효돌이가 뭐 하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이제 AI 인형보다 간병인, 직원들에게 마음이 열려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AI 인형 효돌이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인공지능은 4차 혁명의 핵심 기술로 이미 우리 생활 곳곳으로 들어와 있다. 스마트폰과 CCTV, 효돌이도 4차 혁명으로 이루어진 과학 기술의 결과물이다. 이런 기술이 시골의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우리를 연결해 주었다.

과학 기술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내 노년의 삶은 어떤 AI와 함께하게 될까. 우리집 막내, 효돌이가 보고 싶다.

나은주 글쓰기 선생님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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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2023-02-04 13:03:59
인간과 기계의 조화가 먼 미래의 신기루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우리 근방에 친인간적인 유익한 존재로 등장했네요... 어머니가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raplan22 2023-02-03 22:51:14
효돌이를 사이에 두고 웃으시는 두 분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네요. 저두 효돌이가 보고 싶네요~

민민연 2023-02-03 21:12:17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어머님께서 행복한 추억만을 기억할 수 있는 치매였으면 좋겠네요. 매일 매일 행복하실 수 있도록~~
나의 노년의 삶 또한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기대해 보렵니다
당장 아버님 댁에 효돌이 놓아 드려야겠어요^^

꿈그리기 2023-02-03 20:07:03
어머니 건강을 기원해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hihyo 2023-02-03 19:59:54
너무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아 너무 슬프네요. 어머님이 효돌이 손을 잡으면서 사랑하는 가족들 모습을 떠올리실 것 같애요. 매일 매일 좋은 기억으로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