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은주 글쓰기 선생님] 혹시나 마지막이지는 않을까…요양병원으로 가는 내내 나는 손수건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가슴이 떨렸다. 가족들 한 번씩 다녀가는 게 좋겠다는 간호사의 말을 아침 일찍 동생이 전했다. 나는 서둘러 기차를 타고 온양으로 내려갔다. 엊그제 왔을 때 아버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난 여기서 죽어 나가지 않을겨. 내 발로 걸어 나갈 거여.”
그런데 하루 한나절 만에 아버지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거였다. 어느 정도로 나빠졌다는 걸까?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도 치매 엄마를 건사하며 살아오신 아버지신데 설마. 고개를 흔들면서도 마음 저쪽에서부터 고개를 드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요양병원 자동문이 무겁게 열렸다. 여동생과 나는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다. 여러 번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순서가 헷갈렸다. 선명하게 드러난 한 줄짜리 검사기를 안내 데스크의 간호사에게 보여 주었다. 2층 병동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통로가 참 길게 느껴졌다. 무릎이 굳은 듯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둔중한 연회색 철문을 밀고 들어섰다. 나이든 수간호사가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했다.
“약을 쓰는데도 어제 저녁부터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산소포화도도 낮아지고 있어요. 모든 수치가 좋지 않습니다.”
206호.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산소마스크를 끼고도 힘들게 호흡을 하고 계셨다. 얼굴이 창백했다.
“아버지, 아버지이……”
가슴이 턱 막혀 나는 울음 섞인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수액이 꽂혀 있는 앙상한 손을 어루만졌다. 우리 아버지, 얼마나 힘드실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일이 힘들어 야윈 아버지의 볼이 움푹 패였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산소 한 줌이라도 필사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아버지의 손상된 폐. 그 고통이 아버지의 가녀린 몸 구석구석을 후벼대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뜨셨다. 그리고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셨다. 아버지의 눈빛이 많은 얘길 하시는 듯했다. 한순간에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많이 힘드시지요?”
나는 목소리를 차분하고 부드럽게 하려고 애쓰며 아버지의 이마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 눈빛, 이 따스함을 또 느낄 수 있을까? 머리칼은 부드러웠다. 우리 아버지가 이 고통을 얼마나 견뎌내실 수 있을까? 마음이 급해졌다. 얇은 종잇장처럼 기운을 잃어가는 아버지에게 더 늦기 전에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이…….”
아버지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내 아버지를 불렀다. 울음 때문에 내 말이 뭉개질까봐 가슴을 눌러 눈물을 참으며.
“아버지, 저희 사 남매 낳고 길러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 덕분에 잘 자라 이렇게 온전히 살게 되었어요. 맛있는 거 저희 입에 먼저 넣어 주시고 따뜻한 옷 먼저 입혀 주신 은혜 잊지 않을게요. 아버지 덕에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아버지. 사랑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 말은 흐느낌과 함께 쏟아졌다. 참고 참았는데도 눈물이 이불 위로 뚝뚝 떨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손수건으로 가만가만 눈물을 닦아드렸다. 여동생도 아버지의 손과 가슴을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랑 함께 산 세월 감사했어요. 저희 착하게 잘 길러 주셔서 고마워요. 아버지도 저희 아버지로 사시면서 재미있으셨죠? 괜찮은 인생이셨죠?”
아버지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엄마 걱정은 마세요. 저희가 잘 모시고 있다가 아버지 곁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두려워하지 마시구요. 저희가 아버지 지켜 드릴게요. 사랑해요, 아버지!”
여동생의 눈물 섞인 인사를 듣는 아버지의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버지의 슬픔을 닦아내듯 눈물을 조심조심 손수건에 담아냈다. 아버지의 눈물과 내 눈물이 만나 손수건이 축축했다. 아버지가 애잔한 눈빛으로 우리 자매를 바라보셨다.
“고맙다…”
아버지 목소리가 산소호흡기 너머로 가늘게 떨려 나왔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고맙다신다. 가슴이 뜨거워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운다는 건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아 애써 삼키면서 아버지 손을 꼬옥 쥐었다. 아버지가 계셔서 우리가 존재했고 우리가 있어서 아버지가 존재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끝에 서서 나누는 마지막 인사. 자식 넷을 키우느라 마디마디가 휜 아버지의 손이 내 손을 다독였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며 간호사가 등을 밀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일 또 만나자고. 아버지가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셨다.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버지의 눈길이 나를 불렀다. 나는 자꾸 돌아보며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깊이, 오래, 우리를 바라보시던 아버지.

다음 날 새벽,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먼 곳으로. 그리고 우리의 마음으로 더 크게 들어오셨다.
우리는 만날 때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의 순간이 올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 누구와도.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겠지만 마지막 순간을 위해 제대로 잘 살아야겠다. 나보다 다른 이들을 아끼며 살아야겠다. 나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게 살아야겠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면 ‘이별’의 순간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내 아버지는 그렇게 사신 분이셨다.
갓 지은 밥을 풀 때, 된장찌개를 끓일 때, 새털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볼 때면 문득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그때마다 나는 꽃무늬 손수건을 쓰다듬는다. 아버지와 나의 눈물이 만난, 아버지의 85년 인생과 나의 60년 인생이 합쳐진, 그리고 우리의 이별을 기억하는 꽃무늬 손수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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