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 혁명 전야의 상황 그린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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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러시아 혁명 전야의 상황 그린 『부활』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8.12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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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말년의 대작…원죄와 회개, 깨달음의 과정을 그리스도적 관점으로 서술

 

『부활』(Воскресение, 영어명 resurrection)은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말년 대작으로, 러시아 혁명 전야의 상황을 그려냈다.

스토리는 귀족출신인 네흘류도프 공작과 카추샤 마슬로바 라는 매춘부 사이에 얽힌 원죄와 회개, 깨달음의 과정을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그렸다. 소설 내용 면면에 혁명 전야의 제정 러시아의 제도적 모순과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여 있다.

소설의 발표년도는 1898~1899년. 소설 발표후 곧이어 1905년 1월 22일 하루에 3,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피의 일요일 사건이 터졌고, 12년후 1917년 세계 최초의 공산혁명이 발생한다.

톨스토이는 『부활』을 통해 제정 러시아 사회를 전면 비판하고, 황제 통치가 오래가지 못할 것을 예언했다.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카츄샤에 대한 회개의 일환으로 자신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톨스토이는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혁명후 소비에트 정부는 토지 사유제도를 폐지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새로운 러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수 있다.

톨스토이는 또 개인들 각자의 갱생을 통해 제도적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소설 말미에 네흘류도프가 신약성서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듯이 톨스토이는 복음서에서 자기 삶의 지표를 찾았고 무저항과 비폭력을 신조로 삼았다.

 

▲ /사진=김인영

 

<창작과정>

 

『부활』은 톨스토이가 친구이자 저명한 법률가인 코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원래는 「코니의 수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1887년 톨스토이는 친구 코니에게서 옛날 페트르부르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내용은, 「부인의 친척 청년이 놀러 왔다가 그녀를 유혹해 임신하고, 그녀는 매춘부로 전락한다. 그녀는 돈을 훔치다 4개월 형을 받는데 그 청년이 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청년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다 그녀와 결혼하려 했으나 그녀는 감옥안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고 만다.」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도 젊은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하며 숙모 집의 하녀와 관계를 맺었고, 그녀가 타락하여 일생을 망친 일도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감동한 톨스토이는 1889년에 소설 창작에 착수하여 10년 만인 1899년에 완성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게 톨스토이의 3대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 정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톨스토이는 1901년 정교회에서 파문당했다.

 

 

<줄거리>

 

카추샤 마슬로바가 재판정에 섰다.

카추샤는 네흘류도프의 고모네 집에서 양녀 명목으로,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하녀 노릇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녀는 18세 소녀 시절에 멋지게 생긴 네흘류도프 공작을 사랑했다. 네흘류도프는 군에 입다한 이후 이기적 인간으로 바귀었고, 고모네 집을 떠나기 전날 밤에 충동적으로 그녀를 범했다. 그가 떠난 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고모는 화가 나서 그녀를 쫓아냈다.

젊은 시절의 자유주의적 사고를 버린 네흘류도프는 남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으로 변했다. 그는 카추샤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카추샤는 자살을 생각했지만 아기를 위해 목숨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아이는 곧 죽었고, 카추샤는 네흘류도프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매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매춘부 생활을 하던중 카츄사는 그녀를 찾아온 시베리아의 부유한 상인을 독살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녀는 죄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어느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 네흘류도프는 그 재판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카추샤에 대한 재판임을 알게 된다. 카추샤의 순결을 범한 그는 그 안개 짙은 눈 녹던 날 밤의 추억을 되새겼다.

네흘류도프가 보기에 카추샤의 무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그녀의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에 맞서 그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곧 나와 그녀와의 관계를 알게 될 터이지" 하는 걱정을 우선했다. 배심원단은 카추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지만, 수속상 서식을 갖추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재판관은 그녀에게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했다.

그 결과를 보고 네흘류도프는 깜짝 놀랐다. 그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을 떨었고, 그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네플류도프는 '영혼의 대청소'에 착수했다. 그는 카추샤의 타락이 자신의 비열한 행동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 속에서 자신의 방탕하고 비도덕적인 삶을 반성한다. 지금까지 지속해온 유부녀와의 아름답지 못한 관계를 끊고, 또한 결혼 상대로 사귀어온 코르차진 가의 처녀 미시와도 인연을 끊는다.

네흘류도프는 카추샤에 대한 회계를 사회적, 제도적 문제로 확대한다. 땀 흘리는 농민은 가난하게 살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지주와 귀족은 농민을 착취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현실의 부당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공작 집안에서 물려받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준다.

카추샤의 석방을 탄원하면서 감옥을 드나드는 동안, 그는 무고한 사람들이 법률적인 도움을 받지 못해 죄인으로 갇혀 있는 현실을 발견한다. 또,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영지에 내려갔다가 농민의 궁핍한 생활을 비로소 깨닫고,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귀족 사회의 부패와 천박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네흘류도프는 감옥에 갇혀 있는 카추샤에게 결혼을 신청했다. 그럼에도 카추샤는 그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걷지 않았다.

원심 파기 노력도 헛수고가 됐다. 하지만 카추샤도 네흘류도프의 성실헌 노력에 감화되어 점차 내면적으로 충실한 여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카추샤가 갇힌 시베리아 감옥으로 따라 갔다. 그는 여러 가지로 그녀를 보호하고, 형사범에서 정치범으로 옮겨 노동량을 줄여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솔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회 개혁자 시몬슨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시몬슨도 네흘류도프에게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네흘류도프는 카추샤를 자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 마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카추샤의 뜻대로 하도록 허락했다.

어느 날 카추샤에게 황제의 특사가 내렸다. 네흘류도프는 그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카추샤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하면서도 특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시몬슨과 더불어 유형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는 이미 그녀에게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 재판정에 서 있는 카츄샤 마슬로바. 초기 영문판의 삽화. /위키피디아

 

< 레프 톨스토이 (1828.9.9 ~ 1910.11.20.) >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로 일컬어 진다.

1828년 남러시아 툴라 근처에 있는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카잔대학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자퇴했다. 1847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농장일에 전념했으나 실패하고 1851년에 카프카즈의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처녀작 『유년시대』를 발표해 투르게니에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그 후 러시아 농민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뜬 그는 농민계몽을 위해 야스나야 폴랴나 학교를 세우고 농노해방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869년에 완성한 『전쟁과 평화』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며, 러시아의 현실과 고통받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1870년대 후반 『안나 카레리나』의 마지막 몇 장을 쓸 무렵 그는 모든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죽음에의 공포에 사로잡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가 말년에 문학보다 종교 사상에 더 몰두했다

톨스토이는 현대의 타락한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원시 그리스도에 복귀하여 근로, 채식, 금주, 금연의 생활을 영위했다. 원시 기독교의 소박성을 지닌 포괄적인 비전에 부합된 삶을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예언적인 현자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그렇지 않으면 뒤얽혀버렸을 인생에서 자기 책의 핵심을 형성해 주는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도덕적 필연성과 합리적 기독교 윤리에 바탕해 농민적 무정부주의, 악에 대한 무저항 정신으로 대변되는 그의 사상은 한때 전 서계로 퍼져 톨스토이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평론과 소책자, 교훈적인 단편소설 등을 통해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 찬 삶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정부, 교회 등의 제도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자신의 견해를 전파했다.

톨스토이의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는 헌신적인 추종자들을 매혹시킨 반면, 아내와 가족으로부터는 그를 소외시켰다. 82살 되던 해 그는 그의 가르침과 그의 개인적 부유함의 부등으로 괴로워하던 중, 그의 아내와 말다툼 한 후 집을 나왔다. 3일 후, 1910년 11월 20일 빈촌의 정거장에서 폐렴으로 죽었다.

『전쟁과 평화』(1864∼1869), 『안나 카레니나』(1873∼1876), 『바보 이반』(1886),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등.

 

 

<등장인물>

 

▲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 소설의 주인공으로, 과거 카추샤를 타락시킨 죄책감을 씻을 방법을 찾았다.

▲ 카추샤 마슬로바 : 네흘류도프네 집에서 쫓겨난 후 독살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수감됨

▲ 코르챠기나 : 네흘류도프와 결혼 말이 오가는 공작의 딸

▲ 마리야 바실리예브나 : 네흘류도프를 유혹하여 깊은 관계를 맺은 유부녀

▲ 마슬레니코프 : 군에 있을때 경리장교 였던 고지식한 사람. 카추샤 사건 해결을 위한 면회를 도와 줌

▲ 메니쇼프 : 아내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수감 중

▲ 페도샤 : 남편 독살 미수로 수감되었으나 보석 기간동안 화해함. 시어머니가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려 했으나 시베리아 징역형을 선고받음

▲ 베라 : 벽촌의 여교사 였으나 혁명 운동으로 수감된 정치범

▲ 블라디미르 시몬손 : 카추샤가 결혼하기로 하는 정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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