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놀면 뭐하니?’. 이러면 반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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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놀면 뭐하니?’. 이러면 반칙이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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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는 원래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
유산슬, 라섹, 닭터유 등 유재석은 부캐 부자
요즘 핫한 이효리, 비, 유재석이 신인 댄스 그룹 결성...출발 지점이 다른 경기가 되지 않을까?
대중이 원하는 콘텐츠 이면에 '경쟁의 뒤안에 소외된 얼굴들'도 있음을 알아야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놀면 뭐하니?’에서 시도하는 프로젝트가 화제다. 토요일 저녁 MBC에서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예능 방송으로 그 시작은 단순했다. 유재석이 스케줄 없는 날 “놀면 뭐하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을 기억한 ‘김태호’ 피디가 그에게 카메라를 건넨다. 마음대로 찍고 싶은 거 찍고, 지인에게 카메라를 넘기라고. 일명, ‘릴레이 카메라’.

실제 아무런 대본 없이 이 연예인에서 저 연예인으로 넘겨진 카메라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다. 이 과정에서 유재석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준다는 핑계로 ‘부캐’가 탄생한다. 부캐라는 단어는 온라인 게임에서 쓰이던 단어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말한다. ‘놀면 뭐하니’는 이 개념을 유재석이라는 실제 인물에 적용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드러머 유고스타’,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하프 신동 유르페우스’, ‘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라섹’, ‘치킨의 맛을 설계하는 닭터유’. 풍성한 부캐를 가진 ‘Yoo니버스(유재석의 유니버스)’가 탄생했다.

유재석의 부캐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사진=MBC
유재석의 부캐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사진=MBC

부캐,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

부캐는 유재석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박나래의 경우 지난 몇 년 여러 캐릭터로 대중들에게 비치곤 했는데 지금은 부캐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나래바 사장’ 혹은 ‘조지나’로. 김신영의 경우에는 아예 작정하고 부캐를 만들었다. ‘둘째 이모 김다비’라는 신인가수. 그녀의 데뷔곡 ‘주라주라’도 함께 인기를 끈다. 심지어 김신영이 출연하던 프로그램에 대신(?) 출연하기도 한다.

이런 부캐들의 등장에 열광하는 대중이 많다. 그들은 실제와 다른 부캐의 모습에 즐거이 적응하고 그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원래 캐릭터와 부캐릭터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도 긋는다. 유재석과 유산슬은 같지만 전혀 다르다고. 이런 역설적인 표현이 가능한 건 대중도 이미 그런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SNS 세상을 보면 그렇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SNS에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와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부터도 현실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SNS에서의 나는 세상 속의 나와 전혀 다른 부캐로 활동한다. 현실의 지질함을 SNS에서의 화려함으로 가리고 싶은 욕망이랄까.

대중의 그런 욕망을 영특한 ‘방송국 놈들(유재석의 부캐인 유산슬과 여러 연예인이 방송에서 쓴 말로 ’시청률을 위해 그 어떤 짓이라도 하는 방송국 사람들‘을 은유함)’이 이용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은’ 대중의 욕망을 건드린 것이다. 그런 부캐들을 보며 대중은 대리만족하며 환호했다. 어쩌면 그들도 그런 부캐를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호응이 폭발적이니 좀 더 가보고 싶었을까. 지금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유재석, 이효리, 비가 모여 ‘남녀 혼성 댄스 그룹’을 결성했다. 사진=MBC
유재석, 이효리, 비가 모여 ‘남녀 혼성 댄스 그룹’을 결성했다. 사진=MBC

가장 핫한 연예인들이 모였는데 신인 댄스 그룹이라니

유재석의 부캐는 ‘Yoo니버스’를 창조했다. 그 우주가 다른 별들을 빨아들여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런데 그 면면들이 심상찮다.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는 ‘제주댁’ 이효리와 대중의 조롱에서 허우적대다 ‘깡’으로 되살아난 비가 유재석의 우주에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부캐도 새로 장착했다.

제주도에 살면서 간혹 시골 아낙네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이효리는 LA에서 온 사업가 ‘린다G’로, ‘깡’으로 생긴 조롱을 환호로 바꾼 비는 날아오르는 용 ‘비룡’으로, 한때 유산슬 혹은 닭터유였던 유재석은 그의 신체적 특성을 비유한 ‘유두래곤’이라는 부캐로 활동하기로 한다.

이들 셋이 모인 목적은 ‘혼성 댄스 그룹’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다. 이번 여름 한 철만 활동할 예정이라고. 이름하여 ‘싹3’. 숫자를 영어로 읽어야 한다. ‘싹쓰리’라고. 이번 여름 음악 시장을 싹쓸이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세 연예인의 부캐 이름을 정하는 것과 팀 이름을 정하는 데에 네티즌들이 참여했다. 미리 유튜브에 공지하여 10만 명이 넘게 모여서 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과 출연진의 의도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중과 함께 정했다는 의미를 가지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름 등 상징적 콘셉트를 잡는 데에 대중이 관여했다면 실제 스타일 및 음악과 댄스는 전문가가 투입될 전망이다. 아마 이번 주부터 ‘싹3’의 외연부터 내연,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 다듬기, 타이틀곡 정하기, 노래 연습하기, 댄스 연습하기 등 모든 과정이 토요일 저녁에 MBC를 통해 방송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한국 최고 전문가들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예언한다. 세 사람이 부를 곡이 어떤 노래일지 아직 모르지만 차트 상위권에 여름 내내 자리할 게 분명하다고.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미디어가 그렇게 예언한다. 그만큼 확실한 히트 상품이 될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면 반칙 아닌가 하는.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는 가수도 많다. 사진=네이버 블로그 ‘고드름’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는 가수도 많다. 사진=네이버 블로그 ‘고드름’

공정을 이야기하면 불공정한 걸까?

많은 대중은 토요일 저녁을 기다릴 것이다. 분명 재미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혹은 시샘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가수 지망생들, 신인 가수들, 그리고 무명 가수들이 아닐까.

나는 ‘놀면 뭐하니’를 보면서, 그것도 재미있게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었다. 어쩌면 이건 ‘방송망’이라는 ‘플랫폼’을 가진 자의 횡포가 아닐까 하는. 물론 연예인이라는 ‘콘텐츠’를 가진 자의 협조가 있긴 하겠지만.

크고 작은 음반 기획사에는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들이 많다. 그들 중 진짜 가수가 되어 데뷔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일 테고. 물론 가수로 데뷔하더라도 대중에게 이름은커녕 얼굴을 알리기도 힘들다. 그런데 방송국 놈들이 만든 신인가수(?)는 티브이만 틀면 나올 게 분명하다.

물론 지금 인기가 하늘로 치솟은 ‘싹3’ 멤버들에게도 ‘듣보잡’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신인 혹은 무명의 힘든 시절을 견뎌내고 누구나 아는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신인 콘셉트’로 이번 여름 다시 데뷔할 예정이다. 최소한 MBC는 그들의 영상으로 도배할 게 분명하다. 미디어들은 수많은 리뷰를 쏟아낼 것이고.

출발선이 다른 육상경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중문화 혹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비자인 대중일 것이다. 그런 핑계 때문에 대중이 원하면(이라고 쓰고 시청률 때문이라고 읽는다) 그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방송국 놈들’의 습성이 생겼다. 습성은 때로는 ‘트렌드’로, 때로는 ‘핫한 것’으로 포장되어 대중 앞에 선보인다.

그래도 똑똑한 ‘놀면 뭐하니’ 관계자들은 프로그램이 반칙으로 보이지 않게끔, 공정으로 보이게끔 잘 포장하지 않을까 싶다. 유산슬 때도 유재석 혼자 환호받은 게 아니라 하위문화로 치부하던 트로트 음악은 물론 트로트 관계자들과 다른 트로트 가수들까지 함께 주목받았으니까.

아무튼 ‘놀면 뭐하니’가 만든 신인 댄스 그룹이 음악산업이라는 연못에 던져진 메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메기에 잡아먹힐까 봐 목숨 걸고 도망치던 작은 물고기들의 생존 능력이 올라갔다는 ‘메기 효과’처럼, 다가오는 여름 모두가 힘차게 유영했으면 좋겠다.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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