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의사 생활을 어떻게 슬기롭게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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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의사 생활을 어떻게 슬기롭게 하냐고?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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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주연들이 조연을 돋보이게 도와주는 드라마
도재학 “환자분 치료받지 않고 죽으면 전 병원에서 잘려요” 무릎 꿇어
'곰' 같은 추민하, 혼자 산모와 아기 실리고서 참았던 눈물 쏟아내
결국 조연인 전공의를 성장시키는 교수님들...우린 좋은 선배이며 스승일까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한발 물러섬의 자세도 담았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목요일이면 나를 집으로 일찍 향하게 하는 드라마가 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때문이다.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 팀이 만든 예전 드라마도 그랬던 것 같다. 많고 많은 드라마 중에서 그들이 만든 드라마는 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왜 그럴까. 나는 자극적이거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피가 터지고 폭력과 욕설이 난무한 영화나 드라마는 아예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사랑 이야기 또한 소설이나 만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피하고 보았다.

'지지리도 착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그런데 신원호와 이우정 팀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방 생활’은 좀 달랐다. 실제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사는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서 내 취향과 맞는 구석이 여러모로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그들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특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착하고 착실한 사람들을 돋보이게 한다. 여느 드라마에서 조역은 조연을, 조연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려고 배치한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주연들이 조연들을 돋보이도록 도와준다.

그러고 보면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조연들의 성장을 보며 입에 미소를 짓게 하는 드라마다. 물론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으로서의 성장 말이다. 드라마 구조로 굳이 나누면 주연은 율제병원의 교수들이고 조연은 그들에게 배우는 전공의들이다.

사진= tvN 홍보관
사진= tvN 홍보관

조연들의 '성장 이야기'..인생의 주인공 되어가는 모습 지켜보기

제일 먼저 눈에 띈 전공의는 신경외과 ‘안치홍 선생(김준한 분)’이다. 그는 육사를 나온 대위 출신이다. 사관학교 졸업 후 의대 위탁 교육을 받고 의사가 된 게 아니라 전역 후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늦깎이 의사로 나온다. 다들 궁금해한다. 그는 어쩌면 엘리트 군인의 길을 갈 수도 있었는데 뒤늦게 왜 의사가 되었는지. 하지만 안치홍 선생은 씩 웃고 말 뿐이다.

군인 출신답게 성실한 그이지만 지도 교수의 질문에는 말이 막힌다. 첫 집도에서는 실수도 했다. 사실 그에게는 군인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병이 있었지만 끝내 극복을 하고 의사가 되었다. 안치홍 선생은 콤플렉스일 수도 있는 자신의 지병을 환자를 위해 고백한다. 뇌수술 후 몸의 상태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까 봐 절망했던 그 환자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안치홍 선생을 보며 희망을 품는다.

다음으로는 산부인과 ‘추민하 선생(안은진 분)’이 눈에 띈다. 미적 감각은 없지만 외모 치장에 큰 신경을 쓰는 그녀는 힘든 산부인과 생활을 책임감으로 극복하고 있다. 다만 눈치가 좀 느려서 지도 교수의 깊은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는 ‘곰’같은 전공의로 나온다.

어느 날 추민하 선생의 동기가 잠적한다. 산부인과 병동의 모든 일은 그녀에게로 쏟아진다. 곰 같은 추민하 선생은 묵묵히 때로는 짜증을 삼키며 일을 해낸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의사로서의 책임감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육체의 힘듦에 굴복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산모와 아기의 목숨이 위태로운 응급상황이 터지고 해결할 의사는 전공의 2년 차인 추민하 선생밖에 없는데. 대견하게도 혼자 산모와 아기를 살리고 나서야 추민하 선생은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마지막으로 흉부외과 ‘도재학 선생(정문성 분)’은 빛이 날 지경이다. 그는 원래 법대에 진학해서 사시에 6번 떨어진 후 의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한 전공의로 나온다. 나이로는 지도 교수와 맘먹는다. 도재학 선생이 힘들다고 소문난 흉부외과를 지원한 건 흉부외과 전공의가 부족해서 연봉을 천만 원 더 준다는 정책 때문이었다. 도재학 선생은 의사로서의 사명보다는 생활인으로서의 욕망이 더 큰 지질한 의사였다.

그런데 그가 조금씩 변한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교수들보다 더 지극해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한 ‘빌런’으로 나오는 어떤 교수가 환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도재학 선생은 뭐라도 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래도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고 끝내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그는 환자에게 무릎 꿇고 빈다. “환자분 치료받지 않고 죽으면 전 병원에서 잘려요.” 그 지질한 부탁 덕분에 환자는 치료받고 산다. 그 환자가 직접 키운 딸기를 선물 받은 도재학 선생은 소리를 삼키고 운다.

진심으로 보여주고, 진심으로 대답하는 이들

요즘처럼 자극적인 시대에 이들 전공의의 변화는 어쩌면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변화들이 내게는 울림 있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들 전공의가, 사실은 그들이 맡은 배역이, 성실하고 인성이 좋아서 그런 변화를 끌어냈겠지만 그들을 그렇게 이끈 조력자들이 있었다. 이 드라마의 주연이기도 한 율제병원의 교수들이 그들이다.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도구는 ‘보여주는 것’이었다. 수술방이나 입원실에서 환자를 수술하거나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실력으로 혹은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이 어쩌면 제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강의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다른 중요한 도구로는 ‘좋은 질문’이 있었다. 교수들은 제자들의 질문에 즉시 대답하기보다는 다른 질문을 되 던져서 제자들이 직접 깨달을 수 있게 만든다. 유튜브에서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리뷰하는 현직 의사들이 많은데 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건 “이 드라마에 나오는 교수님들이 너무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들 교수에게서 가장 훌륭한 점을 꼽자면 제자들을 ‘환자에게 뭐라도 하는’ 의사로 성장시킨 점이다. 의사를 교육하는 병원 현장의 특성상 전공의들이 독자적으로 그 무엇을 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비록 드라마이지만, 위급한 환자에게 뭐라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드라마의 조연인 전공의들이 주연처럼 빛났다.

그들 조연을 빛나게 만든 건 주연인 교수들이었다. 물론 드라마에서 배역을 맡은 배우들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선배 혹은 스승이 왜 중요한지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잘 보여준다. 그들이 맡은 배역이 보여주는 건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던 스승 혹은 어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이고 스승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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