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밈. 깡. 비.
상태바
[대중문화 오지날] 밈. 깡. 비.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03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밈'은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나 생각이 모방하며 퍼지는 사회적 단위를 의미
요즘에는 특정 신조어나 사진, 영상등 온라인상 하나의 유행이 되는 현상을 말하기도
조롱을 환호로 바꾼 ‘비’의 ‘깡’ 뮤직비디오가 대표 사례
밈,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꿀 파도가 될 수 있을까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요즘 새로운 단어가 대중들 앞에 나타났다. 일부에게는 평소 많이 들어보던 단어였겠지만 다른 일부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바로 '밈(Meme)'이라는 단어다.

밈은 어떤 의미일까. 생긴 지 그리 오래된 말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쓴 말이다. 도킨스는 사상, 종교, 이념, 관습 등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유전자의 자기 복제적 형태를 띠며 전파된다며, 이들을 일종의 문화 유전자처럼 취급했다.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중략) 이에 알맞은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 mimeme(모방)’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다. 그러기 위해서 위의 단어를 밈meme으로 줄이고자 하는데...”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322~333쪽)

도킨스의 연구에 의하면 ‘밈’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말한다. 도킨스는 밈이 생명의 진화 과정에 작용하는 ‘자기복제자’의 한 종류라고 보았다. 즉, 밈은 ‘모방’을 거쳐 뇌에서 뇌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상, 광고, 음악, 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이러한 ‘밈’으로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일어난 일련의 문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요즘에는 ‘특정 신조어나 사진, 영상들이 맥락과 관계없이 재미 요소로 온라인상에 많이 소비돼 하나의 유행이 되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밈’의 사례들, ‘사딸라’ 그리고 ‘묻고 더블로 가’

김영철의 ‘사딸라’ 콘셉트를 그대로 이용한 광고. 사진 = 버거킹 광고
김영철의 ‘사딸라’ 콘셉트를 그대로 이용한 광고. 사진 = 버거킹 광고

‘밈’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김영철의 ‘사딸라’,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 비의 ‘깡’을 들 수 있다. 이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모두 최근에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적게는 수년에서 십수 년이 지난 과거의 콘텐츠들이 SNS 등을 통해서 대중에 의해 재평가받기 시작하더니 새롭게 재생산되기까지 한 것이다.

김영철의 ‘사딸라’는 2002년 SBS에서 방영된 ‘야인시대’에 나온 대사다. 김영철이 극 중에서 외친 ‘사딸라’가 인터넷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더니 이 콘셉트를 그대로 이용한 광고까지 등장했다. 덕분에 김영철은 어른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아는 ‘사딸라 아저씨’가 되었다.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 콘셉트를 이용한 광고. 사진=버거킹 광고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 콘셉트를 이용한 광고. 사진=버거킹 광고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는 2007년 개봉된 영화 ‘타짜’에 나온 대사다. 극 중 ‘곽철용’으로 분한 김응수가 뱉은 말이 10년을 훌쩍 넘어 신드롬을 일으켰다. 네티즌들은 다양한 상황에다 그 장면을 ‘짤(인터넷상에 올리는 사진이나 그림)’로 갖다 붙인다. 김응수에 의하면 광고 의뢰만 100여 편이 들어왔다고. 그런 인기 덕분인지 요즘 주연을 맡은 드라마 ‘꼰대 인턴’에서 맡은 역할과 ‘곽철용’을 비교하는 기사가 올라오곤 한다.

조롱을 환호로 바꾸다. ‘비’의 ‘깡’ 뮤직비디오

비의 ‘깡’은 어쩌면 ‘밈’이라는 단어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웠을 것이다. ‘깡’은 비가 2017년에 발매한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이 노래가, 정확히는 뮤직비디오가 요즘 아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2017년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대신 대중들은 비의 시대착오적인 가사와 과도한 춤동작을 조롱했다.

비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연예인이었다. 당시 그에게 ‘글로벌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였다. 그런 그가 발표한 음악에서 2000년대 정취가 풍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니었을까. 2019년 그가 출연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도 그에 대한 조롱을 부추기는 방아쇠가 되었다. 거액이 들어간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참담하기까지 한 관객 수를 풍자한 단어까지 생길 지경이었으니까.

UBD, ‘엄복동 지수’를 의미한다. 티켓파워 단위를 말하며 ‘자전차왕 엄복동’의 최종 관객 수인 17만명을 1 UBD로 한다. 제작과 홍보에 거액이 들어갔으면서도 완성도는 물론 흥행에서도 실패한 영화를 조롱한 것이다. UBD의 활용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700만 관객으로 흥행한 ‘명량’은 100 UBD이다. 엄복동의 100배라는 것.

비의 ‘깡’ 앨범. 사진=지니뮤직
비의 ‘깡’ 앨범. 사진=지니뮤직

한때 글로벌 스타였지만 무한 조롱을 받는 ‘연예인 비’의 과거 몇 년은 참담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비는 지금 다시 일어섰다.

‘1일 1깡’, 하루에 한 번은 비의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2017년 11월에 발표한 뮤직비디오가 이제야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뮤직비디오가 바뀐 건 아니다. 네티즌들의 자세가 전환된 것이다. 유튜브에서 ‘깡’을 검색해보면 그 변화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선 공식 뮤직비디오를 보면 조회 수는 2020년 6월 3일 현재 1260만 회를 넘겼다. 댓글은 13만 개가 넘어갔다. 댓글을 보면 그 변화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출석 체크는 물론 ‘깡’에 대한 신앙고백이 계속 새로 올라온다. 마치 ‘깡’이라는 커뮤니티를 보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조명, 시대와 동떨어진 가사, 과장된 춤동작으로 꽉 찬 뮤직비디오가 왜 인기를 끌고 있을까. 처음에는 조롱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서서히 중독된 네티즌들의 관심이 올라갔을 것이고. 그리고 조롱을 관심으로 여긴 대인배(?) 비가 있었다.

밈의 파도에 올라타라

이런 분위기가 뜨거운 기름이었다면 여기에 불을 지핀 계기가 있었다. 2주 전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비를 찾아갔다. 토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비에게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비는 그날 자신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줬다. ‘놀면 뭐하니’는 시대를 풍미한 그의 히트곡과 안무들로 꽉 채워졌다. 비는 호흡이 가쁘고 땀이 비 오듯 해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시무 20조’라는 팬들의 지적 사상을 겸허히 받아들이거나 때로는 타협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토요일 황금시간에 비는 많은 시청자에게 자신의 열정 어린 모습을 여한 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조롱을 관심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고 지적도 겸허히 수용해서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겠다는 ‘연예인 비’의 모습에 감동한 것이다.

이제 대중들은 비가 대인배라고 열광한다. 깡 뮤직비디오를 두고 더는 조롱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순례해야 할 ‘성지’가 되었다.

그 한가운데에 ‘밈’ 현상이 작동하고 있었다. 처음에 ‘깡’을 보고는 조롱하는 마음이 생기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유전자로 복제되고, 그렇게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환호’와 ‘지지’를 담은 유전자가 복제되더니 대중 사이에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롱’은 더는 볼 수 없고.

‘깡’은 ‘밈’을 타고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거기에는 대중의 관심과 그 흐름을 바꿀 만한 ‘비’의 긍정 에너지가 작용했다. 밈은 대중의 조롱도 환호로 바꿀 수 있는 전파자였다.

지금 이 순간, 연예 산업 관계자들의 고민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밈’ 현상의 다음 수혜자는 누가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누군가 의도하고 연출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아닐 것이다. ‘밈’은 대중들이 스스로 원해서 변화하고 전파하는 ‘문화 유전자’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