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디플레이션이라는 공포 영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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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칼럼] 디플레이션이라는 공포 영화(1)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19.10.22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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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에 디플레이션 우려
추세적 하락 아니라면 0% 내외의 물가 상승률도 나쁘지 않아
물가 하락은 경기 둔화의 결과이지 원인 아냐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R의 공포에 이어 D의 공포라 한다. 8월과 9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전년 동월 대비 물가 하락 현상이 나타나면서다.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물가가 하락하면 물가 하락 기대가 소비를 지연시키면서 다시 경기 부진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D의 공포다.

D의 공포...물가하락이 경기부진을 심화시킨다고?

물가지수를 작성하는 통계청은 최근의 물가 하락이 지난해 높았던 농산물 가격과 유가에 따른 기저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일시적 현상이라고 밝히며 지속적인 물가하락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물가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적이고, 물가 하락 품목의 수가 제한적이며, 자산 가격 급락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 등을 들어 가까운 미래에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그래도 디플레이션 우려가 잦아들지 않는다. 심지어 생산성 향상에 따른 긍정적인 물가 하락마저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물가는 성장이나 실업과 같은 다른 거시경제 지표와 성격이 꽤 다르다. 성장은 낮아지면 걱정이고 실업은 높아지면 걱정이지만 물가는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이다.

성장률은 변동하지만 잠재 성장률로 돌아가고 실업률도 변동하지만 자연 실업률로 돌아간다. 그런데 물가는 잠재 성장률이나 자연 실업률과 같은 앵커가 없다. 그래서 경제 주체의 기대가 물가 변동에 중요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대 성장률이나 기대 실업률이라는 용어는 없어도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이유다.

문제는 기대 인플레이션의 변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논의가 경제원론에 나오는 단순한 논리로 나름 설득력을 가지면서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원론이 영 틀린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경제원론에 따라 경제 정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플레이션이든 디플레이션이든 물가 변화의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는 원론적 처방으로 대응하기에는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 되었다.

통계청은 2019년 9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고 밝혔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사진= 연합뉴스
통계청은 2019년 9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고 밝혔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사진= 연합뉴스

적정 물가상승률은 얼마인가

그래서 본 칼럼에서는 경제원론을 너머서는 물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는 적정 물가상승률에 대한 논의다. 두 번째는 물가 상승률 변화 요인에 대한 논의다. 이번 칼럼에서는 첫 번째 논의에 대해서만 다루고 두 번째 논의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고자 한다.

적정 물가 상승률은 얼마일까? 첫 번째 후보. 한국은행의 물가 상승률 목표인 2%.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부터 물가안정목표(inflation targeting) 제도를 도입해 처음에는 2.5%의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하였다가 이후 3%로 변경하여 2015년까지 이를 유지한 뒤 2016년부터 2%를 물가 상승률 목표로 하고 있다.

물가상승률 목표를 3%에서 2%로 내린 이유는 최적 물가상승률에 대한 중앙은행의 판단이 바뀌어서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3%의 물가 상승 목표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내려앉은 이후 2015년에는 0%대까지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같은 기간 금리를 3.25%에서 1.5%까지 낮추면서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더 내려가기만 했다.

이와 같은 경과를 보면 한국은행의 물가 상승률 목표는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최적 물가 상승률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경제 상황에서 일반적인 동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후보. 명목 금리가 0%가 되도록 하는 물가 상승률. 실질 이자율이 0%보다 커야 하므로 명목 금리가 0%가 되려면 물가 상승률은 실질 이자율에 마이너스를 붙인 수치가 물가 상승률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실은 물가가 실질 이자율만큼 하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최적 물가 상승률로 제안한 사람은 통화학파의 태두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이 이른바 ‘프리드먼 룰’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법정 통화(fiat money)를 화폐로 사용하는 현대 경제에서 화폐의 사회적 발행비용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화폐를 보유하는 데 따른 사적 비용도 제로이어야 한다. 개인의 화폐 보유에 따른 사적 비용은 이자 수익이 발생하는 증권 대신 화폐를 보유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므로 명목 이자율이 제로가 되도록 해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최적이다.

직관적 이해가 쉽지는 않다. 경제학자들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 정도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세 번째 후보. 절대적 물가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0%. 화폐는 애초에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였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화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거래 또는 회계의 단위로서의 역할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화폐를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현대 경제에서 화폐의 본질적 기능을 통찰했다.

이는 ‘회계의 단위’라는 화폐의 기능을 쉬운 말로 풀어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게의 단위, 길이의 단위처럼 회계의 단위도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회계의 단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계의 단위인 화폐의 가치, 즉 물가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적 물가 상승률로서 0% 물가 상승률은 거시경제학의 이론적 근거도 갖는다. 두 번째 후보로 언급한 최적 물가 상승률, 즉 프리드먼 룰의 경우 완전 경쟁시장 상황을 가정한 이론적 모형에서 그 결과가 도출된다.

그러나 불완전 경쟁 시장 구조를 가정한 뉴케인지언 거시경제 모형은 기업의 가격 조정 필요성을 최소화 하는 0%의 물가 상승률을 지지한다.

다만 여기에 더해 임금의 하방 경직성으로 인해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노동시장에 이른바 ‘바퀴에 기름을 치는(grease the wheel)’ 물가 상승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최적 물가 상승률은 0%보다 다소 높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연준에서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고려대 김진일 교수는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미국 경제의 경우 ‘바퀴에 기름을 치는’ 물가 상승률을 0.2∼1.6%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최근 물가 움직임은 안정적 수준

정리해 보자. 한국은행의 인플레이션 타겟팅 목표는 정책적 판단이지 최적 물가 상승률은 아니다.

실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의지와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단계적으로 낮아졌다. 물가 안정이란 예측 가능한 물가 상승률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물가가 변하지 않으면, 즉 물가 상승률이 0%이면 더 좋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이었다는 주장이 미신(myth), 즉 많은 사람들의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지적 받는 이유다.

현실 경제의 마찰적 요인에 따른 물가 상승의 필요성을 감안하더라도 1% 내외의 물가 상승률이면 충분하다.

사실 물가 하락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은, 특히 단기적으로는 매우 적다.

물가와 경기가 상호 작용하는 측면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경기 변동이 물가 변동을 가져오지 그 반대의 효과는 크지 않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러한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을 중심으로 물가 변동의 원인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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