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디플레이션이라는 공포 영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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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칼럼] 디플레이션이라는 공포 영화(2)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19.11.04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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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산시장 거품이야, 친구!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칼럼에서 이번에는 필립스 곡선을 중심으로 물가현상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경제학에는 수많은 곡선이 있다. 수요, 공급 곡선이야 그렇다 치고, 무차별 곡선은 경제학 공부 좀 해야 듣는 곡선이고, 확률적 생산변경 곡선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일반인은 고개를 돌릴게다.

필립스 곡선은 수요, 공급 곡선만큼 익숙한 이름이 아닐 수 있다. 그래도 경제 기사를 아주 건너뛰지 않는 독자라면 최근 ‘필립스 곡선의 평탄화 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곡선이라고는 하지만 대체로 경제학에서 곡선들은 직선의 형태로 다루어진다. 직선은 y=a+bx이다. x 자리에 GDP 증가율 또는 GDP 갭을 놓고 y자리에 물가상승률을 놓은 것을 평면에 그리면 이를 필립스 곡선이라고 부른다. b는 양(+)의 숫자라서 수요 증가 또는 감소로 GDP가 증가 또는 감소하면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인과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최근 수요부진이 저물가 원인으로 지목돼

최근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원인으로 수요 부진이 지목되는 이유다. 애초에 필립스 곡선은 임금과 실업의 경험적 상관관계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거시경제학에서는 필립스 곡선이 기업의 최적화 문제에서 도출되고 이에 따라 GDP와 물가 사이에 이론적인 인과관계가 정립되었다.    

그런데 거꾸로 물가가 하락하면 생산이 감소한다는 디플레이션의 논리는 무엇인가? 이는 필립스 곡선의 인과관계가 뒤집어진 것은 아니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소비나 투자와 같은 수요가 감소한다. 여기서 이자율은 실질 이자율이고, 실질 이자율은 명목 이자율에서 ‘기대’ 물가상승률을 뺀 것이다. 그러니까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기대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실질이자율이 높아져서 소비나 투자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질 이자율이 소비 및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곡선은 IS 곡선이라고 불린다.

필립스곡선의 평탄화 현상일까. 두 그래프 모두 세로는 근원물가상승률, 가로는 GDP 갭률을 나타내는데 GDP가 물가에 미치는 시차를 감안해서 왼쪽 그래프의 선진국은 1기전 GDP, 오른쪽 우리나라는 3기전 GDP와 현재 물가상승률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파란 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빨간 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를 보여주는데, 빨간점의 추세선 기울기가 평탄해진 것을 볼 수 있어 필립스 국선의 평탄화를 시사하고 있다. 그래표 제공= 한국은행 통화안정보고서
필립스곡선의 평탄화 현상일까. 두 그래프 모두 세로는 근원물가상승률, 가로는 GDP 갭률을 나타내는데 GDP가 물가에 미치는 시차를 감안해서 왼쪽 그래프의 선진국은 1기전 GDP, 오른쪽 우리나라는 3기전 GDP와 현재 물가상승률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파란 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빨간 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를 보여주는데, 빨간점의 추세선 기울기가 평탄해진 것을 볼 수 있어 필립스 국선의 평탄화를 시사하고 있다. 그래프 제공= 한국은행 통화안정보고서

그러면 기대 물가상승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한국은행 남민호, 고민지(2017.12)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대 물가상승률은 ‘물가상승률에 대한 주관적 인식, 즉 경제주체가 생각하는 과거 물가상승률 수준’의 영향이 크다. 연구는 실제 인플레이션 정보보다 주관적 인식이 기대 물가상승률에 강한 영향을 미치며 경제주체가 자주 구매하거나 지출 비중이 높은 일부 품목의 가격정보에 주로 의존해 형성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경기전망 비관적일수록, 기대 물가상승률 더 높게 예상

또 재미있는 연구 결과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응답자들이 낙관적 응답자에 비해 기대 물가상승률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평범한 월급쟁이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물가에 대한 인상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교통비, 점심값, 통신비, 학원비에 집값까지 뭐 하나 안 오르는 게 없다. 내 월급만 안 오른다.

한국은행이 올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인의 기대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하반기 2.5%였으며 1-5월중에는 2.2%로 하락했지만 한국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상회하고 있다. 국고채 3년 금리가 1.47%이고 회사채 3년 금리도 1.98%이니 현재 한국 경제에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인 상태이다. 실질 금리가 높아서 경기가 부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투자는 동물적 본능에 의해 결정되고 소비는 소득의 함수라는, 그래서 금리 인하가 유효수요 증가에 큰 효과가 없다는 케인즈의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지금의 한국 경제가 기대 인플레이션을 더 높여서 실질 금리가 더 큰 폭의 마이너스가 되면 경기 부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내지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낮춰서 실질금리가 더 큰 폭의 마이너스가 되면 경기 부진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은행, 저물가에 책임있나 논쟁도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물가목표제를 통해 물가안정의 책무를 부여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데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비판한다. 한국은행이 부가적으로 주어진 금융안정 책무에 발목 잡혀 근본적 임무는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50%로 0.25% 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50%로 0.25% 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사진= 연합뉴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틴버겐(Jan Tinbergen)은 경제 목표 간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표의 수에 맞게 수단의 수가 있어야 정책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틴버겐의 법칙’이다.

애초에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던 시절에는 물가 안정과 경기 진작이 상충하는 정책목표였다. 필립스 곡선은 상충하는 두 정책 목표를 통화정책 수단 하나로 모두 달성할 수는 없는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후 학계와 정책 당국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에 집중하는 것이 경기 안정에도 기여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를 ‘신성한 일치(divine coincidence)’라고 한다. 1998년 한은법도 이에 따라 물가 안정을 단일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가가 안정되어도 금융안정 없이는 경기 안정이 달성될 수 없음을 보였다. 이제 암묵적으로 경기 안정을 염두에 두면서 명시적으로 물가 안정의 책무를 지고 있던 중앙은행은 금융안정이라는 세 번째 정책 목표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재의 경기 부진과 물가상승률 저하 상황에서는 물가와 경기 안정이라는 두 정책 목표가 상충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금리를 더 내리면 되는가?

디플레는 저물가 아니라 자산가격 거품 붕괴가 원인

문제는 저물가가 아니라 자산 가격의 급락이 디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기대 물가상승률을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정도로 낮추는 것은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 시장에서 거품의 붕괴이다.

생산 능력의 확대와 금융시장의 발달로 인해 중앙은행의 물가 통제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현재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주어진 물가상승률 목표에 맞추려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높은 수준으로 인식되는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을 더욱 상승시켜 디플레이션 위험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

딜레마를 넘어 트릴레마에 직면한 통화정책의 머뭇거림이 답답해 보여도 함부로 채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떨리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 난 것이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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