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전세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상태바
[주동헌 칼럼] 전세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20.01.08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세공급 주요 동기는 집값상승 자본이득
집값가격 안정으로 전세 공급 동기 감소시킬 필요
집값 안정 전제, 추세적 전세가 상승 감내해야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2019년은 여러 가지로 뜨거운 한 해였다. 그 뜨거운 것 중에 부동산 시장도 빠지지 않을 테다. 여러 차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자 정부는 초고가 아파트 대출 금지를 비롯한 고강도 주택가격 안정 정책을 담은 12.16 부동산 대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보름이 넘게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일단 대책이 일정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세가격이 급등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매매가격을 진정시키는 대책을 쓰면 부작용으로 전세가격이 올라 인위적 시장 개입이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협한다는 논리는 꽤 익숙하다. 결국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는 것일까?

환매조건부 거래와 전세 제도 유사성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주택 임대차 계약 방식이다. 그런데 주택시장에서는 독특한 계약 방식일 수도 있으나 그 계약 형태는 금융시장에서 환매조건부(Repurchasing, RP) 거래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계약방식이다.

예를 들어 현재 시점에서 채권을 100원에 팔면서 1년 뒤에 다시 되사는 가격을 110원으로 미리 정해둔다고 하자. 이를 환매조건부 채권 매매라고 한다. 그런데 채권을 팔고 산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 거래는 현금을 100원을 빌리면서 채권을 담보로 맡기고 1년 뒤에 이자 10원을 포함해서 원금과 함께 갚는 금전 대차 거래로 볼 수도 있다.

돈을 빌려주는, 또는 채권을 RP로 매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채권 담보가 있으니 채권회수 위험이 줄어든다. 돈을 빌리는, 또는 채권을 RP로 매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여 차입 비용, 즉 이자를 낮출 수 있다. 계약이 의당 그러해야 하듯, 쌍방이 이익이다.

그렇다고 위험이 없는 거래는 아니다. 담보로 제공된 채권이 1년 뒤에 120원이 되었다고 해 보자. 채권을 RP 매도한 사람은 시장에서 120원 하는 채권을 110원에 살 수 있으니 10원의 추가적 이익이 발생한다. 채권을 RP로 매입한 사람은 채권을 환매 조건 없이 매입했었다면 20원의 자본이익을 보았을 테지만 이를 110원에 되팔았으니 10원 손해다. 물론 반대로 채권 가격이 하락했다면 거래자간 손익이 뒤바뀔 테다.

이런 의미에서 RP 거래는 담보가 제공되는 전통적 금전대차 거래이면서 선물(futures)과 같은 파생상품의 성격도 갖는다.

전세 계약은 어떤가? 전세 제도는 많은 경우에 집주인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인 계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럴까? RP 거래에 비견하여 전세 계약을 살펴보면 전세는 현재 시점에서 집을 5억 원에 팔면서 2년 뒤에 다시 5억 원에 되사는 것으로 미리 정해두는 거래다.

물론 소유권이 넘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팔고 산다고 보기보다는 집 주인이 집을 담보로 세입자에게 5억 원을 빌리고, 이자는 주택 사용 권한으로 지급한 후 원금만 2년 뒤에 갚는 계약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2020년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담은 신년사를 발표한 자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집값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2020년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담은 신년사를 발표한 자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집값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 임대인 가격상승 기대감 깔려 

전세 세입자의 이익은 분명하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즉 전세가율이 50%라면 세입자는 10억 원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주택에 5억 원만 지급하고 거주할 수 있다. 전세 임대인은 무이자로 5억 원의 자금을 차입하는 이익을 누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임대인의 이익은 이익이 아니다. 그 이익보다도 큰 10억 원의 가치에 합당한 월세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세 계약은 단순한 현금 흐름으로만 보면 세입자에게는 이익이지만 집 주인인 임대인에게는 손해인 거래이다.

그럼에도 임대인이 전세를 공급하는 이유는 앞서 RP 거래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한 설명에 있다. 환매 계약의 대상이 되는 자산의 가격이 상승하면 환매 시점에서 자산의 보유자, 그러니까 전세 계약의 경우 주택 보유자가 자본이득을 본다. 물론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세입자가 이득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전세 제도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세 임대인의 현금 흐름상의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는 자본 이득, 즉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 가격의 상승이다.주택 가격 등락 확률이 반반이었다면 임대인이 주택을 전세로 공급할 유인은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 기준으로 1987년 1월에서 2019년 11월 중 전년 동월대비 상승률의 단순 평균이 6% 정도였으며 상승한 개월 수는 395개월 중 282개월이었다. 전세 공급이 유지되는 이유였다.

다른 하나는 주택 구입을 위한 가계 금융의 제약이다. 과거에는 개인이 주택 구입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고, 전세는 세입자, 즉 전세 수요자 입장에서 전세는 주택 구입 자금의 절반만 목돈을 마련해도 안정적인 주거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전세 수요가 발생하는 이유였다.

2000년대 이후 전세 수요 측면에서의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대기업 중심으로 대출 수요가 크게 줄어들자 은행은 가계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금리도 상당 기간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가계의 주택 구입을 위한 금융 제약이 크게 완화된 것이다.

반면에 전세 공급 측면에서의 환경은 여전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2년과 2013년에 안정세를 보였던 주택 가격은 이른바 ‘초이노믹스’라는 미명하에 경기부양을 위해 주택구입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오름세를 탔고 2018년과 2019년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은 우리가 지켜본 대로다. 이제 서울 아파트, 특히 강남 아파트는 무위험 고수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면 전세 수요는 감소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상황에서 전세 공급 물량이 여전하다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전세가와 매매가는 동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든 매매든 주거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상승하고 주택 공급이 증가하면 하락하기 때문이다.

주택 투기수요 때는 전세가- 매매가 동조안해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주택을 투기적으로 수요하는 경우 전세가와 매매가는 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주택 가격이 상승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주택을 투기적 목적으로 수요하는 경우 전세 공급이 증가하면서 전세가는 하락한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는 전세 공급은 줄어드는 반면 주택 수요자는 가격 하락을 예상하여 주택 구입을 미루고 전세를 수요하려는 경향을 보이므로 전세가격이 상승한다.

위 그림은 서울지역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가격의 상관계수 추이를 나타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매매가와 전세가의 상관계수가 0.6을 상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매매가든 전세가든 주택 수급이 주요 가격변동의 원인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2013년 이후 상관계수가 0.2 내외로 급락한다. 2013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보였다. 전세의 반전세로의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전세 공급은 감소하고 전세 수요는 강하게 나타났던 때였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상관계수는 2018년 이후에는 0 내외로 더욱 하락한다. 이 시기에는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전세가격은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주택 시장 가격의 동인이 주택 실수요보다는 투기적 수요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지방 도시로 근무 발령을 받아 생전 처음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 본 일이 있다. 가족과 함께 2년을 지낼 30평형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았는데 적지 않게 놀랐다. 일단 전세 나온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나와 있는 전세가 1층이었는데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1천만 원 낮은 9천만 원이었다.

심지어 전세가가 매매가 보다 높은 경우도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맞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서울에서 매매가의 반도 안 되는 전세가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매우 낯선 경제적 현상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그 지방 도시는 아파트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2억 원이 채 안 된다.

서울에서 전세가 사라지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까운 미래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아파트를 자산 수익의 수단으로 여기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짧은 기간에 급등한 서울 아파트 가격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

전세가가 오르는 것은 아파트 가격에 대한 기대가 안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서민 주거 안정 대책은, 그것대로 따로 가야 한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