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눈치 보다가 큰 것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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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눈치 보다가 큰 것 놓쳤다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10.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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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 대응한 한국, TPP서 제외...적극적 참여가 해법

한국은 태평양에서 오리알이 될 것인가.

세계 최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이 거대한 경제 블록에서 한국은 제외됐다. TPP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지나치게 중국의 눈치를 보다가 미­일 주도의 FTA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미 FTA, 한·EU FTA를 비준하는 과정에서 역대 정부가 곤경에 처해 중복되는 FTA를 또 비준받아야 하는지 고민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TPP 체결에 적극 나서는 바람에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었을수도 있다. 어쨌든 한국은 우리의 주요교역국이자,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TPP에서 씁쓸한 소외감을 맛보고 있다.

▲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장관회의를 진행중인 12개 참가국 장관들이 1일(현지시간) 밤 촬영한 '패밀리 포토'.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 무역·통상 장관들은 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엿새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의약품 특허보호 기간을 비롯한 핵심쟁점들을 일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며,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며, 포용적 발전을 촉진하고 혁신을 북돋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TPP 협정이 타결됨에 따라 12개국은 자동차에서부터 쌀과 낙농품 등 민감품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제품들에 대해 관세를 철폐 또는 인하하는 등 무역 장벽을 없애게 됐다. 아울러 무역뿐 아니라 신약 특허 등 지적재산권, 노동 및 환경 보호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관련 규정을 만들게 됐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앞으로 후속 실무협상을 거쳐 2∼3개월 안에 최종적인 협정문안을 작성한 뒤 자국 내 비준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일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세계 최대 경제동맹

세계 경제 질서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FTA 열등생'이었던 일본의 영토확장에 대한 절실함이 협상 성공의 동력이 됐다. 즉 미국과 일본의 밀월이 외교안보를 넘어 경제 분야로 확대·강화된다는 의미다.

오바마 대통령은 환영성명에서 "TPP는 21세기에 필수적인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 주는 것"이라면서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 경제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세계 경제질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의 미래에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TPP는 또 다른 항공모함처럼 중요하다”고 미국의 속내를 말한 바 있다. 안보적 전력에서 TPP 동맹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TPP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응하는 성격을 띠며,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외교·안보적 의미도 지닌다고 할수 있다.

세계 1, 3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는 2011년 기준으로 역내 인구가 7억8,000만 명, 명목 GDP는 세계 전체의 38.2%인 26조6,030억 달러, 무역규모는 27.8%인 10조1,850억달러를 포괄하고 있다. EU(유럽연합),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그리고 중국이 추진중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무역동맹이다.

TPP 체결 12개국은 미국을 주도로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 일본 등이 참여한다. 이들 국가는 우리의 중요 교역 대상국이다.

TPP는 애초 2005년 뉴질랜드·칠레·싱가포르·브루나이 4개국 간의 'P4 협정'을 체결, 그다지 영향력이 크지 않은 협정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이 호주, 페루와 함께 전격적으로 참여를 선언하면서 미국 주도의 다자간 FTA에 바뀌었고 이어 2010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2012년 멕시코와 캐나다가 각각 협상에 참여했다.

2013년에는 일본이 막차로 합류했다. FTA 열등생으로 지목받던 일본이 참여하면서 TPP가 중국을 포위하는 경제 블록의 성격으로 변질했다. 이때 한국은 착각했다.

 

한국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보다 TPP 늑장 대응

TPP에서 소외됨에 따라 이 협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한국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우리 정부는 TPP 협상 초기부터 소극적이었다. 정부는 “TPP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이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새 통상환경에 한국이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일본이 적극적인 참여를 선언한 2013년에 우리정부는 '관심 표명'의 소극적 견해를 표명했다. 그땐 중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었고,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중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게 아닌가 하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얼마 전에 “지난 정부에서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아 결정적 시기를 놓친 데다 한중 FTA 등 처리할 이슈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가 환태평양 지역의 무역동맹체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 일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의미인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안보와 경제를 떼어놓고 볼 수도 없다. 초기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판단이다.

문제는 TPP에 2차로 가입하기로 방침을 정하더라도 최종 가입까지의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신규로 참여하려면 양자 협상을 거쳐 기존 당사국들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적인 양자간 FTA 때보다 훨씬 강력한 개방 요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민감한 품목이 많은 농산물이나 서비스 분야가 국내에서 정치, 사회적인 이슈로 비화할 공산도 있다. 신규 '가입비'를 비싸게 물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TPP가 타결된 만큼 우리 정부도 뒤늦게나마 가입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면서 "향후 TPP 협정문이 공개되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공청회, 국회보고 등 통상절차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정부 입장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일본과의 경쟁이 격화하게 되고, 이미 체결한 FTA로 인한 국내 제품의 경쟁 우위가 사라지게 된다. 특히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기계 등 주력 산업에서 일본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우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악화될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TPP에 가입하면 발효 10년 후 국내 실질GDP는 1.7∼1.8% 증가하고 연간 2억∼3억 달러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기대되지만 불참하면 GDP는 0.12% 감소하고 무역수지는 연간 1억 달러 이상 악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 자동산업 수혜 중국, 베트남에 공장 뺏길까 전전 긍긍

TPP가 발효될 경우 일본 자동차 산업이 큰 혜택을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TPP가 타결됨에 따라 결시 일본은 자동차를 포함한 제조업 뿐만 아니라 소매 등 다양한 업종에서 폭넓은 수혜가 예상된다.

관세 철폐의 장점을 신속하게 누릴 수 있는 대표적 업종은 자동차 부품 산업이다.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수출 품목의 80% 이상에 대해 TPP 발효 즉시 2.5%의 수입 관세가 철폐된다. 대미 수출액은 연간 2조엔 규모로 관세가 철폐되면 일본 기업들의 부담은 연간 500억엔 정도 경감된다.

완성차의 경우, 베트남은 대형 차량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70%의 높은 관세를 향후 10년 안으로 철폐하게 되며 캐나다도 6%의 관세를 향후 몇 년 안으로 없앨 예정이다.

중국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우선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특히 수출품목이 중국과 비슷한 베트남이 TPP에 참여하는 까닭에 미국에 대한 수출품목이 대부분 베트남으로 옮겨질 가능성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 타이틀을 베트남으로 넘겨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중국은 연말 타결을 목표로 진행 중인 미국과의 양자 간 투자협정(BIT)의 조속한 타결에 더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 BIT 타결 이후에는 이를 확대한 양자 간 투자무역협정(BIIT)을 추진함으로써 TPP로 인한 부정적 요소를 상쇄하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TPP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일본 주도의 경제동맹체 성격이 짙지만, 중국은 TPP 참여 여지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TPP와 RCEP 두 자유무역 체제가 세계 무역의 양대 톱니바퀴 역할을 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혀 TPP를 배척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선점하고 미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함께 추진해온 RCEP 타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뉴질랜드, 인도도 참여해 역내 무역, 서비스, 투자 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RCEP은 국내총생산(GDP) 22조 달러 규모에 34억 명 인구의 거대 시장을 갖고 있어 충분히 TPP에 맞설만한 다자 경제체제다.

하지만, RCEP는 낮은 단계의 무역자유화부터 차근차근 시작해가는 '경제협력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개방을 추구하는 '경제동맹체' 성격의 TPP보다는 격이 낮다. 여기에 관세철폐 품목을 놓고 참여국 간에 이견이 커 협상 진전도 다소 지지부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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