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이라면, 中열병식 참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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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이라면, 中열병식 참석할까?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8.2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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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근간 살리되, 중국을 달래는 묘수를 찾아라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는 참석하기로 결정했지만,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열병식 참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열병식 참석 여부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고민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북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여는 예견됐다. 청와대가 오는 10월 박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서둘러 발표하면서 전승절 참여는 기정사실화됐다. 박대통령의 전승절 참여에 대해 야당도 반대하지 않지만, 열병식 참여를 놓고 여론은 찬성론과 반대론으로 엇갈려 있다.

외교는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는 고도의 정치게임이다.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이라는 긴 이름의 기념 행사에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것은 명분이 선다. 하지만 중국 군사력을 과시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6,25 때 우리 군과 총부리를 겨눈 군대의 사열을 받는다는 점에서 명분을 잃을 뿐 이나라, 우방인 미국이 싫어할 게 뻔한 일을 행할 경우 실리마저 잃게 된다.

이 경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식에서 힌트를 얻는 게 현명할 것 같다.

▲ 지난해 3월 26일 독일을 국빈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연방총리실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영접나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식에서 힌트가 있다

러시아는 2차 대전중 독일과의 전쟁을 마무리한 5월 9일을 기념해 전승 70주년 기념행사를 야심차게 준비했다. 그러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서유럽의 정상들은 대부분 서방 국가 수장들은 러시아의 초청을 받았지만, 대부분 불참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국가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러시아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첨단 무기의 위력을 과시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신냉전 상황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 메르켈 총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열병식이 끝난 다음날인 10일에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리고 열병식이 열린 붉은 광장을 찾아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며 나치군과 싸우다 희생된 소련군 병사를 추모했다. 서방 주요국 정상과의 보조를 맞추면서도 패전 당사국으로서의 반성의 예를 갖추는 절묘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中열병식 참석은 한미동맹 흔들어 외교적 실리 없어

국내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에 참석하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행사 참석 여부에 대해서는 찬성이 39.5%, 반대가 32.7%로 나타났다.

우선 중국의 전승절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것이니만큼 행사의 핵심인 열병식 일정까지 소화, 방중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열병식은 빠지고 열병식 이후에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리셉션만 참석하면 힘들여 중국을 방문한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외교의 축은 한미동맹이다. 한중 외교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는데다 국가안보적 측면에서 대미 외교를 흔들 수 없는 입장이다. 우리 외교의 중심축이 한미동맹인 상황을 고려, 열병식에 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무적을 자랑하던 미 해병이 6.25 때 개마고원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대패한 사실을 미국인들은 잊지 있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중국과 대립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사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방중 일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므로 미국 정부가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와 싱크탱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는 이해하지만, 열병식 참석만은 안된다는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얼마전 워싱턴에서 열린 헤리티지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박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과 열병식 참석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한국을 침략했던 마지막 국가(중국을 지칭)가 행하는 열병식에 한국의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고 반문했다.

실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전승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어떤 민주국가의 지도자도 중국의 열병식에 참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의 시각은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행사 참석문제와 관련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부의 입장을 투영하고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평가다.

아울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열병식에 불참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우리가 항일 승전을 주제로 한 열병식에 참석할 경우 미국이 공들이는 한미일 3각 협력체제 복원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할 경우 워싱턴 조야에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유포해온 일본이 이를 소재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열병식 행사 진행 살펴보면서 고차원의 방정식 풀어야

열병식 참여에 열강의 복잡한 함수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박 대통령은 행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최대한 살펴보고 나서 참석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이 만약 열병식 참석을 결정해도 행사 때 박수를 치지 않는 등의 미세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와 여성 지도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패전국이고, 한국은 일본을 패배시킨 연합국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아울러 2차 대전 직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마주한 나라의 군대 사열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메르켈의 묘수보다 더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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