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는데 ‘잭 런던’이 언급되어 깜짝 놀랐다. 그가 언급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나는 잭 런던이 사회주의 성향을 보여준 <강철 군화>나 자연주의 색채가 짙은 <야성의 부름> 등을 쓴 20세기 초 미국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잭 런던이 ‘이시하라 슌’ 이라는 일본 사회학자가 쓴 <군도의 역사사회학>에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19세기 말 태평양을 떠돌던 바다 사나이로.
▲ 잭 런던 "The Complete Novels" 표지 [아마존닷컴] |
“1893년, 나중에 대작가가 된 젊은 잭 런던은 ‘첫 외국 상륙으로 오가사와라 제도의 지치지마 섬에 상륙했다. … 가난과 중노동에 시달리던 유소년기를 거쳐 17세가 되던 1893년, 물개 수렵선 소피 서덜랜드 호의 선원이 되어 태평양 세계로 진출했다.”
(이시하라 슌 <군도의 역사사회학> 105쪽)이 책 저자는 잭 런던이 유명한 작가여서 언급한 것만은 아니었다. 잭 런던은 훗날 작가가 될 씨앗이 있었는지 당시 그 지역의 다양한 모습들을 글로 남겼다. 이시하라 슌은 잭 런던이 남긴 기록과 당시 일본 정부 자료와 대조하여 그 시절의 그 지역을 깊이 연구했다.
“잭 런던의 기록에서도 이렇게 일본 국가의 예외적인 법이나 현장 관리의 판단에 따라 월경적인 접촉이나 교역이 묵인되는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이시하라 슌 <군도의 역사사회학> 113쪽)위에 언급한 두 부분만 아니라 책 곳곳에서 잭 런던의 기록을 문헌으로 참고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잭 런던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군도의 역사사회학>에 이어서 잭 런던의 책을 읽기로 했다. 끝말을 이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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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사람 엿보기 / 한울 출판사 |
유명한 그의 소설들 말고 저널리스트로 쓴 책이 눈에 띄었다.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호기심 가는 작가가 한국, 정확히는 조선에 관해 썼다니! 그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넘기면서는?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 서문부터 그런 생각이. 그렇지만 읽으면서 마주한 세 눈, 시선 혹은 시각 때문에 꾹 참고 마지막까지 읽었다.
이 책은 잭 런던이 러일전쟁이 벌어진 조선 땅에 종군기자로 와서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글이다. 책은 1904년 2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시작한다. 인천을 거쳐 서울을 지나 평양으로 간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전투를 벌인 의주와 중국 땅 안둥의 모습은 르포 형식으로 적었다.
그 시절이 읽히는 조선인들의 까만 눈빛
앞서 ‘마주한 눈’ 때문에 마지막까지 읽었다고 했는데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마주한 눈들은 우리 조선인들의 눈빛이었다. 잭 런던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조선인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그 쳐다보는 조선인의 시선들이 내게 꽂히는 걸 느꼈다.
가뜩이나 흰옷을 입었는데 눈에 띄게 검은 머리와 검게 탄 피부와 까맣게 빛나는 눈빛. 런던은 그런 모습을 한 조선인들이 미개하게 보였을까? 책 여러 곳에서 조선인들을 비겁하고 겁 많고 무책임하다고 묘사했다.
“… 신랑을 카메라 앞에 세워놔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는 놀라서 발버둥 치며 울었다. 그의 더러운 얼굴에 남아 있는 하얀 눈물 자국은 그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잘 나타내주었다.”
(잭 런던 <조선 사람 엿보기> 129쪽)잭 런던은 조선인들이 모인 모습을 위 인용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러 군데에서 묘사를 했다. 그 장면들이 불쾌했지만, 당시 조선인들과 그들의 삶이 떠오르기도 했다. 흰옷을 입어서 도드라져 보이는 까맣게 탄 얼굴과 빛나는 눈빛들. 조금이라도 힘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어깨와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들. 구슬프지만 우리가 살아온 나날들이다.
저자는 평민은 양반에게, 평민과 양반은 관리에게 꼼짝 못 하는 조선의 세태를 곳곳에서 비판했다. 민주적이지 못하고 미개하다고. 그런 잭 런던이 절차를 무시하고 아무 자격 없이 권한을 행사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그는 조선인 통역자에게 명령한다.
“…양반의 허세가 무엇인지 알아봐야겠어. 관아로 가서 사또를 만나. 내가 2시까지 갈 것이라고 해. 날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내가 무척 화를 낼 것이라고 해….”
(잭 런던 <조선 사람 엿보기> 148쪽)실제 그는 그 관아에 가서 자기가 미국의 대표인 양 굴었다. 관리는 쩔쩔맸고. 그런 모순이 통하는 부조리의 시대였다. 구한말 조선은 평민이든 양반이든 벼슬아치든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는 걸 잭 런던의 기록이 보여준다.
종군기자 잭 런던의 편협한 시각
다음으로 잭 런던의 시각이 느껴졌는데 무척 거슬렸다. 그는 종군기자로 조선에 온 것이다. 자기를 보낸 미디어와 독자를 위해 사실에 근거한 글을 써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런던의 시각은 편협해 보였다. 어쩌면 20세기 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가진 아시아에 관한 편견이란 편견은 모두 가진 듯 보였다.
대표적으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이동할 때 숙소를 구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잭 런던은 조선인들이 자기 일행을 푸대접하는 것을 이해 못 했다.
“… 10리를 더 간 후에도 그 상투적인 말에 따라 다음 마을을 향해 길을 또 가야 한다는 걸 알고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 그들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건성으로 꺼내 들었다. … 이 사건으로 조선인에게 받은 갖가지 냉대와 무례한 대접에 대한 온갖 괴로움이 가시는 것 같았다. 조선인들에게 총을 보자 모여서 수군대더니 2분 후에 말과 사람들을 편안한 곳으로 안내했다.” (잭 런던 <조선 사람 엿보기> 90쪽)
잭 런던과 일행은 이런 식으로 숙소뿐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나갔다. 잭 런던은 취재지역에 관한 이해와 공감은 전혀 없는 기자였다. 이런 사람이 어떤 성찰이 있었기에 불과 몇 년 후 사회주의 소설이나 자연주의 소설을 썼을까? 이 책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어설픈 제국주의자였다. 차별과 편견을 문명이라고 주장한. 한때 즐겨 읽은 그가 쓴 소설의 진정성이 의심될 정도였다.
번역자는 왜 이 책을 택했을까?
마지막으로 눈에 띈 건 번역자의 시각이었다. 역자는 서문에서 어느 유명한 선교사의 기도를 실었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 (잭 런던 <조선 사람 엿보기> 18~20쪽)
처음 책을 펴고 서문을 읽을 때 저 기도문과 이 책의 내용이 어떻게 연결될까가 궁금했다. 다 읽고 나서 서문을 다시 읽었다. 역자는 한국인이 읽기에 불편한 이 책의 의미를 선교사의 기도문과 자기의 간증으로 연결하려고 한 건 아닐까 의심됐다.
“그런데 그런 아무것도 없는 우리 민족이 빛을 제일 먼저 받아들였다. 평양기도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가치관이 바뀌었고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못할 것이 없는 민족이 되었다.” (잭 런던 <조선 사람 엿보기> 20쪽)
물론 그런 시각도 있을 것이다. 가난했던 것도, 주권이 없던 것도, 같은 민족끼리 싸웠던 것 모두 그분 뜻이라고. 그리고 그 모든 걸 그분의 은혜로 이겨냈다고. 어쩌면 힘든 시절 절대자의 능력을 절대로 믿는 세태가 필요했을 것이다. 독재자를 절대자의 모습으로 치환하는 세태도 필요했을 것이고.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을 무시하고 특별한 힘이 작용했다고 믿게 한 그런 시각이 독재자를 초인으로 만든 건 아닌지, 그런 초인의 딸을 기다리는 게 애국이라고 믿고 싶은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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