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 독서 2]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 섬이 일본 영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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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말잇기 독서 2]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 섬이 일본 영토라니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1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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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슌의 <군도의 역사사회학> 리뷰
▲ 군도의 역사사회학 / 글항아리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시작은 애니메이션의 원작 소설인 <펭귄 하이웨이>였다.

그 소설을 읽다 보니 펭귄의 생태에 호기심이 생겨서 마침 남극 세종기지에서 펭귄을 연구한 동물 행동학자가 쓴 <물속을 나는 새>를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조류학자의 삶도 궁금해져서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라는 책까지 찾아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듯 ‘끝말잇기’처럼 맥락을 쫓거나 때로는 맥락을 뛰어넘으면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과도 같다. 편도 티켓으로 떠나는 여행처럼 다음 행선지는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는. 눈 닿는 곳이 내 마음이 가는 곳이기에.

 

그래서, 그 절해고도가 궁금했다

 

이번 책인 <군도의 역사사회학>을 읽게 된 배경에도 끝말잇기의 연장선에 있다.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의 저자는 일본(책에서는 본토라고 표현)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의 절해고도에서 새를 연구한다. 그런데 그 섬들은 도쿄도에 속한다.

저자가 상주하는 오가사와라 제도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1,000km 넘게 떨어진 작은 섬이다. 그런데 그 먼 곳에 일본의 영토가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일었고, 게다가 도쿄도 소속이라는 것이 불을 댕겨 버렸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것.

이 책의 제목 <군도의 역사사회학>은 많은 걸 내포한다. 군도는 오가사와라 제도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얘기한 ‘남양’이 포함된 서태평양 지역을 의미한다. 그곳의 역사, 특히 근현대사를 국제관계와 사회적 관점으로 푼 학술 서적이다. 학술 서적이면서도 한국인이 많이 접하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저자인 ‘이시하라 슌’은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이다. 그는 근대 일본에 병합된 도서 사회를 연구해 왔고 특히 그 지역의 근대적 장치와 이동민의 삶 사이에 작용한 관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오랫동안 주인은커녕 사람도 살지 않았던 바다와 섬의 역사를 얘기한다. 제국들이 어떻게 그 바다와 섬을 병합해 갔는지도 얘기한다. 그들이 섬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하며 어떻게 버렸는지도 얘기한다.

 

▲ 오가사와라 제도

주인 없는 섬이 이해관계가 첨예한 섬으로

 

책의 주요 무대인 오가사와라 인근 섬들은 19세기 초반까지는 무인도였다. 풍랑에 떠내려간 어부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서태평양의 외딴곳이었던 것. 당시 해양 산업의 주요 품목은 고래기름과 물개와 해달의 가죽이었다. 그러나 유럽 제국들이 앞다퉈 장악한 대서양은 이미 씨가 말랐다고. 그들은 남미를 돌아 경쟁적으로 태평양에 진출한다. 그래서 하와이 왕국(미국에 병합되기 전)이 새로운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오가사와라 인근 섬들은 지원 기지로 주목받는다. 그 결과로 유럽인들과 하와이 사람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는 태평양을 앞마당으로 흡수하자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해양 경제의 흐름을 잘 이용한다. 여러 차례의 현장 점검 후 일본은 1876년 이 지역에 관리를 파견해 ‘실효 지배’를 선언한다. 당시 유럽의 제국들에 암묵적으로 자리 잡은 식민지 병합 과정을 그대로 따른 것. 실효 지배라는 방식으로.

일본은 먼저 일본법을 공표하고 원래 살던 유럽인들이나 하와이 사람들에게 영주 허가를 내주고 귀화도 시킨다. 그리고 일본(책에서는 내지라고 표현)에서 지원금을 내세워 개척자들도 모집해서 섬들에서 살게 한다. 이즈음 일본은 오키나와와 홋카이도까지 복속하게 되는데 이러한 실효 지배를 통한 영토 확장이 몇십 년 후에는 ‘대동아경영’이라는 구호 아래 비참한 결과를 불러온다.

 

평화로웠던 섬들이 갈등이 충돌하는 섬으로

 

일본은 오가사와라 복속 이후 실효 지배하는 섬들을 확대해 간다. 나중에 일본에서 ‘남양’이라고 일컫는 미크로네시아 지역까지. 결국, 이 섬들을 일본의 해외 진출 혹은 침략의 징검돌로 이용한다. 징검다리를 이루는 징검돌. 지도에서 섬들의 모양을 보면 바다 위에 찍힌 점들로 보인다. 그 점들을 이어보면 마치 징검다리 같다. 대륙과 대륙을 이어주는.

결국, 태평양을 통해 서쪽으로 진출하려던 미국과 동쪽으로 진출하려던 일본은 이곳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도 민간인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 섬들에 살던 사람들은 이용당하거나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일부는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현지에서 징용을 당하거나 재산을 버리고 일본 내지로 소개 혹은 추방되어야 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희생된 주민들의 사례를 현지 조사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다. 특히 유럽계 후손들을 미군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사례들. 패배의 과정에서 집단 자살로 몰아간 수많은 사례도.

그리고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 속의 조선인들을 언급한다.

 

“1945년 3월 말 이후,

미군은 이오섬에서 소탕 작전을 계속하면서

오키나와섬과 그 주변의 섬들을 침공한다.

여름 동안의 지상전 중 일본, 미국 장병 및 군부나

‘위안부’로 징용, 연행된 조선인 9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약 50만 명의 주민이 전투 과정에서 난민이 되었으며

그중 약 15만 명이 사망했다.” (170)

 

 태평양은 미국의 호수가 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태평양은 결국 미국의 호수가 된다.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를 점령한 미국은 이 지역을 미국의 비밀 기지로 삼고 미군의 핵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바꾼 것. 그 과정에서 예전에 이 섬들에서 살던 주민들은 되돌아오지 못하고 난민 혹은 유민이 된다. 미국과 일본 양측 모두에게 외면당해 일본에서도 외진 곳을 전전한 사례를 언급한다.

1968년 이 지역은 다시 일본으로 반환된다. 이후에는 일본의 자위대와 ‘미 연안 경비대’가 주둔한다. 하와이는 물론 미국 본토에서도 엄청 먼 이 섬들에 미국 연안 경비대가 주둔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아직 일부 섬에는 민간인이 살지 못한다고.

전쟁으로 초토화된 이 지역의 섬들은 오랜 기간 미국의 핵 네트워크 아래여서 민간인이 통제되었었지만, 반대급부로 자연환경은 제대로 지킬 수 있었다. 외부 요인의 간섭이 없으니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었던 것. 역설적으로 생태환경 관광으로 주목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 지역에 일본인은 물론 많은 외국인이 관광을 온다고 한다. 그들은 멋진 풍광과 천적 없이 사는 새들을 구경하면서 불과 몇십 년 전에 벌어진 비극의 역사를 떠 올릴 수 있을까? 오래전에 마무리된 비극으로만 떠올리지 않을까. 제국과 냉전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고 패권으로 향하던 욕망도 여전히 숨어있는데 말이다.

일본이 항공모함 보유국이 된다는 소식 때문인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 유산이 달리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국에 제기한 영토 문제는 철저하게 국제문제로 끌고 가지만, 태평양을 호수화하려는 미국에는 눈 감고 협조하는 일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다.

어쩌면 오늘도 바다와 섬들에는 선이 그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 간의 합의 혹은 묵인 아래.

 

끝말잇기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이름들이 언급되었다. ‘멜 빌’과 ‘잭 런던’이다. 맞다 ‘모비딕’과 ‘강철 군화’의 작가다. 이 둘은 19세기에 포경선이나 사략선(혹은 해적선)에 올랐던 뱃사람 출신이다. 저자는 이들이 남긴 기록을 참고 문헌으로 삼기도 했다.

특히 잭 런던은 당시에 오가사와라에 상륙하여 통계 수치를 포함한 기록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나중엔 조선에 파견된 특파원이기도. 아마도 이 책 다음의 끝말잇기는 잭 런던의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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