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에 맡긴 '밸류업'...시장 반응은 ‘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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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에 맡긴 '밸류업'...시장 반응은 ‘냉담’
  • 박준호 기자
  • 승인 2024.02.26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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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밸류업 프로그램'...기업 자율 참여 유도
코스피·저PBR주 일제히 하락...후폭풍 감안해야
日, 자율 참여보다 패널티 부여에 방점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정부가 국내 주식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주주환원 확대와 가치 제고를 강제하기보다는 유도하는 방식이다.

시장 반응은 차갑다. 지금까지도 자율에 맡겨온 만큼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벤치마킹하겠다던 일본이 강제성을 부여한 것과도 어긋나는 모양새다.

26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밸류업 지원 방안'에는 기업 스스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자본비용·자본수익성, 지배구조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자사 가치가 적정한 수준인지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수립·공표한 계획들은 한국거래소에 자율 공시할 수 있다.

정부는 매년 5월 목표 설정의 적절성, 계획 수립의 충실도, 이행과 주주와의 소통 노력 등을 종합평가해 표창을 수여한다.

기업 참여 독려를 위해 다섯 종의 세정 지원도 더해진다.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법인세 경정청구 우대 ▲가업승계 컨설팅 등이다. 투자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ETF(상장지수펀드)'를 개발하고 전담 지원 체계도 구축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첫 단추"라고 강조했고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코스피 3300 회복의 기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장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놨다. 포털사이트에는 “지금까지 기업에 자발적으로 맡긴 결과가 현 증시 상황인데 또 다시 자율이냐”, “벨류업을 기업에 권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진즉 했을 것”, “밸류업 하자는날 밸류업 관련주들이 급락하는 중이다" 등 비판이 주를 이뤘다.

26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20.62포인트(0.77%) 내린 2647.08로 마감했다. 대표적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인 금융주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KB금융은 마이너스(-) 5.02%, 신한지주 -4.5%, 하나금융 -5.94%, 우리금융 -1.94%, DGB금융 -2.25%, BNK금융 -2.89%를 기록했다.

국내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크게 유입되지도 않으면서 원화 강세 효과도 미미했다.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0.1원 오른 1331.1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문가들은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으로 단기간 급등한 주식들의 후폭풍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4일 밸류업 프로그램이 언급된 이후 보험, 자동차, 증권, 은행 등 저PBR주들은 17~3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며 ”그만큼 밸류업 프로그램에 투자자들의 기대가 컸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앞서간 시장의 기대, 이로 인해 급등한 저PBR주들의 후폭풍은 감안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한국거래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한국거래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국은 가치 제고 노력을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기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증시의 재평가를 기대하는 것이라고도 얘기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6일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기업경영 문화가 확산·정착할 수 있도록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긴 호흡을 갖고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역시 "갑자기 (코스피가) 4000, 5000이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중장기적으로 계속 오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기업 밸류업의 성패는 기업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해 시장과 소통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며 "공시 의무화는 오히려 의미 없는 형식적 계획 수립‧공시만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증권가는 정책 발표 전부터 우려를 표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자율에 맡기는 권고 형태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꾸려진다면 차익매물이 나올 공산이 크다"며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 논의 이후 한국 증시에 대규모로 들어온 외국인이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12월 중장기 기업 가치 증진 방안으로 주가 제고를 위한 기업 인식 개선, 지배구조 개선, 영어 공시 확대, 투자자 소통 효율화를 논의했다. 지난해 1월에는 PBR 1배 이하 기업을 대상으로 개선 방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포함하는 '중장기 기업 가치 증진 방안' 초안을 발표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저PBR 개선안 마련 여부를 매월 공시한다거나 증시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상장사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자율적인 참여 유도가 아닌 패널티 부여에 방점이 찍힌 셈이다.

김대준 연구원은 ”일본처럼 PBR 1배 달성을 위한 방안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밸류업 기대로 주가가 오른 업종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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