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55) 한때 서울의 랜드마크였던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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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55) 한때 서울의 랜드마크였던 세운상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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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1970년대나 80년대에 강북 도심을 항공사진으로 둘러보면 유독 도드라진 건물이 있습니다. 일명 ‘세운상가 건물군’입니다. 종묘 앞 종로부터 남산자락 필동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건물군을 말합니다.

서울 강북 도심의 주요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흐릅니다. 종로 을지로 퇴계로가 그렇습니다. 강북 도심도 이런 흐름에 맞춰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운상가 건물군은 이런 동서의 흐름을 막아선 듯한 모습입니다. 남북 방향으로 약 1km가 이어졌으니까요.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도심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세운상가 건물군은 주요 도로를 경계로 건축된 4개의 건물군을 일컫습니다. 세운상가가 가장 알려져서 보통 세운상가라 불리기도 하지만 엄연히 독립된 건물들입니다. 

그런데 세운상가를 제외한 세 건물의 내부는 각기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세 건물의 남쪽과 북쪽 입구에는 서로 다른 이름의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청계·대림상가, 삼풍넥서스·호텔 PJ, 신성·진양상가. 그러니까 세 건물은 각각 한 채로 보이지만 사실은 두 동으로 이뤄진 건물입니다.

2021년 8월 세운상가. 종로 쪽 입구 앞 광장은 예전에 현대상가가 헐린 자리다. 세운상가 근처에서 빌딩 건축을 위한 크레인이 설치돼 있다. 사진=강대호

세운상가도 원래 두 동으로 이뤄진 건물이었는데 종로 쪽의 한 동이 철거되었습니다. 그 자리가 세운상가 입구의 광장입니다. 간판으로만 보면 세운상가 건물군은 7개 동으로 구성된 건물군입니다. 

지난 글에서 세운상가 일대가 ‘소개공지대’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소개공지대는 일제강점기 말에 공습으로 인한 화재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빈터로 만든 곳을 말합니다. 

소개공지대는 서울에 여러 군데 있었는데 종묘 건너편에서 대한극장 앞까지 이어지는 지금의 세운상가 건물군 터가 여기에 속했습니다. 물론 이곳에 살던 주민들을 내몰고 집들은 허물어 공터로 만들었습니다.

해방 후 공지로 남은 이 땅에 빈민들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전쟁 후에 이 현상은 더욱 심해져 종묘 앞부터 남산 아래까지 빈민촌을 형성했습니다. 게다가 종로3가 일대 골목들에는 이른바 ‘종삼’이라는 윤락가가 들어섰습니다. 

서울시는 도시 계획상 ‘도로’여야 할 이곳에 빈민촌은 물론 사창가가 들어선 것에 고민합니다. 그렇게 나온 대책 중 하나가 종묘 앞에서부터 남산 아래까지 잇는 건물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폭 50m에 길이는 거의 1km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계획을 위해서는 먼저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일명 ‘나비작전’이라 불린 윤락가 단속이 이루어졌고, 소개공지대였던 곳에 들어선 건물들의 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1966년 6월에 시작한 철거는 8월에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운상가 등 4개의 건물군이 들어서게 됩니다.

2010년 세운상가 건물군 일대.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곳

서울시가 계획한 세운상가 건물군은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1966년 착공해서 196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세운상가(世運商街)라는 이름은 세계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 되라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애초 계획에는 모든 건물을 공중보행데크(Elevated Pedestrian Deck)로 연결해 종묘부터 남산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청계천로, 을지로, 마른내길 등 도로를 경계로 독립된 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구조는 비슷한 모양이었습니다.

세운상가 건물군은 당시로서는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주상복합건물’로 계획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공중공원과 햇빛과 바람을 끌어들이는 ‘아트리움’을 도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계획에서 많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사업에 뛰어든 대형 건설업자들의 독자적 프로젝트로 변질했기 때문입니다. 건축 계획을 서울시가 세우고 설계도 서울시에서 위촉한 건축가가 설계한 일종의 공공 프로젝트였지만 건물 세우는 데에는 개별 건설업자들의 입김이 더 컸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세운상가 프로젝트’는 4개의 건물군으로, 각 건물은 다시 2개의 구역으로 나뉘는, 어떻게 보면 8개 건설업자에 의한 독립된 건축 프로젝트로 완성되었습니다. 

4개의 건물군은 현대·세운상가(현대상가는 2009년에 철거), 청계·대림상가, 삼풍상가·풍전호텔(지금은 삼풍넥서스와 호텔 PJ로 변경), 그리고 신성·진양상가입니다. 

1968년에 세운상가 건물군이 완공되자 이곳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됩니다. 1층에서 4층까지의 상가들은 아직 백화점이 활성화되기 전 쇼핑의 명소가 되고, 5층부터 들어선 실평수 20평형대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최고급 아파트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광은 짧았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자 명동에서 활성화된 백화점들로 인해 쇼핑의 명소라는 타이틀을 잃게 되고, 이촌동과 여의도, 그리고 강남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로 인해 고급 주거 공간이라는 지위도 넘겨주게 됩니다.

세운상가 내부. 1층부터 4층까지 상가 구역이다. 사진=강대호

잠수함과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

그나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자제품과 컴퓨터용품으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용산에 전자상가가 건설되자 세운상가 일대의 상권은 위축되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 불법 복제 영상물과 게임물 유통으로 새로운 명성(?)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세운상가는 한때 잠수함과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전설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세운상가 5층부터는 아파트였는데 지금은 각종 작업실과 사무실 등으로 쓰입니다. 복도 구조와 천장의 유리창을 보면 레트로하면서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세운상가 3층 외부에는 보행데크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법 복제 영상이나 음반을 팔던 곳인데 몇 년 전부터는 식당이나 카페 등이 영업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세운상가 건물군은 원래 공중보행데크로 서로를 연결하려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중보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3층 외부에 보행데크가 있는 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는 교량으로 연결되었고, ‘삼풍넥서스·호텔 PJ’ 구간부터 ‘신성·진양상가’까지는 철제 공중보도로 연결되었습니다. 

과거에 세운상가 건물군들은 도로 등으로 단절되어 있어 다른 건물로 가려면 우선 건물 밖으로 나간 후 길을 건너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 없이 3층 높이에 설치된 보행로를 이용하면 됩니다. 

세운상가는 낙후한 도심을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세운상가 건물군 주변이 개발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난 여러 글에서 언급한 세운4구역 외에도 청계천 변과 을지로의 여러 필지가 도심 재개발을 목적으로 철거되거나 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 건물이 세워진 곳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종로 쪽 세운상가 입구를 촬영한 사진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종로나 청계천 인근을 걷다 보면 남산과 북한산이 바라다보였는데 이제는 가려진 곳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도심 개발은 어떤 면에서는 시야는 물론 하늘을 막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운상가 못지않게 종로를 상징하는 건물인 낙원상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청계·대림상가’와 ‘삼풍넥서스’를 연결한 철제 공중보도.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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