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52) 크리스마스 시즌, 달라진 도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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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52) 크리스마스 시즌, 달라진 도심 풍경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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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해마다 12월 즈음이면 도시는 환하게 빛납니다. 물론 도시의 모든 구석구석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도심이나 상점가의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특히 서울의 백화점 인근은 환하게 빛나서 이 광경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까지 합니다. 모두 크리스마스 장식 덕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트리나 조명 등 크리스마스 장식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걸 벗어나 연말 풍경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오늘은 도시의 연말 풍경을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게 된 건 19세기 후반부터였습니다. 인터넷 등의 기록을 참고하면, 1884년 우리나라에 전해진 크리스마스는 그 이듬해부터 퍼지기 시작해 독립신문이 크리스마스에 휴무했고 이화학당도 휴강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1897년 배재학당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학교 안에 세웠습니다.

2021년 연말 정동길. 1897년 크리스마스 즈음 배재학당 학생들이 내건 ‘광조동방’ 등불을 재현했다. 사진=강대호

그해 성탄절 저녁 배재학당 학생들은 등불 수백 개와 한문으로 ‘광조동방(光照東邦)’이라 쓰인 십자가 등(燈)을 회당 앞에서 밝히며 조선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알렸다고 합니다. 광조동방은 ‘빛이 동쪽 나라에 비치다’라는 뜻입니다. 

지난 2021년 12월 서울시청 인근 정동에서 120여 년 전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정동은 배재학당, 즉 배재고등학교가 강동구 고덕동으로 옮겨가기 전 있던 곳입니다. 

덕수궁 돌담길 옆 정동길에 색색의 초롱들이 걸려있었고 그 사이로 한문으로 ‘광조동방(光照東邦)’이라 쓰인 십자가 등(燈)이 달려 있었습니다. 1897년 배재학당 학생들이 회당 앞에 세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재현된 거였습니다.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정경을 느끼게 한 이벤트였습니다. 

정동길 인근 서울광장에는 12월 즈음이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합니다.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는 서울의 연말 풍경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1965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그런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행사는 1965년부터 열려왔습니다. 과거 기사를 검색해보니 1965년에 2600개의 전구로 장식된 20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다는 기사가 등장합니다. 정황상 그전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 걸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1965년이 최초입니다.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은 연말을 장식하는 상징이었지만 1973년부터 1979년까지는 에너지 절약 시책 때문에 행사가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다 1980년부터 재개되었습니다. 그 후로 매년 11월 말이나 12월 초면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11월 20일에 점등식 행사가 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는 오는 31일까지 서울광장을 지킬 예정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한국 전나무가 대세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전 세계 나무의 95% 이상이 ‘구상나무’입니다. 학명(學名)이 ‘Abies Koreana’인데 한국이 최초 발견지라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1907년 제주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프랑스 신부 포리(Faurie)가 한라산에서 처음 발견했고, 이를 1920년에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윌슨 박사가 학계에 보고하며 구상나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구상나무는 미국에서 개량되면서 ‘한국전나무(Korean Fir)’가 되었고, 미국과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키가 작아 실내에 놓기 알맞고 나뭇가지도 장식품을 달기 쉽기 때문입니다.

2023년 연말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 구세군 모금함과 함께 있다. 사진=강대호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은 1926년 ‘윤심덕’이 녹음한 ‘파우스트 노엘’이라고 합니다. 이후 다양한 형태로 캐럴이 발전했고, 1950년대에는 창작 캐럴도 선보였습니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들이 캐럴 음반을 내기도 했는데 60년대엔 이미자, 70년대엔 조용필, 80년대에는 심형래 등이 그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음반 시장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0년대에는 ‘머라이어 캐리’ 등 해외 팝스타가 녹음한 캐럴 음반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형 기획사들이 소속 뮤지션들을 동원해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내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음악 산업이 음반에서 음원 중심으로 바뀐 지 오래인 요즘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음원이 발매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200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거리에는 캐럴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거리에서 캐럴을 듣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저작권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옥외 스피커에 일정 데시벨 이상으로 음악을 틀면 소음 규제에 저촉되고, 겨울철에 상점의 출입문을 열어놓으면 에너지 규제에 저촉된다는 게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한때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가 서울의 연말 풍경을 상징했다면 요즘은 백화점 등 유통가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연말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미디어파사드가 유명해지며 그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겨울 신세계백화점의 미디어파사드.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은 외벽에 조명 등으로 크리스마스 정경을 장식해오다 2014년 연말부터는 외벽에 영상을 구현하는 미디어파사드를 선보여 왔습니다. 덕분에 매년 연말 명동의 신세계백화점 일대는 ‘인증샷 성지’가 되었습니다. 매일 밤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인도는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지는 미디어파사드를 감상하는 인파로 붐비기 일쑤입니다.

다른 백화점들도 연말이 다가오면 크리스마스 장식에 정성을 들입니다. 특히 올해는 ‘더현대 서울’이 이른바 ‘오픈런’을 부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소문났습니다. 이 백화점은 실내에 안에 11m 높이의 대형 트리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상점가 골목을 구현했습니다. 

성탄절 '인증샷 성지'가 된 유명 백화점들

이곳에 입장하려면 인터넷으로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많은 이가 예약에 실패해 현장에 긴 줄이 늘어섰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이곳을 다녀왔다는 인증샷 올리는 게 올 연말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현대 서울뿐 아니라 강남과 잠실, 혹은 서울 인근 도시와 전국 대도시의 유통가 등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장식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연말 분위기와 크리스마스 풍경은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주도하는 모습입니다. 그 경쟁이 매년 치열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유통가의 크리스마스 마케팅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화려하고 규모가 커지는 모양새가 되는 거 같습니다. 코로나19 기간 외출이 어렵고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게 되자 오히려 백화점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2021년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미디어파사드 작품을 보려고 많은 인파가 몰리며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장식의 ‘집객’ 효과가 입증되면서 유통가는 연말 크리스마스 장식 준비에 더욱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 해의 마지막 매출을 끌어올리는 효자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2023년 겨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강대호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장식의 목적 중에는 고객 유입 확대와 체류 시간 늘리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릴 인증샷 명소를 찾아다니는 요즘 세태에도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12월이 되자 서울 도심 곳곳에는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마스나 연말에는 이웃을 돌아보자는 캠페인이 열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증샷 명소 못지않게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곳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따뜻하게 느끼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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