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사이다 같은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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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사이다 같은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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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힘을 제대로 쓰는 여자 3대가 나타났다. 엄마는 정체된 차들을 옆으로 밀어내 소방차에 모세의 기적을 열어주고 딸은 화재 난 건물에 뛰어올라 불에 갇힌 어린이들을 구출해 낸다. 할머니는 주차장을 막고 있는 차량을 번쩍 들어 주차선 안에다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제목부터 힘을 강조하는 JTBC 주말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는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이 대중들의 관심을 얻는 모습이다. 닐슨코리아 자료를 종합하면, 1회에 4.3%로 시작한 시청률이 2회에 6.1%로 올랐고, 2주차인 3회에 8.0%를 찍더니 4회에는 9.8%를 기록했다. 점점 올라가는 추세로 3주차인 이번 주말에는 10%를 넘길 기세다. 과연 <힘쎈여자 강남순>의 어떤 요소가 대중들과 통했을까?

몽골이라는 배경이 풍기는 매력

<힘쎈여자 강남순>의 서사는 몽골에서 시작한다. 몽골은 시각적 배경이면서 이 드라마의 서사를 태어나게 한 고향이기도 하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은 1회부터 주요 장면에 등장한다. 그곳엔 유목민 가족이 살고 있다. 부부와 그들의 딸 체첵. 사실 체첵은 한국에서 몽골로 여행을 왔다가 미아가 된 아이를 몽골 초원의 부부가 딸로 거둔 거였다. 이 소녀는 드라마의 주인공 ‘강남순(이유미 분)’이다. 

몽골은 주인공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주는 곳이다. 한국의 가족들에게 몽골은 딸을 잃어버린 데라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남순에게 몽골은 키워준 부모가 있는 따뜻한 고향이다. 그렇게 몽골은 <힘쎈여자 강남순>의 서사를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

<힘쎈여자 강남순>의 초기 서사는 가족을 찾기 위해 남순이 겪는 좌충우돌을 그린다. 그런데 지난주 3회와 4회에 걸쳐 헤어진 가족들이 상봉했다. 가족 찾기는 이 드라마 전체를 끌고 가는 서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몽골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는 장치는 왜 쓴 걸까.

아마도 몽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몽골인들은 시력이 좋은 데다 힘이 장사라는 이미지가 있다. 강남순이 그렇다. 괴력은 물론 강 건너 펜트하우스에 있는 남자 주인공이 무슨 색 속옷을 입었는지까지 또렷이 볼 수 있는 시력까지 지녔다. 그러니 주변 인물들은 남순을 몽골에서 온 장사 소녀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힘의 원천은 다른 데 있었지만.

몽골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치로도 쓰였다. 드라마 1회에는 몽골 초원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전통 축제가 열리고 유목 생활도 펼쳐진다. 양치기 소녀 남순이 양몰이를 하거나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모습도 나온다. 몽골의 정경을 그려내는 눈에 익은 설정이지만 유려한 카메라 앵글로 드라마 초기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몽골을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여럿 있었다. MBC <나혼자 산다>가 그랬고 JTBC <택배는 몽골몽골>이 그랬다. 아마도 몽골이 핫한 여행지로 뜨고 있는 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대중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라는 관점에서 몽골을 배경으로 선택했다면 <힘쎈여자 강남순> 제작진들의 의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간혹 등장하는 몽골 풍경에 눈이 시원하다는 평이 많으니까.

B급 판타지와 가모장적 설정

<힘쎈여자 강남순>을 장르로 정의하자면 판타지 영웅물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법은 분명 판타지이지만 B급 정서도 노골적으로 내풍긴다. 그리고 고착된 관행을 확 비틀어 버린다.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허구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어린이 강남순이 몽골 축제의 씨름 대회에서 어른 장사를 공기놀이하듯 다루며 우승한다. 그리고 남순이 몽골에서 던진 말방울이 한국까지 날아가 남자 주인공 뒤통수를 때린다.

현실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1회부터 보여주며 <힘쎈여자 강남순>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 유치하게 보이는 건 오해라고, 원래 그렇게 의도한 거라고. 이렇듯 당당한 넉살이 대중들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가부장적 정서도 비틀었다. <힘쎈여자 강남순>의 여자 3대는 힘이 강하다. 힘을 이용해 돈을 벌고 가장 역할도 한다. 그런 남순의 할머니 길중간(김해숙 분)은 마장동 정육업계의 전설이다. 정육점 업주들을 등치는 조폭들을 맨주먹으로 혼내주며 마장동의 평화를 지켜낸 여왕으로 등극했다.

남순의 엄마 황금주(김정은 분)는 결혼하기 전 남순의 아빠에게 먼저 청혼했다. 딸을 낳게 해달라고, 그리고 돈은 자기가 벌 테니 육아를 맡아 달라며. 국밥집으로 시작한 황금주의 사업은 금융업으로 발전하며 강남의 큰손이 되었다.

강남순 집안의 힘은 오직 여자에게만 유전된다. 딸과 달리 아들은 힘이 없다. 힘쎈 여인들의 남편들은 국외자다. 남순의 할아버지는 자아를 찾겠다며 가출한 것으로 나오고 남순의 아빠는 몽골에서 남순을 잃어버린 탓에 이혼당한 것으로 나온다. 이렇듯 <힘쎈여자 강남순>은 여성 중심의 가모장적(?) 설정으로 충만하다. 

사실 사회나 가정에서 젠더 롤의 구분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전히 캐릭터 설정이나 배역을 판에 박힌 듯 성별로 구분해 만들기도 한다. 특히 지상파의 주말 저녁 드라마가 그런 경향이 짙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힘쎈여자 강남순>은 대중들에게 차별된 모습으로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사진제공=JTBC

답답할 즈음 사이다 한 잔

<힘쎈여자 강남순>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사이다’를 마신 듯 시원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SNS와 인터넷에 그렇다는 반응이 많다.

강남순은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사기를 당한다. 남순은 나중에 이 사기꾼을 만나게 되지만 한국의 법률이 사기 범죄에 관대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남순은 사기꾼이 멘 명품 가방을 몽골로 날려 보내며 스스로 응징한다. 그리고 “사기꾼이 제일 나빠!”라고 외친다.

주변에서 사기의 희생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전세금 사기부터 중고 거래 사기까지 그 규모와 양상도 다양하다. 남순이 외친 ‘사기꾼이 제일 나빠’라는 말은 이들 사기의 희생자들이 소리 높여 외치고픈 말, 결국 희생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향한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순의 엄마 황금주는 주변에서 마약의 희생자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 아니야!”라고 각성한다. 허구인 이 드라마에서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 지점이기도 했다. 

황금주는 자기의 힘을 마약 사범을 소탕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힘을 올바른 데 쓰지 않으면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까 여자 3대가 가진 힘의 원천은 바로, 힘을 옳은 일에 쓰는 것에서 오고 있었다. 

오늘날 ‘힘’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용례로 쓰인다. 말 그대로 힘쓰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하고 특권이나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떤 뜻으로 쓰든 힘은 방향성이 중요하다. 어딘가로 향하는가 하는.

<힘쎈여자 강남순>에서도 ‘힘’은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런 <힘쎈여자 강남순>은 무엇보다 중요한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힘은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힘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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