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그렇다면 최근 들어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연기금은 어떨까?
연기금은 작년 한해 3조원 정도를 순매도해서 큰 규모를 매도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불과 2개월 반 동안 15조원을 순매도했고, 이틀을 제외한 모든 거래일에 매도를 했다.
특히 연기금은 성격상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는 기관투자자이기 때문에 자금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매도를 했다기 보다는 매도 의사결정을 내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 역시 일부러 증시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고, 연기금의 자산 운용 성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연기금은 개별 기관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중기적인 자산 배분의 관점에서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 예를 들어 작년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비중은 21.2%로 2021년말 목표 비중 16.8%를 크게 넘어서 있다.
국내주식 보유비중 초과한 국민연금
따라서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 주식을 꾸준하게 팔아야 하는 것이다. 반면 해외 주식 비중은 현재 23.1%이고 연말 목표가 25%를 넘는다. 해외 주식은 오히려 매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왜 연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고, 해외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하는가?
이는 결국 우리가 연기금에게 부여한 목표가 국내 주식시장의 부양이 아닌 안정적이고 높은 장기적 수익률이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률을 높일 것이라는 확실한 전망이 있다면 달라질 수 있지만, 이를 확신할 수는 없다.
사실 중기적으로 전략적 자산 배분 비중을 결정하는 시스템 역시 이러한 전망의 어려움을 감안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해외의 주요 연기금 역시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혹시 국민연금이 설정한 16.8%의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이 낮은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높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글로벌 관점에서 1.5% 수준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준으로 보면 미국 시장은 거의 45~50%에 달하며, 중국과 일본은 9%, 6%를 넘는다. 국가의 규모 때문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비중이 중요한 것은 해외 주요 연기금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미국 연기금 중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US)의 보유 주식 자산 중 국내, 즉 미국 주식 비중은 50% 수준인데, 이는 자국 투자를 많이 해 미국 증시를 부양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미국 시장의 글로벌 비중을 고려한 결과다. 만약 국내 주식시장 부양이 목적이었다면 미국 주식을 이보다 훨씬 더 높은 비중으로 보유했을 것이다.
개념적으로 연금과는 조금 다른 국부펀드(예를 들어 원유 수입을 바탕으로 한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들의 경우에는 자금의 성격상 전체 주식투자 비중이 높긴 하지만, 주식 포트폴리오는 국내, 해외로 구분하지 않고 선진국과 이머징 국가로 구분되어 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GIC의 경우에도 주식자산은 전체 30% 정도인데 이중 선진국 주식과 이머징 마켓 주식에 반반 정도 나눠 투자하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현재의 글로벌 자산 시장의 구도 하에서 나름의 수익률과 위험 노출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적의 자산 배분 전략을 취하는 것이 글로벌 주요 연기금의 전략이다.
최적의 자산배분은 글로벌 연기금의 기본 전략
특정 기관이 한 시장에서 전체 비중 대비 너무 높은 비중을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여러 문제를 낳는다. 분산효과를 볼 수 없다는 문제도 있지만, 특정 시장에서 해당 기관이 너무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경우 의도한 바와 다른 운용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즉, 그 기관이 사면 오르고, 반대로 그 기관이 팔면 내리는 현상 때문에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만약 우리 연기금이 앞으로 국내 주식을 더 많이 사기로 결정하고, 다른 국가의 연기금들도 자국의 주식 비중을 더 높이는 경우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특정 시장에서 국내 투자자는 늘고 외국인 투자자는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CALPUS가 미국 주식을 끌어 올리기 위해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이면, 반대로 다른 지역의 주식 비중은 줄여야 하고, 모두가 이런 식이면 외국 연기금이 미국 주식 비중을 줄여 결과는 지금과 같은 자산배분을 할 때보다 못해질 것이란 얘기다. 결국 각 증시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기업을 키워내는 것이지, 특정 기관이 그 시장 비중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시작 일각에는 팔아야 하더라도 연속 50일간 계속 파는 것은 문제 아니냐는 시각도 있고, 한국 기업이 좋아졌는데 우리 연기금이 평가를 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고 단기에 매도를 집중하면 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한국 기업이 좋아졌다는 평가는 주관적인 것이다. 맞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투자는 불확실성 하에서 상대적인 대안들 중 선택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연기금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이 좋아졌어도 다른 나라에 더 좋아진 기업이 있다면 그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우리가 부여한 목표에 맞는 행동인 것이다.
현재 연기금의 모든 의사 결정이 미래에 가장 좋은 높은 수익률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고 보유한 국내 주식을 안 파는 것이 시간이 지난 후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운용자들의 전문성을 더 높이고, 의사결정 시스템을 더 선진화하라는 요구는 언제든 정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와 특정 시장에 더 투자하고 그 시장의 주식을 팔지 말라는 요구는 전혀 다른 얘기다. 개별 국민들이 장래의 수익자로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기관으로서도 그런 의견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결정과 책임은 모두 해당 기관에 있고, 국내에서 연기금 자산 운용에 가장 전문적인 사람들은 그 내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금은 주식투자자가 아닌 모든 국민을 고객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정 고객들의 요구만 반영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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