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자본시장 키우려면 '전문성·도덕성·가격 메커니즘' 삼박자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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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자본시장 키우려면 '전문성·도덕성·가격 메커니즘' 삼박자 갖춰야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승인 2021.05.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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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지난 몇 년간 SNS의 발달과 정보 비대칭성의 완화, 개인 직접 투자의 급증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모습이다.

미국 게임스탑 사태, 우리나라 공매도 폐지 운동과 연기금의 국내 주식 매도 비판 등 과거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사건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라 자산시장 중심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자산 및 소득 하위 계층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시장가격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전문성과 시장가격 메커니즘이라는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현상과 의견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연기금 주식매도를 둘러싼 논란, 바람직한가

전문성과 관련해 대표적인 사례는 연기금의 연속적인 주식 매도에 따른 논란으로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연기금은 5월 7일까지 18.9조원의 국내 주식을 누적 순매도 했고, 7일을 제외한 모든 거래일에 순매도를 나타내 이슈의 중심으로 떠 오른 바 있다.

지역별, 자산별 장기적 배분 비중의 조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인 매도와 배분 비중 조정의 정당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따라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례적으로 비중 조정의 탄력성을 더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즉, 연기금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 실제 운용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연기금은 국민 개개인의 돈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기금에 가입되어 있는 모든 수급자는 운용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 의무적인 가입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권리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연기금의 운용자와 운용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운용 결과에 대한 예단,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한 특정 자산 배분 비중의 요구는 다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운용자가 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이 저평가되어 있는데, 왜 비중을 줄이냐는 주장은 미래에 결과적으로 전체 수급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피해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운용자 입장에서는 나쁜 결과가 나타났을 때 이의 책임을 온전히 지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잘못된 의사 결정이 나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문가를 뽑아 권한과 책임을 주고, 우리의 목표인 연기금의 안정적 수급을 지키라고 한 원칙에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연기금의 주식매도를 둘러싼 논란은 결과적으로 전체 수급자의 이해에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장가격 메커니즘과 관련된 하나의 문제는 차입시장의 적정 금리 문제를 둘러싼 이슈에서 발견된다. 물론 이러한 이슈에는 계층별 이자 부담의 차별화라는 사회 정의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안한 가격 결정이라는 자본시장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지켜져야 한다. 

사실 자본시장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주식이나 외화 현물 시장처럼 주식이나 달러를 돈으로 교환하는 시장을 상정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 더 큰 부분은 사실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금리로 이뤄지는 차입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 대표적이지만, 이는 전체 차입시장의 일부일 뿐이다. 외환과 관련해서도 기간과 위험을 반영한 가격이 존재하는 큰 규모의 차입시장이 존재하며, 나아가 공매도에서 사용하는 주식 역시 기간과 위험을 반영한 가격이 존재하는 차입시장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차입 시장은 기본적으로 기간을 포함하기 때문에 위험이 존재하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 상대방의 상환 위험이다. 그리고 이 위험이 가격에 반영된다.

즉, 주식시장에서 주식 A를 매도하거나 매수할 때 거래소가 결제를 보장하는 한 거래 상대방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반면, 차입시장에서는 거래 상대방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는 얘기다. 채권 유통시장도 중개인의 거래를 보장하는 한 거래 상대방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원래의 차입자인 채권 발행자의 신용도는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개인은 이미 상환 위험이 가격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개인은 신용평가 시스템에 따라 자신의 신용대출 금리가 결정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심지어 특정 신용등급 이하의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1금융권 대출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과 기업은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2~3차 금융권을 이용하기도 한다. 

언뜻 생각하면 이러한 시스템은 매우 부당해 보인다. 돈과 자산이 많고 신용도가 높은 주체가 더 유리하고, 그렇지 않은 주체가 불리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출을 해 주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합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시스템이다. 차주의 신용 정도에 따라 자신이 제공한 대출로부터 발생하는 손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높은 신용등급의 주체들은 대부분 차입한 돈과 이자를 제때 갚지만, 신용등급이 낮아질수록 돈과 이자를 갚지 않는 비율은 높아지고, 이는 결국 대출해 주는 금융기관의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근간 흔드는 사회적 요구, 신중히 접근해야

만약 지금과는 달리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주체에 대해 더 낮은 금리를 부여하도록 정하면 어떻게 될까?

금융기관은 해당 대출을 아예 포기할 것이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제도권을 이용하는 대신 다른 방식을 통해 빚을 내려 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하도록 강제한다면 금융기관의 위험은 커지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결국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경우는 세금이 사용된다.

사실 정책당국은 신용위험별 금리를 다룸에 있어 오히려 금융기관이 위험을 제대로 평가해 가격, 즉 대출금리를 결정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금융기관은 금리가 낮아질 경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채권의 위험과 가격에 있어 적절한 균형을 맞추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문제가 생긴 대표적인 경우가 2008년 금융위기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당시 금융기관은 신용도가 낮은 주택 구입자들에게 적절하지 못한 금리로 대출을 제공한 셈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기업에 대한 각종 정책자금이 고위험고수익 채권시장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는데, 이 역시 상당 부분 위험과 가격의 적절한 균형이 맞춰지지 않은 데 기인한다.

현재의 금융기관과 자본시장 제도가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돈이 개입되기 때문에 도덕적인 일탈이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고, 도덕적이지만 전문적이지 않은 금융기관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제도적인 개선과 자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융기관은 스스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고도화해야 하며, 정책당국은 다양한 제도 개선 요구를 면밀히 검토하고, 금융기관의 도덕성과 관련해 엄격한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전문성을 인정해 맡겼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행위 자체가 아닌 행위의 결과로 얘기해야 하고, 자본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흔드는 방향의 요구는 더 주의 깊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전쟁터인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우리 금융기관과 자본시장이 경쟁력을 갖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 최석원 센터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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