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뉴 트렌드 만드는 음악공장, ‘싱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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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뉴 트렌드 만드는 음악공장, ‘싱어게인’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2.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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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기에 슬픈 사람들... ‘무명 연예인’이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얼굴이 명함이고 이름이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무명(無名)’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삶은 한없이 처절해진다. 그들에게 ‘유명(有名) 연예인’이 누리는 다양한 기회나 몸값은 별세계의 일일 뿐이다. 

때로는 재능보다 인내심이 우위에 선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노력하며 때를 기다리는 모든 과정이 희망과 희망고문을 교차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희망이란 건 희망고문을 견뎌낼 때야 비로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싱어게인, 무명가수전’ - 이름 없는, 아니 대중이 모르는 이름의 그들에게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하고 TV앞에 앉았다. 어떤 직업을 가졌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쳐도 버텨내야 하는 게 인생이기에 매순간이 길을 찾기 위한 리부팅의 연속 같다. 

자극제로의 순한 맛 오디션 ‘싱어게인’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들, 노래는 익숙한데 얼굴과 이름은 낯선 사람들, 한때 히트곡을 불렀던 이제는 잊혀진 가수들까지...

‘싱어게인’에는 다양한 무명가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음반을 내고 ‘가수’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대중이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내 이름을 불러줘’라고 노래를 통해 호소하는 듯하다. 

그들은 기꺼이 또다시 평가 받기를 자처하며 무대에 섰다. 여타의 오디션과는 달리 이미 가수인 사람들끼리의 대결은 경쟁이라기보다 ‘무명’의 터널을 지나 온 같은 경험치를 공유하고 있기에 동질감부터 느껴진다. 

‘싱어게인’에는 경쟁구도가 만들어내는 서늘함도, 날카로움도 없다. 서바이벌 형식이지만 최고의 1인이 되려하기 보다는 오롯이 음악에 집중하고 서로를 향해 토닥일 줄 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는 ‘경쟁과 성공’이라는 키워드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사회에서 우리가 바랐던 모습인지도 모른다. 

프로그램명 그대로 ‘다시’ 노래할 기회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절박함 그 자체다. 눈물바람을 유도하는 연출용 감성팔이가 필요치 않은 이유다. 모처럼 착한 오디션이 주는 ‘자극 제로’의 순한 맛에 대중이 호응하는 건 그동안 ‘자극과잉’이 주는 피로감에 대한 반증이다.

싱어게인 포스터. 사진제공=JTBC

장르의 다양성으로 대중 취향 저격

‘장르가 30호’라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가 반갑다. 록이 이토록 매력적이었던가 싶을 만큼 ‘록 스피릿’에 빠져들기도 한다.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오버그라운드 음악이 공존하던 시기, 귀호강이 가능했던 대중음악의 황금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참 반갑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다는 건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싱어게인’은 현재 유행하는 음악트렌드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뉴 트렌드’를 만드는 음악공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한 셈이다.

시류에 편성하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귀가 열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참가자들의 스타일에 저절로 눈이 간다. 그리고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맘이 열린다. 무대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견뎌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누가 더 잘해’라는 뻔한 평가보다 ‘힘내, 그리고 계속해’라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런 탓에 8명의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역시 따뜻함이 배어있다. 

11호, 33호, 30호, 20호, 37호, 63호 등.. 이름보다는 번호가 더 익숙한 무명가수들이 오디션을 통해 재도전하고 이름을 찾고 다시 노래를 부르고, 이제야 비로소 그들의 이름을 대중이 불러주고 있다. 이는 살아가기 힘든 시기, 스스로에게 ‘버텨냄’을 주문해야 하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감동 스토리다. 

이제 흙속에서 벗어난 진주들이 얼마나 멋지게 비상할지 지켜봐야겠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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