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살아있는 기자정신에 대한 보고서, 영화 ‘438일’
상태바
[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살아있는 기자정신에 대한 보고서, 영화 ‘438일’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25 13: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영화 ‘438일’은 스웨덴의 두 저널리스트가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감금당한 억압의 시간이다.

또한 생사를 넘나들며 처절하게 고통으로 점철된 날들에 대한 고민과 저항, 투쟁의 기록인 동시에 기자정신으로 버텨낸 날들에 대한 값진 보고서다. 

조작된 진실이 만들어낸 왜곡된 저널리즘

2011년 6월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마틴’(구스타프 스카스가드)과 ‘요한’(마티아스 바레라)은 소말리아에서 에티오피아로 불법 입국을 시도한다.

스웨덴의 외무장관인 ‘칼빌트’와 글로벌 석유기업 룬딘의 수상한 관계, 에티오피아 정부가 묵인한 이들의 석유전쟁으로 인해 오가덴에서 발생한 주민 학살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국경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에티오피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마치 분쟁지역에서 잡아들일 테러리스트가 필요했었다는 듯 영상에 담긴 두 사람에 대한 해석은 이미 저널리스트가 아닌 반군과 손잡은 국제 범죄자일 뿐, 이 둘의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는다. ‘답정너’의 시나리오는 보이는 것에 거짓 해석을 덧입히면 얼마든지 ‘조작된 진실’이 가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목숨을 담보한 거짓 진술을 강요받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양심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마틴은 두 기자의 목숨보다 국익을 중요시하며 ‘조용한 외교’를 내세우는 조국, 스웨덴 정부와 마주하게 된다. 

거대기업과 자국의 정치인, 독재국가와의 커넥션 앞에 진실은 무력하다. 살기 위해 강압된 거짓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원하는 대로 테러리스트임을 자백하고 법원은 이미 정해진 중형, 11년 징역형을 선고한다.

죄수의 인권은 더 이상 없는 곳,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침묵만이 답인 곳, 저널리즘의 양심은 삶을 위태롭게 하는 곳에서 더 이상 선택지란 없다. 

사면 약속을 믿고 카메라 앞에서 테러 혐의를 인정하지만 결국 날조된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마는 마틴과 요한. 에티오피아 방송국 PD인 압둘라히(파이살 아메드)에 의해 조작된 진실의 증거 영상으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이들의 지옥 같았던 438일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된다.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가 매몰돼 버린 ‘저널리즘의 양심’을 찾았다.

영화 '438일' 스틸컷.

묵직한 울림을 주는 실화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극영화 형식임에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어떤 것이 허구의 세계이고 또 사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작품이 최고의 몰입감을 주는 이유다. 

‘예스퍼 갠스란트’ 감독은 무거운 주제를 요란하지 않게 군더더기 없이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휴머니즘’은 이 영화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마틴과 요한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되며 가슴 찡한 브로맨스를 선사한다. 

독재국가의 탄압을 온몸으로 겪지만 두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에서 함께 생활한 에티오피아인 죄수였고,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압둘라히PD였다. 함몰된 진실에도 사람에 대한 예의와 온기는 살아있다. 이처럼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따뜻한 온도는 휴머니즘에 있는 것이다.
 
삶과 타협한 마틴과 요한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삶이기에 저절로 감정이입하는 순간 목도하게 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명’은 온 신경을 곧추세운다. 

“그저 욕심이라면 보도로 진실을 규명하는 겁니다. (중략) 불법 입국죄는 인정합니다. 위험성을 알았지만 그걸 감수하는 게 기자의 숙명입니다. 저하고 제 동료 요한이 매일 위험을 마주하며 사는 건 저널리즘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마틴의 발언은 자유가 말살된 곳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기자정신’이며 세상을 밝혀주는 힘이다. 

영화 ‘438일’은 과거와 달리 그 가치가 폄하되며 비판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 현실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작품 말미 실제 기자회견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저널리스트 ‘마틴 시뷔에’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인 동시에 저널리즘의 모든 것이다.

“두 명의 기자쯤은 가둬둘 수 있겠지만 기자정신 만큼은 가둬둘 수 없습니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오즈사랑 2021-01-25 23:02:56
영화에 대한 통찰력있는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