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칼럼] 뒷담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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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칼럼] 뒷담화에 대하여
  • 지예
  • 승인 2015.11.26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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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 네 페이스 북에 사진을 아빠 친구가 보았다는 구나

아빠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빠가 할 이야기가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 아빠 친구들은 다 어른들이라 너희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아빠 친구들도 네 페이스 북을 보고 있다는 걸 좀 신경써줬으면 한다.

아빠가 이렇게 말한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몇 마디 하다가 그저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하고 말았을 텐데 이 날은 오기, 아니 쌓여있던 짜증들이 분출했다.

- 내가 아빠 친구 분들에 대해 이런 얘기, 실례인 거 알지만..... 그 분들 심심하셔? 내 페이스북 보고 싶으면 친구 신청 하시라고 해. 왜 그렇게 살금살금 아빠 꺼 타고 내꺼와서 염탐하고 가고 그래? 그리고 이건 내 SNS야, 단지 아빠 친구 분들 보라고 만든 거 아니라고!

 

정말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빠가 딸 자랑이 유별난 건 알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절대 날 칭찬 하지 않아도, 뒤에선 내 이야기뿐인 우리 아빠. 그래서 아빠의 친구들 모두 나의 활발한 대외활동(?)에 대해 알고 계셨고 그러니 나에 대하여 궁금해들 하시는 게 당연하긴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주(?) 내 페북에 들어와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간다는 건 좀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정말로 친구 신청을 하면 되지 않은가!

 

그리고는 날 걱정한다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늘 안 좋은 이야기들 뿐. 아빠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은 아빠 친구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 년 전, 내가 아는 오빠와 아는 언니가 어쩌다 알게 되었다. 그 오빠는 우리 엄마 또래의 나이이고 언니는 나보다 세 살 많았다. 그 오빠는 예술 계통에 종사해서 아는 것이 많았고, 일 년에 두 번 정도 종종 나와 커피를 마시는 그런 사이였다. 처음 만난 언니와 오빠는 당연히 어색했고, 화두는 역시나 공통된 지인이자, 만만한 나였을 거라 짐작은 했다. 뭐, 그 둘이 그렇게 해서라도 친해진다면 나야말로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을 테였겠지?!

 

그런데 맙소사,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기분 나쁜 일이 생겨 버렸다. 언니가 전화를 해서 나에게 물었다.

- 너 그 오빠한테 이미지가 왜 그래?

- 무슨 소리야?

- 너 걱정? 음, 걱정은 아니고 뒷담화 엄청 하던데?

나로서는 정말 뜻밖의 이야기였다.

 

- 너 언제까지 정신 안 차리고 놀 거냐고 말이야. 그럴 나이가 아닌데. 걱정 되서 그런다고 엄청 네 이야기를 했어.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예전에 나에게 작지만 비즈니스적인 부탁을 한 일이 있었고, 난 그의 일을 시간 내어 흔쾌히 돕기까지 했었다. 난 최소한 그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나의 사생활에 대해 잘 알만큼 나와 친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오히려 나와 자주 만나는 사이인 언니는 몹시 당황했다고 했다. 언니는 별로 친하지도 않고 나이도 꽤 차이나는 그 어르신께 조심스럽게 대들었다.

- 걔가 그런 것만 SNS에 올려서 그렇지 제 앞가림은 다 해요.

-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 눈엔 다 보여. 주변에서 다 그 아이를 걱정해.

도대체 또 누가? 순간적으로 이 사람과 자주 만나는 이들이 궁금해졌다. 또 누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지.

 

흔히들 ‘뒷담화’는 여자들이 많이들 하는 줄 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뒷담화가 제일 심한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4-50대 중년 남자들이다.

 

나는 지금 9살 많은 30대 중반의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내 남자친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비교적 본인의 또래 친구들보다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 남자친구가 4-50대에 얼마나 더 멋져질지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 물론 내가 멋지다고 하는 이러한 중년의 남자들은 남자로서의 모습이다. 비교적 남성성을 잃지 않은 상태로의 남자!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호르몬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0대에 2차 성징을 겪듯이 말이다. 중년이 넘어선 남자들은 예전만큼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으며, 그 대신 상대적으로 에스트로겐 분비가 많아진다. 반대로 여자들의 경우는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예전 같지 않으며 테스토스테론이 비교적 활발하게 분비된다. 잘 알다시피 나이가 들면 여자들이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가 이러한 경우다.

 

이렇듯 약간의 ‘여성화’가 이루어진 중년 남성들의 경우, 조금 변화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예를 들어 보자. 어릴 때는 어쩌다 주먹다짐, 30대 때만 하더라도 남자들끼리 서로 섭섭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가 있으면 술잔을 부딪히며 혹은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그러지마, 새끼야!’ 라는 말과 함께 훌훌 털어버리는 게 가능한 듯 보인다. 그러나 10년만 지나도 이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어쩌면 별 것 아닌 것에 서로 삐쳐서 오랫동안 보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비단 친구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쿨-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소심해진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심지어 안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들이 10대 때나 좋아하던 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뒤에서 남 이야기를 하는 ‘뒷담화’에 맛을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젊었을 적(?) ‘우리 엄마가 왜 저러지’ 싶었던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지독한 오지라퍼가 된다. 맙소사. 이건 좀 견뎌주기가 힘들다.

 

‘뒷담화’에는 무언가 쾌감이 있다. 남을 내리깔아 뭉게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며 우월감에 젖을 수 있으며, 또 뒷담화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외롭다는 감정 역시 조금 해소를 시킬 수 있다. 그러니 뒷담화만큼 재미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인생의 반을 지나온 그가, 이런 쾌감을 맛보고 있다니 어쩐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야만 우월감을 느낄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인가? 특정한 대상이 없이 혼자서는 그런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인가. 오지라퍼가 되어 뒷담화를 해대는 것이 그가 중년이 되어 알게 된 즐거움이란 말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 없던 우리 아빠는 요즘 부쩍 말수가 늘었다. 오히려 나는 이런 변화를 기쁘게 생각한다. 가장답고, 남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빠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며 자신의 계획과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그 중에는 외동딸인 나와 둘이 떠나는 세계일주도 물론 있다. 그러니 나는 아빠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이 더없이 행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오지라퍼이거나 뒷담화를 하진 않는다. 그러니 더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딸인지라, 아빠의 이야기라면 뭐든 다 듣고 싶긴 하지만!)

 

뒷담화의 대상이 된 입장에서 사실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오래가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런 글을 쓰는 건, 그들 중 누구라도 혹은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사실을 알았으면 해서이다. 왜 그런 지. 묻고 싶다. 예전에도, 한 10년 전에도 그렇게 남 뒷담화를 했었는지.

 

난 중년의 남자가 얼마나 멋진지 알고 있다! 그 멋진 나이를 겨우 뒷담화 같은 데에 쓰시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 같은 20대 여자에게도, 훨씬 더 매력적인 남성으로 보일 것이다. (아, 물론 여자들도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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