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칼럼] 욕망과 활력을 일으키는 가을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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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칼럼] 욕망과 활력을 일으키는 가을 전어
  • 지예
  • 승인 2015.11.0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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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한 속살, 뼈의 단단함…남편 맛에 며느리 돌아온 게 아닐까

 

작년 일이다. 장마가 끝나니 대기 중에 낯설거나, 혹은 꽤 익숙한 냄새가 흘렀다. 선풍기를 틀려고 살짝 열어둔 창문에서 그것들이 나의 침실로 흘렀다. 오랜 장마 때문에 축 쳐진 것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침대에 몸을 묻은 채, 그저 코로만 그 낯선 것을 더듬거렸다.

‘이게 뭐지?’

그날 밤 어떤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선명한 기억은 아니다. 어렴풋한 색감이나 온도만이 기억날 뿐이다. 적갈색, 고동색, 베이지색, 흰색, 검은색, 그리고 다시 고동색.... 고동색....! 고동색은 어느 누군가의 눈동자였다. 비가 그치고 갠 밤하늘처럼 고동색의 깊은 눈동자.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대한 설렘 혹은 두려움으로 인한 알 수 없는 떨림이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으스러질듯.

가을이었다. 내가 밤새도록 탐닉한 것은 새로 오신 가을이었다. 어느덧 가을이 오고 있었고, 나는 오랫동안 가을 냄새를 맡았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고동색 눈동자 때문인지, 혹은 가을 냄새 때문인지 나는 오전에는 무척 설레여하며 간만에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후가 되니 여전히 기가 센 태양이 건재하고 있었다. 아침의 대기는 마치 환상이었던 냥, 내 꿈이었던 냥 온데간데 없었다. 하지만 결국 해가 지지않는 나라에서 모두 독립이 되었듯이, 이 도시도 언젠가는 더위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곧 대지는 가을녘을 만나 춤을 추겠지. 사람들은 배가 부르고, 고혹적인 컬러로 멋을 부린 채 거리를 누비고, 테라스에 앉아 바삭해진 담배를 피울 것이다.

 

가을이 되니 가을 같은 것이 먹고 싶어졌다. 추수의 계절답게 곧 먹을 것이 넘쳐날 것이다, 아니다. 여름에도 충분히 넘쳐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단지 핑계를 댈 뿐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계절들을 버티고 마침내 보릿고개까지 살아남은 선조들이, 마침내 추수의 계절을 맞아 감사의 예를 다하고 먹을 것을 즐겼던 유전자가 내게도 남아있음은 물론이었다. 가을이면 먹을 것이 당기고, 하물며 하고 싶은 일이라고는 앉아서 책을 앉으며 담배를 피우는 일뿐이니 살이 찌는 게 당연하다.

‘진짜 이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게 뭐람.’

생각해보니 그런 건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다. 바다는 아무래도 아직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신성스러운 영역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남자친구와 소주나 한잔 하려고 들른 횟집에서 ‘가을 전어 개시’라고 쓰인 낯설거나, 혹은 꽤나 익숙한 글자를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가을전어잖아.”

“응.”

글쎄, 나는 솔직히 전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 해 가을 전까지만 해도 가을 전어가 무슨 맛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안 익힌 생선을 좋아했고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회를 혼자 먹을 리 없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배고픈 자취생활을 했다. 그래서 누군가 ‘회를 사주겠다’고 했을 때 그저 따라 나갔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이게 무슨 생선인지, 이 생명체가 죽기 전에 어떤 가죽을 덧입고 태어났는지, 죽기 전 어떠한 크기였는지, 어떠한 표정이었는지, 눈동자는 까맸는지, 청록색이었는지, 고동색이었는지, 깊었는지, 잡힐 때 누구와 함께였는지, 서울로 오기까지 어떠한 여정에 있었는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었다. 눈치가 보이지 않게 한 점이라도 더 입에 가져가는 것이 중요했을 뿐.

잠시 후 익숙한 단골 횟집 접시에 ‘가을 전어’ 세꼬시가 나왔다.

“에!”

“응?”

남자친구는 나의 반응을 살피더니 나의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올해 첫 가을전어네, 짠!”

“짠!”

“전어는 초장이지.”

나는 소주를 입에 털어 혀를 말꼼하게 만든 뒤, 젓가락으로 조각난 전어를 집어 들었다. ‘며느리’같은 고전적인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전어는 아주 귀여웠다. 오히려 미국식 스낵 같았다. 조그맣고 귀여운 모양에, 다른 회처럼 힘없이 흐물거리지 않았고, 게다가 멋스러운 가죽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전어는 비늘이 벗겨지지 않은 그대로 쓸려나간 것이다. 난 남자친구의 말대로 그것을 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꼬들꼬들. 씹는 맛이 일품인데다가 살갗에 얄밉게 스며든 기름이 입 안에 어우러졌다. 매력적인 맛이었다..........!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다. 왜 전에는 이리도 매력적인 전어를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지, 과거의 내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왜 그 전에는 나한테 인상적인 맛이 아니었던 거지?”

나는 전어에 대한 감동을 품은 채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땐 네가 소주 맛을 모를 때라 그런 거 아니야?”

 

여름에서 해방된 도시는 가을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고, 고혹적인 컬러로 멋을 부린 채 거리를 누비고, 테라스에 앉아 바삭해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래서 새로운 계절은 늘 익숙한 듯 새롭다.

시원한 음식만 찾던 우리의 식성 역시 조금 바뀌었다. 우리의 혀 역시 여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몸은 갑자기 변화된 기후에 적응하려는 듯 자주 피곤했고, 잦은 음주 때문에 더 심해진 환절기 비염 알러지에 고생을 좀 했다. 그럴수록 내 몸에 맛있는 것을 주고 싶었다. 나와 남자친구는 그럴 때마다 ‘가을 전어’를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을전어보다 맛있는 것은 없었고, 가을전어만큼 완벽한 가을 음식은 없기 때문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틀 연속으로 먹어도 하나도 질리지 않았다. 보통 무침이나 구이로도 많이 먹던데 우리는 그저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했다. 더 이상 무언가 보태거나 더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보태봤자 쌈 정도? 난 깻잎에 싸서 먹는 전어회를 무지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9월, 통영에 여행을 갔을 때야 비로소 전어가 어떻게 식탁위의 모습이 되는 지 볼 수 있었다. 활어 시장에는 생기가 넘쳤다. 목욕탕 의자 같은 간이의자를 놓고 양동이 몇 개에 바다 생물들을 잔뜩 담아놓고 옹기종기 상인들이 앉아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과는 또 달랐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태양이 북적이는 시장을 더 후끈거리게 했다. 알록달록 바가지 속 생선들이 태양아래 눈부신 비늘을 미끌거리며 춤췄다. 우리는 그 중 가장 춤을 잘 추는 양동이를 가진 아주머니에게 전어를 만원 어치를 샀다. 그 시장에서는 만원이면 전어를 6마리 정도나 먹을 수 있었다.

“세꼬시로 먹지?”

나는 그냥 전어를 사면 횟집에서 그렇게 전어를 잘라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양동이 안에서 팔딱거리는 전어를 미끄러질세라 꽉 움켜쥐고는 대가리를 따냈다. 그리고는 가랑이 사이 하수구 어딘가로 흘려보내셨다. 아마 그것이 바다에 다시 버려질 지도 모른다. 목이 따인 전어들은 피가 난다. 아주머니가 그것들을 수돗물로 씻겨 낸다. 그리고 익숙하고 재빠른 솜씨로 옆구리를 갈라내자, 드디어 익숙한 핑크빛 속살이 나왔다. 그것을 다시 한 번 물로 씻어내고는 옆에 있는 수건을 꺼내어 전어를 돌돌 말아 행주를 짜내듯이 비틀어 짰다. 그리고는 물이 쏙 빠진 전어들을 칼로 썰어내자 익숙한 귀여운 세꼬시 모양이 되었다. 그것들을 일회용 도시락 통에 수북이 담아내셨다.

“초장집은 여기도 있고, 저 짝에도 있고.”

남자친구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두 손으로 만 원짜리 하나를 내밀었다. 최후의 모습(?)부터 염(?)하는 모습, 그리고 식탁에까지. 내가 만난 그 어떤 전어들보다 나와 친한(?) 전어들. 나는 꼭꼭 씹어 그들을 먹어주었다. 통영에서 먹은 전어는 더 꼬들꼬들했다. 활기차고 잔혹한 생명의 맛.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살아있는 생선들이 서울로 오기까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고 말이다.

 

 

서울에서의 전어도 통영에서 먹었던 전어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훌륭해져 있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느 때처럼 남자친구와 전어에 소주를 마시고 좀 취했다. 전어같은 좋은 음식에는 소주가 댓 병은 들어간다. 그래도 좀 아쉬워, 집으로 남자친구를 데려와 맥주 한잔을 더 걸친 후 씻고 누우니 아주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전어는 맛있는 음식이야.’

침대에 누워 그런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떠올렸다. 핑크색 속살에 멋스러운 가죽, 흐물거리지 않고 팽팽하고 빳빳한 속살! 속살 그 안에 뼈의 단단함. 아, 멋스러워! 그 때 였다. 남자친구가 날 바라보았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어.’ 라는 눈빛으로.

난 생각했다, 역시 우린 천생연분이야!

 

다음 날 오후가 되기까지 양치를 한 네 번은 한 것 같은데, 전날 어찌나 전어를 열심히 먹었는지 아직도 입 안에서 전어와 깻잎이 어우러진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가 가고 나서 집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몇 시간 전까지 남자친구와 누워있던, 그리고 내가 마지막에는 내가 점령하다 몸을 일으킨 침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그저께 밤보다 더러워진 것 같은 무언가 얼룩진 침대 시트, 방황하는 베개, 엉켜진 이불, 나의 머리카락. 전어만큼 우리의 활기찬 욕망. 혼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쑥스러워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행복했다. 마치 달콤한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몸이 날아갈 듯 했다. 전날 밤, 여름에서 해방이 되어 가을이 익어가는 그의 몸을 탐닉했다. 꽤나 익숙하지만 낯선 아니 새로운, 또 다른 가을.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전어.

나중에 알고 보니 전어 굽는 냄새를 두고 하는 말이랬다. 블로그에 어떤 사람은 이런 댓글도 달아놓았다. 전어 굽는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랑 비슷해서 시어머니가 죽은 줄 알고 며느리가 돌아온 거라고.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관심 없다. 난 당분간은 전어를 구워먹을 생각이 없으니까.

어쨌든 며느리는 전어 때문에 돌아왔데고, 난 그 날 며느리가 돌아온 (나만의) 진짜 이유를 깨우치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핑크색 속살에 멋스러운 가죽, 흐물거리지 않고 팽팽하고 빳빳한 속살! 속살 그 안에 뼈의 단단함을 가진 전어를 먹고 활기가 더해진 남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가, 낯설거나 꽤나 익숙하거나. 익숙하거나 꽤나 새롭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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