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 칼럼 'Blurred Lines'... 사랑, 섹스, 관계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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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 칼럼 'Blurred Lines'... 사랑, 섹스, 관계의 사회학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5.07.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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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포르노의 무거움

오피니언뉴스가 지예 칼럼 'Blurred Lines'를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게재합니다. 지예는 젊은 감성, 날카로운 시대감각과 재기 넘치는 글쓰기의 재능을 함께 갖춘 신세대 칼럼니스트이자 소설가입니다. '날 미치게 만드는 모호한 것들을 속 시원하게' , 이 말처럼 지예는 오늘의 우리 사회, 문화 현상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신선하고도 깊이있는 칼럼으로 후련하게 파헤쳐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Blurred Lines'를 시작하며
“남자는 여자를 욕망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블러드 라인(Blurred Lines)은 ‘모호한 것들’을 의미한다. 연애, 사랑, 섹스… 뭐라고 딱 이거다, 라고 할 수 없던 수많은 순간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서로 욕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 그런 모호한 순간들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풀어본다! 그리고 어쩌면 금기의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 그 사이를 이야기할지도...  /지예 <칼럼니스트> 

 

참을 수 없는 포르노의 무거움 - My Boyfriend Watches PORN!

종종 인터넷에서 이런 고민들을 접하곤 한다.

“제 남자친구가 야동을 보다가 딱 걸리고 말았어요!”

음, 여자친구 입장에서 충분히 속상할 만하다. 아니, 자존심이 상할 만한 문제지! 나로는 부족한가? 라고 자괴감에 빠질 만하다.

사실 나는(내가 알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다. 만일, 내 남자친구가 그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고민해본다. 내 결론은 그다지 자존심 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난 그녀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넌, 드라마 안 봐?”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에는 수많은 멋진 남자 ‘캐릭터’들이 나온다. 말 그대로 캐.릭.터, 등장인물이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살고 있는 캐릭터. 현실감은 없는 사기 캐릭터!

돈 많고, 잘생긴데다가, ‘츤데레’지만 알고 보니 마음까지 여려서, ‘너 같은 여자 처음이야!’라며 홀로 열심히 살고 있는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왕자님(현실감 떨어지는 여자들 - 특히 연애 오래 쉰 여자들 - 은 현실과 동일시하곤 한다, 맙소사). 여자들은 이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예상하면서도 그들에게 빠져버린다. 왜? 여자들의 환상을 풀어주니까. 즉, 대리만족인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드라마는 여자들의 포르노다.”

그렇다! 드라마는 여자들 내면에 깊이 자리잡은, 어릴 적부터 인형에 옷 입혀 하고 놀던 공주놀이에 대한 욕구를 풀어주는 수단인 것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끝나면 저 드라마, 저 드라마가 끝나면 또 다른 드라마를 보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신, 드라마가 아닌 포르노, 야동으로. 거기에도 말 그대로 ‘캐릭터’들이 나온다. 말도 안 되는 가슴 크기에, 말도 안 되는 색깔(?)에, 말도 안 되는 것을 감당해내는 캐릭터들. 현실감 없는 캐릭터!

때로는 거기에 ‘두부집 딸’이라는 둥, 뭐하는 처자라는 둥, ‘친구 엄마’라는 둥, 사실인지 아닌지 어쨌든 약간의 ‘현실감’이라는 조미료를 섞어 더욱 흥분시키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현실에 저런 여자가 있을 것처럼.

하지만 대부분은 포르노를 즐겨본다고 해서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지거나, 내 여자친구와 비교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도민준과 남친을 비교하지 않는 것처럼!

물론 내 여자친구가 때론 밤에 저렇게 섹시해지길 기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이 동영상, 저 동영상 찾아보다보니 포르노 사업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또 이렇게 물어볼지 모른다.

“이 야동, 저 야동? 아니에요. 제 남자친구는 서양물만 찾아본다니까요? 그것도 주로 완전 레몬빛 금발을 가진 여자들을 선호해요. 피어싱이 있으면 더 좋구요.”

그렇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야동에 있어서 어쩌면 그건 ‘장르적’인 거예요. 드라마에도 시대극, 로맨틱 코미디, 수사물, 퓨전, 연속극이 있듯이!”

국내 한 웹하드 사이트에서도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업로드 시 ‘한/ 미/ 일/ 금발/ 도촬’ 등으로 제목에 장르를 명시해놓는다. 해외의 더 거대한 포르노 사이트의 경우 장르별 카테고리 나열이 더 친절하고 상세한 편이다. 실제로 한 포르노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이러했다.

‘Step-mom(새엄마) / High Heels(하이힐) / Bus(버스) / Rough(거친) / Interracial(다인종) / Doggy Style(후배위) / Beauty(예쁜 여자) / Small tits(작은 가슴) / 3D(만화) / Tattoo(타투) / Chubby(뚱녀)’ 등 인종, 의상, 장소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해 있었다.

 

▲ 실제 해외 포르노 사이트의 카테고리.

 

사실 연인의 포르노 시청을 넘어, ‘포르노 중독’의 사례도 우리는 영화로 접해볼 수 있다.

조셉 고든 래빗 감독·출연의 영화 ‘돈 존(DON JON)’이 그 실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심지어, 섹시하다 못해 섹시가 줄줄 흐르는 여자 스칼렛 요한슨(이 맡은 역할)을 두고 야동과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가 목소리로 열연한 영화, ‘그녀(HER)’에서 우리는 ‘기계’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씁쓸한 현실을 경험하기도 했다(다행히도 야동은 정서적 교류가 어렵다).

실제로 어느 해외 매체에서는 뉴욕에 사는 20~30대들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섹스보다 스마트폰이 좋다’는 응답이 30% 넘게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에는 스마트폰 중독도 한 몫을 했지만, 스마트폰으로도 포르노를 볼 수 있고, 나아가서 굳이 돈쓰고 데이트를 하지 않더라도 ‘액정 화면’에 적응만 된다면 훨씬 편하게 성욕을 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TV 시청 세대가 아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TV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간추린 클립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 드라마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고, 스마트폰에 맞는 웹 시트콤, 웹 드라마 같은 뉴미디어 시장도 이미 거대해지고 있다. 이건 남녀를 불문한다는 얘기다.

 

포르노, 그러니까 ‘야동’은 이를테면 ‘먹방’ 같은 거다. 개인 채널에서 말도 안 되게 맛있게, 혹은 많이 먹는 ‘먹방’이 인기 있는 건,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망을 그들이 대신 아주 자극적으로 오버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동도 마찬가지다. 성욕을 먹방처럼 아주 자극적으로 오버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현실감 없게 드러낸다.

그가 포르노를 보는 것과 당신에 대해 만족하느냐 여부와는 좀 다르다. 분명 씁쓸하긴 하겠지만, 정말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차라리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까? 그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니면 같이 보자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 그래도 상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관계 도중 그의 눈빛을 확인해라. 당신에게 탐탁지 않아서 뭔가 더 요구하고 있는지, 혹은 당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지. 사실 정답은 아주 가까이, 눈 앞에 있다. 혹, 그 정답이 안타깝게도 후자가 아닌 전자라면, 그는 아마 당신이 안 볼 때 눈을 감고, 조용히 당신의 얼굴에 그 금발녀를 삽입하고 있을지도. 그를 무조건 다그치려 들지 말고, 충분히 이야기 나누기를 권한다.

/지예·칼럼니스트

 

지예는
1989년 서울 생. 수원대 연극영화학부에서 수학했다.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2009), 영화 '포화 속으로'(2010), 뮤지컬 '드림 헤어'(2010) 등에 출연했다. 가요 작사가, 공연 기획자로도 일했다. 2011년 매일경제 온라인에 칼럼 '지예의 애프터 파티'를 쓰면서 칼럼니스트로 데뷔했다. 2014년 10월 장편소설 '몽정의 편지'를 출간, 교보문고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4년부터 콘텐츠포털 에브리북에 소설 '불행중독에 대한 가벼운 보고서'를 쓰고 있다. 현재 '코스모폴리탄 코리아'에 기획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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