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영의 홍차수업] ⑨영국 홍차문화의 꽃, 애프터눈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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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영의 홍차수업] ⑨영국 홍차문화의 꽃, 애프터눈 티
  •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20.05.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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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까진 홍차는 '서민들 식량'
'안나 마리아' 공작부인, 애프터눈 티 문화 만들어
홍차 문화 전성기후 최근들어 영국서 다시 대유행중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영국에서 차와 관련된 첫 번째 기록이 등장하는 때는 1657년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국에 차가 처음 소개 되었다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먼 아시아에서 오는 차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확산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1750년대만 하더라도 최상류층만이 차를 지속적으로 음용했을 뿐이다.

이 시기 이후 홍차 공급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면서 홍차 음용은 중류층까지 천천히 확산되어 1800년대가 되면서는 서민들까지도 마시게 되었다.

산업혁명기 '식량으로서 홍차'

하지만 이 당시의 홍차는 지금과는 달리 기호식품이 아니었다. 우유와 설탕을 넣은 홍차는 단백질과 당분을 공급하는 식량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도시로 모여든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과 아편전쟁(1840 ~1842년)까지 치르면서 영국이 사활을 걸고 홍차를 확보하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19세기 중반까지도 홍차는 적어도 서민들에게 식사 때나 마시는 항상 아껴야만 하는 식량과 같은 음료였다.

세련되고 화려한 애프터눈 티 테이블. 사진= 구글
세련되고 화려한 애프터눈 티 테이블. 사진= 구글

19세기 중반인 1840년대의 어느 시기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라는 영국홍차문화의 상징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관습이 만들어진다. 안나 마리아(Anna Maria)라는 공작부인이 점심은 먹었고 저녁은 아직 먼 오후 4시 전후에 매우 허기를 느꼈고, 참다못해 하녀에게 홍차 한잔과 간단한 음식을 요청해 먹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애프터눈 티의 기원이 되었고 최상류층 귀족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으로 확산되어 나간 것이 애프터눈 티라는 관습의 시작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말 그대로 오후에 마시는 홍차(영국에서는 Black Tea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냥 Tea라고 해도 Black Tea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오후에 홍차와 함께 빵 같은 간단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이렇게 새롭게 느껴진 까닭은 앞에서 한 설명처럼 홍차를 식사 때만 먹어야 하는 귀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 당시 인식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인식의 벽을 깨기는 어려웠고, 안나 마리아라는 영향력 있는 귀족 힘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최상류층 귀족들만의 소규모 모임에서, 1865년경 빅토리아 여왕이 궁전에서 '애프터눈 티 파티'를 개최하면서 일반 귀족들 사교모임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퍼져나가면서 애프터눈 티와 관련된 다양한 에티켓도 만들어지고 오이가 들어간 작은 샌드위치, 스콘, 클로티드 크림 같은 오늘날 애프터눈 티의 상징이 되는 '티 푸드(Tea Foods)'들도 점점 자리를 잡게 된다.

1860년 무렵부터 영국인들이 인도 아삼에서 홍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되면서 1890년 전후로는 수입량도 충분히 늘어나게 되고 가격도 많이 낮아지게 된다. 부자들의 애프터눈 티 문화를 부러워하던 서민들도 이 무렵이 되어서는 홍차를 부담 없이 마시면서 그들 자신들의 애프터눈 티 문화를 마음껏 즐기게 된다.

리츠 호텔의 화려한 '애프터눈 티' 시간. 대부분 드레스 코드가 있다. 사진= 구글.
리츠 호텔의 화려한 '애프터눈 티' 문화. 대부분 드레스 코드가 있다. 사진= 구글.

대영제국 전성기의 '애프터눈 티'

영국에 차가 처음 소개된 지 거의 250년 만에 홍차는 진정으로 영국 국민들을 위한  일상음료가 되었다.

이 당시 헨리 제임스(Henry James)라는 작가는 “애프터눈 티 라고 불리는 모임에서 보내는 시간 보다 더 아늑한 순간은 삶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라고 적었다. 그만큼 애프터눈 티는 영국인의 일상과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홍차의 나라, 영국” 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 애프터눈 티 문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서서히 영국인의 일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홍차를 엄청나게 마시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차와 티 푸드를 여유롭게 즐기기에는 현대의 삶이 너무 바쁘고 팍팍해진 탓이었다.

그리하여 런던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일부 호텔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 하고 있었다. 이것이 2000년대 초반까지 상황이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즐기는 2시간을 위해 매우 많은 돈을 지불한다. 사진= 구글
이런 곳에서 차를 마시는데 거금을 지불한다. 사진= 구글

그런데 2010년 이후부터 몇 가지 이유로 런던에서 다시 '애프터눈 티'가 부활했다. 현재 런던은 '애프터눈 티'가 대유행이다. 런던을 찾는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에 사는 영국인 조차도 런던에 올 기회가 있으면 유명한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리츠(Ritz), 랭함(Langham), 도체스터(Dorchester) 호텔 같은 곳은  3~4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되고 2시간 남짓 즐기는 비용이 비싼 것은 15만원이 넘기도 한다.
거의 200년 전에 만들어진 홍차와 관련된 문화가 오늘날도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붉은 수색을 가진 매력적인 한 잔의 홍차가 가지는 신비로움이다.

● 홍차전문가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 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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