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영의 홍차수업] ⑬ 언제부터 차를 우려 마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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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영의 홍차수업] ⑬ 언제부터 차를 우려 마셨을까?
  •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20.07.0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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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 ‘다성’ 육우가 쓴 “다경”에서는 차는 끓여서 마심
파, 생강 등을 함께 끓였으나, 육우 이후 찻잎만 끓여
송나라 때는 분쇄한 찻잎을 뜨거운 물에 넣어 휘저어 마셔
우려 마시는 법,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정착시켜
다양한 다구들과 우리는 방법은 차의 세계 더 깊게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녹차, 홍차, 우롱차, 보이차를 포함한 대부분의 차는 우려 마신다. 마른 찻잎에 끓인 뜨거운 물을 부어 일정시간을 보낸 후 우러난 찻물만 잔에 부어서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차를 항상 우려만 마셨든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차를 마시는 방법은 변화해 왔는데 가장 나중에 일반화된 것이 우려마시는 방법이다.

영화의 '차 마시는 장면'은 기록과 달라

영화 <적벽대전-주유의 아내 소교>에서 소교는 동남풍이 불 때까지 조조가 전투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차를 대접하면서 시간을 끄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소교는 차를 끓인다. 뚜껑 달린 큰 냄비 같은 용기에 차를 넣고 끓인 후 큰 국자로 차를 떠서 입이 넓은 잔에 따른다. 아마도 끓여진 찻가루도 같이 마시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서기 약 200년 전후이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소교가 차를 끓이는 모습.
영화 '적벽대전'에서 소교가 차를 끓이는 모습.

이로부터 약 500년 후 당나라 시대에, '다성(茶聖)' 이라고도  불리는 육우(733~804)는 중국 최초 다서인 다경(茶經)을 저술한다. 다경에서 차는 끓여서 마신다. 사실 육우시대 이전에 차를 어떤 방법으로 먹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들이 없다. 따라서 <적벽대전> 장면도 오늘의 관점에서 본 연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음용 초기에는 차는 음료라기보다는 약의 기능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육우 시절만 해도 찻잎뿐만 아니라 파, 생강, 대추, 귤껍질 등을 함께 끓이는 다소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었다.

이에 육우는 오직 찻잎만으로 끓여야 만이 진정한 차 맛을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차 이외 다른 것을 일체 넣지 말 것을 주장했다. 이렇게 차의 개념을 정리하면서 이 무렵부터 차를 순수한 음료로써 즐기게 된다. 

중국 최초 다서인 다경(茶經)을 저술한 육우. 사진=구글
중국 최초 다서인 다경(茶經)을 저술한 육우. 사진=구글

송나라 차음용 방법은 전혀 다른 방법이다. 미세한 가루로 분쇄한 찻잎을 찻사발에 넣고 끓인 물을 붓고는 대나무로 만든 찻솔(다선-茶筅)로 휘저어서(격불-擊拂) 거품을 내서 마셨다.

당나라, 송나라 시절 차의 주된 형태는 잎차가 아니라 덩이차(병차-餠茶)였다. 요즈음의 보이차 처럼 뭉쳐진 찻잎 덩어리 형태로 되어 있었다. 물론 크기나 형태는 달랐다. 이것을 아주 미세하게 가루 내어 당나라 때는 물에 넣어 끓였고 송나라 때는 물을 부어 휘저은 것이다. 가루로 분쇄한 녹차를 휘저어 거품 내어 마시는 현재 일본 맛차(抹茶)의 기원이 바로 송나라다. 물론 현재의 일본 맛차는 분쇄한 찻잎을 휘저어 마신다는 것만 같고 차 형태나 종류는 송나라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차 우려마시는 법, 명나라때 굳어져

명나라 때가 되어서야 오늘날의 우려 마시는 법이 일반화 되었다. 이 배경에는 차의 형태가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 송(원나라도 물론)을 계승한 명나라 초기에도 차 형태는 여전히 덩이차였고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백성들의 많은 피와 땀이 필요한 귀한 것이었다. 당연히 귀족들만의 문화였다. 이것을 못 마땅히 여긴 명 태조 주원장이 덩이차 생산을 중단시키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잎차를 음용하도록 지시했다. 이전부터 서민층에서는 잎차를 우려 마시는 문화가 있었고 이것이 명나라 때부터는 귀족들을 포함한  전 계층으로 확산된 것이다.

현재 일본 맛차(抹茶)의 기원은 중국 송나라다. 사진=구글
현재 일본 맛차(抹茶)의 기원은 중국 송나라다. 사진=구글

명나라 말기라고 할 수 있는 1600년대 초반 차가 유럽으로 처음 갔을 때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일반적이었던 산차(散茶-덩이차가 아닌) 형태로 된 녹차와 함께 우려마시는 방법이 전해졌다. 이것이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음용법이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도 차를 반드시 우려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짧게 언급했지만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로 알려진 다도(茶道)에서는 분쇄된 찻잎 가루를 휘저어 전부를 다 마신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녹차를 이 방법으로 마시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우려 마신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밀크 티는 기본적으로는 홍차를 끓인다. 끓여서 아주 진하게 우러난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것이다. 그냥 진하게 우려서 설탕과 우유를 넣는 영국식 밀크 티(Milk Tea)와 구별해 로얄 밀크 티(Royal Milk Tea)라고 부르기도 한다. 1960년대 일본에서 개발된 방법이다.

중국 명나라 때가 되어서야 오늘날의 '우려 마시는 법'이 일반화됐다. 사진= 구글
중국 명나라 때가 되어서야 오늘날의 '우려 마시는 법'이 일반화됐다. 사진= 구글

아무래도 차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방법이 가장 좋다. 따라서 차 종류 마다 최고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한 우리는 방법 또한 아주 다양하다. 물 온도도 다르고, 홍차 식으로 한번만 우리는 방법, 녹차처럼 작은 티 팟(Tea Pot)에 짧게 반복해서 우리는 법 등. 또 차 종류에 따라서 우리는 도구도 다양하다. 차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 홍차전문가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 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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