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영의 홍차수업] ⑪ 홍차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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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영의 홍차수업] ⑪ 홍차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20.06.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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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는 배에서 탄생? 홍차의 전설에 대해
영국인들, 부분산화차인 우롱차 선호...중국, 산화도를 높여 수출
완전 산화차인 홍차, 영국과 중국의 합작품...100년 세월 끝에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중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에 실린 녹차가 덥고 습한 적도 부근을 지나면서 발효된 것이 홍차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가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홍차탄생에 관한 전설이다. 말 그대로 전설이다. 왜냐하면 녹차를 아무리 습하고 더운 곳에 두더라도 썩었으면 썩었지 홍차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에는 진실 못지않게 전설도 중요하다. 그리고 전설에도 어느 정도는 진실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해가 1392년이다. 이 무렵 인도와 유럽은 이미 오랫동안 무역을 해 오고 있었다. 1400년 무렵 인도와 유럽 간의 무역로는 홍해나 페르시아 만을 거쳐 지중해 동부를 지나는 루트였다. 즉 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는 바닷길이 발견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유럽과 인도(아시아)는 바닷길로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 당시 인도-유럽 간 무역의 가장 중요한 품목이 후추와 향신료 였다. 당시 유럽에서 향신료는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같은 무게 금만큼 비쌀 정도였다. 1400년 무렵, 무역로에 있는 지중해 동부에서 이슬람 세력이 강대해지면서 무역이 방해받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비싼 향신료가 이로 인해 더 비싸지자, 유럽인들은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콜롬부스의 원래 항해 목적도 향신료의 땅 인도로 가기 위함이었고 뜻밖에 발견하게 된 것이 신대륙(아메리카)이었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바닷길로 인도에 도착하기 전의 인도와 유럽간 무역로. 그림= 구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바닷길로 인도에 도착하기 전의 인도와 유럽간 무역로. 그림= 구글

1497년 포르투칼을 출발한 '바스코 다 가마'는 1498년에 인도 캘리컷(현재 코지코드)에 도착하면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온 첫 번째 유럽인이 된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한 지 거의 100년만 이었다. 이후 포르투칼은 점점 동쪽으로 범위를 넓혀 향신료 섬이라고 알려진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를 거쳐 역사가 말해주듯이 일본 나가사키(1543년)까지 이른다. 이렇게 하여 포르투칼은 1500년대 거의 100년 동안 향신료를 포함한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면서 부를 쌓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 향신료는 귀족들의 사치품 이었다. 사진= 구글
중세 유럽에서 향신료는 귀족들의 사치품 이었다. 사진= 구글

1600년대가 되면서 포르투칼을 이어서 아시아 바다를 지배하게 되는 나라는 네덜란드다. 그리고 유럽의 차(茶) 역사는 네덜란드로부터 시작된다. 기록에 의하면 1610년 처음으로 네덜란드가 차를 유럽에 가져간다. 이후 프랑스(1639년경), 영국(1657년경)으로 전해진다. 네덜란드가 처음 가져간 차는 녹차였다. 이 무렵 중국에는 녹차가 주류였다. 우롱차, 홍차 같은 차 종류는 아직 등장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데 1년에서 1년 반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녹차가 바로 항구 근처에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내륙에서 생산되어 항구로 옮겨와서 가져간다고 보면 생산한지 적어도 2년 이상 지난 녹차가 유럽에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밀폐를 잘해 운반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배 위에서 2년 정도 지난 녹차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의 맛과 향은 결코 좋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럽 귀족들은 전에 마셔본 적이 없는 녹차 맛을 알리도 없고 다만 아시아에서 온 귀한 것이라 이 또한 사치품으로 마셨다고 한다.

녹차가 처음 유럽으로 전해진 후 30~40년이 지나 소위 명말청초(明末凊初)라고 부르는 1640년대 전후 대만 건너편에 있는 푸젠성(福建省) 무이산에서 부분산화차 즉 우롱차가 탄생하게 되었다(이와 관련해서도 또 하나의 홍차 탄생 전설이 있다). 이 새로운 종류의 차도 유럽으로 가져갔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나빠지지만 산화가 많이 된 차일수록 나빠지는 속도는 느리다. 이게 차에 있어 중요한 산화의 속성이다.

푸젠성 무이산. 또 다른 홍차탄생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필자 사진
푸젠성 무이산. 또 다른 홍차탄생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필자 사진

따라서 유럽인들이 마셨을 때 산화가 전혀 안 된 녹차 보다는 산화가 어느 정도 된 우롱차(물론 이 당시 우롱차라는 말은 없었고 녹차 아닌 차를 유럽에서는 보헤아라고 불렀다)가 더 맛있었다. 자연스럽게 유럽인들이 녹차 보다는 우롱차(부분산화차)를 더 선호하게 되었고, 수입회사들은 중국인들에게 이 부분산화차를 더 요구했다. 산화의 속성을 파악한 중국인들은 산화정도를 점점 더 높였고 마침내 완전산화차인 홍차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국인들은 대부분 우유와 설탕을 넣는다. 이 경우 녹차보다는 홍차가 더 맛있다. 사진= 구글
영국인들은 대부분 우유와 설탕을 넣는다. 이 경우 녹차보다는 홍차가 더 맛있다. 사진= 구글

어떻게 보면 홍차는 중국인들이 만든 것 이라기보다는 수출을 목적으로 수입처인 유럽인들 취향에 맞춰 발전시킨 것이다. 중국인들 자신들은 정작 선호하지도, 마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전설로 돌아가면 한 가지 진실은 있다. 홍차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도중 어디선가에서(즉, 중국과 유럽의 합작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나름 진실인 것이다.

홍차 탄생에 관해 간단히 요약하면 그렇다는 것이고 녹차에서 우롱차(부분산화차)로 다시 홍차로 천천히 전환되어 가는 데는 10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유럽인들이 홍차를 더 선호한 것은 우유와 설탕을 넣는 음용방식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설탕과 우유를 넣었을 때는 녹차 보다는 홍차가 훨씬 더 맛있기 때문이다.

● 홍차전문가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 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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