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영의 홍차수업] ⑭녹차는 여러번, 홍차는 왜 한 번만 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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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영의 홍차수업] ⑭녹차는 여러번, 홍차는 왜 한 번만 우리는 걸까?
  •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20.07.18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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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 상처 많이 낸 홍차, 한번 우리면 차 성분 다 빠져나와
최근 인도 고급홍차, 어린 잎으로 상처 덜 내고...두번 우리기도
모여서 함께 차 마시는 영국인, 한꺼번에 많은 양 우려내 마셔
소인원 모여 대화하는 중국인, 적은양에 혼자 홀짝홀짝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녹차는 여러 번 우리는데, 홍차는 왜 한번만 우리나요?” 필자가 일반인들을 위한 외부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찻잎 비비기 '유념'에 대해

녹차 가공도 여러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홍차 가공도 여러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과정은 녹차에만 있고 어떤 과정은 홍차에만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홍차와 녹차 가공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유념(揉捻)이다. 유념은 우리말로 “비비기”라고 할 수 있다. 차나무에 매달려 있는 찻잎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타원형으로 생긴 그냥 “나무의 잎”이다. 하지만 우리가 구입한 찻잎은(티백이 아니고 일단 잎차로 하자) 약간 비틀린 듯 굽어진 두꺼운 철사 같다. 타원형 찻잎이 이런 굽어진 철사모양으로 변화는 것이 유념(비비기)과정 때문이다.

온전한 형태의 찻잎을 바닥이 거친 평상 같은 데에 놓고 손으로 비벼서 형태를 잡아주는 동작이다. 이렇게 하여 찻잎 부피도 줄이고 찻잎에 상처를 내서 나중에 잘 우러나게 하는 것이 비비기의 목적이다.

찻잎에 상처를 내서 나중에 잘 우러나게 하는 것이 유념의 목적 중 하나다. 사진= 구글
찻잎에 상처를 내서 나중에 잘 우러나게 하는 것이 유념의 목적 중 하나다. 사진= 구글

이 비비기를 길게 그리고 강하게 하면 찻잎에 상처가 많이 난다. 그리고 찻잎도 부숴져 점점 작아진다. 반면에 짧게 혹은 부드럽게 하면 찻잎에 상처가 작거나 찻잎이 비교적 큰 상태로 유지된다. 비비기의 목적 중 하나가 찻잎에 상처를 내서 잘 우러나게 하는 것이라면 상처가 많거나 찻잎이 작으면 빨리 우러나고, 상처가 적거나 찻잎이 크면 천천히 우러나는 것은 물리적 현상이다.

아주 대략적으로 보면 녹차는 대체로 비비기를 부드럽게 하는 편이고 홍차는 대체로 강하게 하는 편이다.

상처많은 홍차와 상처가 적은 녹차

2L에 생수통에 못으로 구멍을 10개 냈을 때와 50개 냈을 때 물이 빠지는 속도가 어느 것이 더 빠를까?  녹차는 대체로 구멍을 10개 내고, 홍차는 대체로 50개 낸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구멍 숫자가 많은 홍차는 (찻잎이 작고 상처가 많아) 3분 정도 길이로 한번만 우려도 찻잎에 들어 있는 모든 성분이 다 나와 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구멍 숫자가 적은 녹차는 (찻잎이 크고 상처가 적아) 찻잎 속 성분이 천천히 우러나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우려도 될 정도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우리는 방법에 있다. 이 연재칼럼 5편 <홍차 맛있게 우리기>에서 필자는 400ml 물 양에 홍차 2~3그램을 넣고 3분 우리는 것을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한번 우리고 홍차 찻잎은 버린다.

녹차 경우에는 위 홍차기준과 비교하자면 보통 찻잎 양은 더 많고 물 양은 더 적다. 게다가 매번 우리는 시간도 더 짧다. 
즉 홍차 5g을 800ml 물 양에 3분 동안 한 번에 우려낸다면, 녹차는 5g을 200ml 물 양으로 40~ 50초씩 4번 우려낸다고 보면 된다. 결국 찻잎 양과 우려낸 차의 양을 보면 녹차든 홍차든 비슷하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만든 상황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차를 녹차처럼 부드럽게 유념해 찻잎이 크고 상처가 적다면 녹차처럼 우려도 된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최근 들어 인도 다즐링 등 에서는 싹과 어린잎 위주로 만든 아주 고급(비싼) 홍차들이 생산된다. 연약한 싹과 어린잎으로 만드는 고급홍차 가공과정에서 비비기를 강하게 할 리가 없다. 따라서 찻잎 모양도 거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필자는 홍차방식으로도 두 번 우린다. 한번 우리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두 번 우려도 첫 번째 만큼은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다(여름철 차갑게 마시면 최고의 아이스 티 다). 만일 이런 홍차를 녹차방식으로 우린다면 3 ~ 4번 우려도 될 것이다.

반대로 아주 작게 분쇄한 입자로 만드는 티백녹차는 비록 녹차라 하더라도 한번만 우리면 충분하다.

2019년 봄 다즐링에서 구입한 홍차. 유념을 아주 부드럽게 해서 거의 온전한 찻잎 형태다. 사진= 문기영
2019년 봄 다즐링에서 구입한 홍차. 유념을 아주 부드럽게 해서 거의 온전한 찻잎 형태다. 사진= 문기영

영국인과 중국인, 차 우리는 방법도 달라

하지만 차를 우리는 방식에는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요소 말고도 문화적인 요소도 들어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는다. 그리고 식사 시간처럼 많은 가족이 모이거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주로 차를 마셨다. 찻잔도 컸다. 따라서 한 번에 많이 우릴 필요가 있었다. 반면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차는 철저히 기호식품이었다. 그리고 차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인원이 적을수록 좋다고 여겼다(실제로 그렇다). 혹은 혼자서 사색하면서 천천히 음미했다. 찻잔도 작았다. 우려 놓으면 식어버리는 차를 한꺼번에 많이 우릴 필요가 없었다.

차를 우리는 방법은 차의 속성이나 문화적 영향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좌우된다. t사진= 구글
차를 우리는 방법은 차의 속성이나 문화적 영향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좌우된다. t사진= 구글

또한 차 종류에 따라서 추구하는 맛과 향도 차이가 있다. 우롱차 같은 경우에는 향을 매우 중요시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방법도 아주 발달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보다는 내 개인의 취향이 더 중요하다. 차를 마심에 있어 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편리함과 간편함이다.

따라서 찻잎의 물리적 특성만 이해한다면 녹차를 홍차 방식으로 우리든, 홍차를 녹차 방식으로 우리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 홍차전문가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 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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