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주의 세상보기]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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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의 세상보기]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 
  • 나은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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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 칼럼니스트
나은주 칼럼니스트

[나은주 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연말 풍경이 썰렁해졌다, 송년회다 뭐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모임들이야 여전할 것이다.

그런데 거리는 썰렁하고 사회 또한 쓸쓸하다. 괜히 마음 들뜨게 하던 캐럴송도 끊기고, 몇 날 며칠 앞다투어 진행하던 방송사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방송 같은 것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학교 담임 선생님이 언제까지 불우이웃 돕기 모금을 한다고 말씀하시면, 꽁꽁 모아두었던 용돈을 들고 가 자랑스럽게 모금함에 넣곤 했었다. 우리도 살기 힘든데 누굴 도와주냐면서도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주시던 엄마. 냉바닥에 엎드려 구걸하는 노숙자에게 천 원 드리고 왔다고, 불쌍하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은, 명동이나 광화문 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가는 숨소리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팬데믹 와중에도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사람들 마음은 더 오그라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동네 여섯 아줌마들은 애초 계획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6년 전에 갔었던 장애인 요양시설을 다시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동네 복지관 기타 강습 프로그램에서 만나 10여 년 함께해 오고 있는 여섯 아줌마들의 기타 모임 ‘통통통’. ‘기타로 나 자신과 통하고 가족과 통하고 사회와 통한다’라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을 정했다.

동네 아줌마들끼리 기타팀을 만들어 12월 어느날 광명사랑의집을 방문했다. 모두가 반겨주는 모습에 가슴 뭉클했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동네 아줌마들끼리 팀을 만들어 지난 16일 광명사랑의집을 방문했다. 모두가 반겨주는 모습에 가슴 뭉클했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겨우겨우 코드 익히고 간단한 스트로크 연주에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복지관 가족 봉사단으로부터 함께 봉사활동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봉사단들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가 공연을 해 달라는 거였다. 이 실력으로 창피하다 어떻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래도 좋은 일에 동참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때, 실력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열렬히 박수 치고 함박웃음을 지어주던 장애인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조용히 쉬다가 봄에 다시 모이면서 목표를 하나 정했다. 차근차근 연습해서 연말에 장애인 요양시설에 봉사하러 가자! 뭔가 목표가 있어야 의미를 두고 연습할 것 같았다.

다들 직장 생활하면서 그 사이 상 치르고, 시부모·남편 간병하고, 아이 재수시키고, 군대 보내고, 다쳐서 수술하고…. 일이 참 많았지만 그래도 거의 빠지지 않고 매주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했다.  

장애인을 위한 공연이니 가능한 밝고 즐거운 곡 중심으로 선정했다. 몇 년을 쉬다 기타를 잡는 거라 손끝이 아프고 갈라지기도 했다. 물론 모이면 시간의 절반은 누군가의 하소연, 위로와 조언, 수다로 채워졌다.

정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잡채나 부침개, 동치미 등을 가져왔고, 맛난 음식과 캔맥주를 나눠 마시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런 시간이 쌓여 꽤 단단한 공동체가 되었다. 공동체가 단단해야 어떤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공연이 가까워지면서 11월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모였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매일 모여 노래와 연주를 맞춰보았다. 연주와 노래를 같이 하려니 나중엔 다 연습하기도 전에 지쳐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십시일반 얼마씩의 기금을 걷어 장애인에게 대접할 점심 식사 준비 계획을 짜고, 마이크 준비, 의상 통일, 차량 준비, 뒤풀이 계획 등 세세한 부분까지 역할을 분담해서 진행해 나갔다.

요양시설 복지사는 그냥 와주기만 해도 고맙다고 했다. 그렇지만 기왕 하는 봉사라면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해드리자는 게 회원들의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직장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한 얼굴로 연습하고 준비하는 후배들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때마침 우리의 일을 응원하며 장애인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분이 나타나 감사했다. 

드디어 공연일. 갑자기 눈발이 날리며 기온이 급강하했다.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 장갑 챙기고 달려가니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움을 자청한 친구도 이른 아침부터 달려왔다.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미리 맞춰둔 음식을 찾고 교회에 가서 마이크를 빌린 다음 장애인 요양시설이 있는 광명시로 향했다. 음료와 과일 같은 건 미리 차에 실어 놓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손에서 땀이 났다. 긴장만 하면 연주가 빨라지고 코드도 잘못 짚는 나인지라 은근히 떨렸다. 게다가 나이 많은 만년 회장이라는 이유로 공연 진행까지 맡게 되어 가슴에 돌이 하나 얹힌 느낌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하얗게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이름이 뭐예요?” “내가 들을게요.” 

도착하자마자 복지사와 장애인들이 달려 나왔다. 이리 주세요, 하며 기타와 짐을 빼앗다시피 서로 들어주려 했다. 장애인은 25명. 20대에서 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6년 전보다 인원이 적었다. 지적장애인이 대부분이고 지체장애인도 더러 있다. 어떤 사람은 우릴 위해 실내화 여섯 켤레를 나란히 놔주고 어떤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참 고맙고도 따뜻한 환대였다. 우리는 기타를 한쪽에 두고 부지런히 점심을 준비했다. 조촐한 점심을 맛있게 드셔서 그 또한 감사했다.  

기타를 조율하는 동안 또 몇몇 분들이 옆에 와 앉아 말을 걸었다. 발음이 분명치 않아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6년 전에 만났던 분도 있어서 두 손을 잡고 인사했다. 마이크를 점검하는 사이 장애인 분들과 직원들이 모두 자리에 와 앉았다. 노래에 맞춰 멋지게 춤을 추던 상미 씨도 보였다. 더 예뻐진 듯했다. 

“6년 전에 우린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저희 잊지 않았죠? 이렇게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사랑이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났으니 오늘은 우리 모두 행복한 날입니다…” 

이렇게 시작을 하다보니 진짜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코끼리 아저씨’ 동요 메들리를 첫 곡으로 ‘눈 오는 밤, 나는 나비, 트로트 메들리, 행복한 사람, 내일이 찾아오면, 일어나’까지 우린 해맑은 관객들의 박수에 맞춰 신나고 즐겁게 기타 치고 노래하며 놀았다.

캐럴송에 맞춰 흥겨워 하는 광명사랑의집 식구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캐럴송에 맞춰 흥겨워 하는 광명사랑의집 식구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 캐럴 메들리. 머뭇거리던 상미 씨가 무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얼마나 춤을 재미있게 추던지 한눈을 팔다가 깜빡 코드를 놓쳤다. 나는 표 안 나게 기타를 치는 척하면서 다시 연주를 따라갔다.

상미 씨의 웨이브는 단연 압권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우리의 공연이 축제의 장이 된 것 같아 좋았다. 마지막 연주를 하면서 나는 이분들이 우릴 위해 공연을 해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우리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내년에 또 만나요!” 

공연을 마친 후 광명사랑의집 식구들과 기념촬영 모습.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공연을 마친 후 광명사랑의집 식구들과 기념촬영 모습.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나는 마무리 인사로 그분들과 약속했다. 또 만나기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을 때 상미 씨가 다정하게 내 팔짱을 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그녀와의 무언의 약속이었다. 상미 씨가 웃었다. 

뒤풀이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하기로 했다. 허당 아줌마들답게 네비게이션을 잘못 눌러 광명시만 두어 바퀴 돌다가 겨우 영종도로 향했다. 

“나 팬 생겼어.”하며 미정이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도와주겠다며 졸졸 따라다니던 창수씨 사진이었다. 코팅된 사진 뒤에 사인도 있었다. 그러자 윤희도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나도 받았는데?” 이번엔 동그랗게 오려진 상기씨 거였다. 두 친구는 내년에 꼭 목에 걸고 가자며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했다.  

사실 봉사를 자신의 업으로 삼고 평생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도 많다. 장애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몸이 불편한 노인들, 노숙자 등, 누군가 그들을 보살피는 봉사자분들이 있기에 그나마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봉사자야말로 가슴에 천사나 보살이 깃들어 있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한 해도 빠짐없이 기부하는 기업이나 단체도 많다고 한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불우이웃 돕기 모금을 하기 위해 기관이 나서서 홍보 영상이나 리플릿, 포스터 등을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누구든 소외당하는 일 없이 품어 안고 가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곳은 여기저기 너무도 많다. 여러 센터나 시설 관계자들의 말로는 팬데믹을 겪으며 후원금이나 봉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좋아지리라 기대했지만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란다.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은 여전히 어렵고 남을 위해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더 갖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건 돕고 나누는 일 아닐까? 거창하게 봉사나 기부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마음을 열고 내 이웃을 돌아보는 일, 추운 이들이 없는지 살펴보는 일, 그게 나눔의 시작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손가락에 관절염 올 때까지는 기타를 치며, 해마다 그리운 이들을 만나러 가지 않을까? 그런 상상으로,  날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나은주 칼럼니스트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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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연 2023-12-29 21:29:26
바쁜일상 속에서 봉사까지 하시다니!!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보내시는 선생님을 보니 덩달아 마음이 뿌듯하고 따뜻해 집니다~^^

이순화 2023-12-29 16:33:41
너무멋져요샘
화이팅!!!!!

raplan22 2023-12-29 16:05:36
따뜻한 감성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포근하네요. 바쁘신데 악기를 배우며 봉사 활동까지 하시는 작가님께 짝짝짝 박수 보내드립니다~

김윤태 2023-12-29 15:14:28
봉사활동을 하신다니 대단하십니다.마음은 있어도 막상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꿈그리기 2023-12-29 13:30:33
봉사활동...
정말 아름답게 하셨네요.
마음 먹기 쉬워도 실천하기 어려운...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지는 것이겠죠.
저도 해 넘어가기 전에 봉사활동하고 싶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