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 한겨울에도 눈이 내려 쌓이지 않으면 경험하기 힘든 설산 산행을 황매산에서 일찌감치 하게 되었다.
황매산은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 경계에 있는 해발 1113m의 산이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남북방향으로 능선이 뻗어 있는 산이라 한다. 산세는 급경사를 이루지만 고위평탄면에 철쭉과 억새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2012년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명소 50선에 선정했고, 2015년에는 산림청에서 발표한 한국 야생화 군락지 100대 명소에도 선정됐다고 한다.
봄에는 붉은 바다를 이루는 철쭉, 가을에는 은빛 억새 군락지로 장관을 이루는 곳에서 설산 산행의 행운을 담아본다.
11월 셋째 주 토요일은 전날부터 갑자기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가고자 하는 곳은 3일 전부터 많은 눈이 내려 쌓여있다고 전해졌다. 출발하는 토요일 새벽은 강풍이 부는 매우 추운 날씨였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서울보다 따뜻하겠지 생각했었다.
대전까지 바람은 불어도 눈은 보이지 않았다.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눈이 내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덕유산 방향으로 갈수록 도로와 산과 들에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 사방이 설국이어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갑작스럽게 내려간 기온으로 한파주의보가 발령됐고, 태풍급인 강풍이 불어 가고자 한 산은 입산금지가 내려졌다.
먼 곳에서 이른 새벽부터 추워진 날씨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달려왔는데 허망하였다. 통제에 따르기로 하고 가까이에 있는 황매산으로 갔다.
황매산 아래서부터 걸어 오르기는 이날 날씨 상태에서 불가능했다.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산을 찾아온 자동차가 없어 황매산의 제일 높은 미리내파크 제1주차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 주차장은 황매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주차장 가까이 철쭉 군락지가 있다. 철쭉이 피는 계절에 나이 드신 분이나 걷기 힘드신 분은 이 주차장을 이용하면 조금은 수월하게 철쭉을 구경할 수 있겠다.
▶산행 장소 : 경남 산청 황매산
▶산행 코스 : 미리내파크 제1주차장~철쭉 군락지~전망대~황매산 정상~북동쪽 능선 합천호가 보이는 곳까지~원점회귀
산행을 시작하면서 거의 수직으로 올려다보이는 멋진 봉우리가 정상인 줄 알았다. 정상이 참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올라갔다.
철쭉 군락지에 있는 철쭉은 성인 키보다 컸고, 잡목 하나 섞이지 않았다. 철쭉밭이 끝이 없는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황매산은 봄에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으로 유명한 곳임을 알고 있었다. 줄기에 봄이 되면 꽃이 될 겨울눈을 달고 있는 철쭉들이 드넓은 곳에 군집하여 있는 규모가 놀라웠다. 붉은 꽃이 피었을 때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그 황홀함이 짐작이 갔다.
철쭉 군락지를 올라와 산등성에 서니 강풍으로 몸이 휘청거려 걸어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정상으로 향하는 수직 계단에 놀랐으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세찬 바람을 도반 삼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서 고위평탄면을 바라보니 펼쳐진 철쭉밭과 억새밭의 규모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계단이 끝나면 전망대와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바위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산행을 시작할 때 수직으로 올려다보았던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라 전망대가 설치된 곳이었다. 전망대에서 철쭉이 피었을 때나, 은빛 억새가 피었을 때는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거 같다.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발목 위까지 올라올 정도로 눈이 쌓여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니 눈이 날려 나무에는 쌓여있지 못했다. 키 작고 가지가 많은 나무에 자리 잡고 쌓인 눈만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짧은 구간이지만 정상으로 올라가는 바윗길은 쉽지 않았다. 눈이 쌓여있고, 녹았던 곳은 얼어있었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으로 긴장하면서 조심히 올라가야 했다.
철쭉과 억새가 있는 곳과 정상 부근은 완전히 다른 모습의 황매산이었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악산처럼 바위도 많고, 위험한 구간이 몇 군데가 있다. 정상까지 짧은 거리를 강풍으로 힘들게 오르는 산행이 됐다.
정상에서 이어진 능선의 속살은 하얀 눈이 덮고 있었다. 올라온 방향으로 바라보니 주변의 산들이 발아래 있는 높은 해발을 실감할 수 있다. 황매산 정상석 바로 뒤에 있는 바위 봉우리 위에 ‘황매봉’이란 비석이 있다. 세찬 바람으로 위험하여 올라가지는 못했다. 높지 않아서 아래에서도 비석이 보인다.
강풍을 조심하면서 정상 주변을 감상한 다음 정상석을 지나 북동쪽 능선길로 갔다. 하산하시는 분이 정상만 보고 내려오지 말고 정상 뒤쪽으로 능선따라 150m 정도만 가면 멋진 곳을 볼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가는 길에 약간 넓은 곳이 나오면서 무학굴과 삼봉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었다. 무학굴이 무학대사와 연관이 있나 찾아보니 무학대사에 얽힌 전설이 있었다.
‘황매산의 무학굴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건국을 도운 무학대사가 합천군에서 태어나 수도를 한 동굴로 전해진다. 수도승 시절 무학대사의 어머니가 산을 왕래하며 수발하다 뱀에 놀라 넘어지면서 칡덩굴에 걸리고 땅가시에 긁혀 상처가 난 발을 보고 황매산 산신령께 지극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드려 뱀, 칡, 땅가시가 없는 “3무의 산”으로 불렸다’라는 전설이다.
전설 속의 이야기대로 황매산에 뱀, 칡, 땅가시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 여름 황매산을 만나러 와야겠다.
추운 날씨와 강풍 속에서 어떤 멋진 풍광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눈길을 걸어갔다. 두리번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니 산 아래로 가리는 것 없이 펼쳐지는 어떤 광경이 보였다. 단번에 이곳임을 알아보았다.
쨍하고 맑은 하늘 아래 주변 산들의 호위를 받는 합천호가 있었다. 수위가 낮은지 군데군데 물 위로 드러난 산이 섬처럼 보이는 모습이 더욱더 아름다웠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산수화로 작품을 남기고 싶은 멋진 풍광이었다.
이곳을 알려준 분께 마음으로 감사를 보내며 올라왔던 곳으로 무사히 하산했다.
철쭉과 억새,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라 높지 않은 펑퍼짐한 산이라 생각했었다. 직접 산을 오르니 해발이 1000m가 넘고, 기암괴석과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사가 연달아 나오는 황매산이었다.
철쭉 군락지 입구에 황매산을 여러 가지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된 글을 요약하면,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경이 활짝 핀 매화 꽃잎 모양을 닮아 풍수지리적으로 “매화낙지(梅花落地)” 명당으로 알려져 황매산으로 불린다. 황매의 황은 부를, 매는 귀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정상인 황매봉은 기암절벽으로 천하의 절경을 이루어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고 있다. 수십만 평의 고원에 깔리는 철쭉 융단과 억새평원이 장관을 이루며, 멀리 서쪽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웅석봉, 필봉산, 왕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황매산의 봄은 수십만 평의 고원에 펼쳐지는 철쭉군락,
여름은 가슴을 꿰뚫어 버리는 시원한 솔바람과 고산지대 특유의 자연 풍광,
가을은 능선을 따라서 온 산에 술렁이는 그윽한 억새의 노래,
겨울은 기암과 능선을 따라 핀 눈꽃과 바람, 햇살의 조화는 황매산 사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라고 사계절을 예찬하고 있다.
원래 목표는 황매산이 아니었으나 날씨 덕분에 최단코스로 황매산의 사계절 중 겨울을 안내된 글처럼 제대로 체험한 행운의 날이었다.
황매산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뜻있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철쭉이 핀 봄에 찾아와 붉은 바다를 아름다운 광경도 보고,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지극정성으로 기도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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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길잡이 될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