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③ 뜨거운 지구를 구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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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③ 뜨거운 지구를 구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 
  •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 승인 2023.09.14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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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디지털플랫폼 실장] 백로를 지나 곧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늦더위가 기승이다. 유난했던 지난 여름의 폭염은 인류에게 기후 재앙의 강렬한 공포를 남겼다.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하와이 마우이섬이 산불로 폐허가 되고 상록수가 우거진 캐나다의 산들도 불길에 휩싸여 쉼 없이 연기를 뿜어냈다. 관측 지표들은 지구가 위기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줬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가 발표한 올해 6~8월 전 세계 평균 기온은 16.77℃로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앞으로 5년 안에 올 7월보다 더운 날이 찾아올 확률을 98%로 예측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는 인류 앞에 갑자기 등장한 위협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화석연료의 남용과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의 끔찍한 미래를 경고해왔다. 국제사회 역시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을 체결한 것이 1992년이니 이미 30년 전 지구촌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후 2005년에는 38개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을 책임지도록 협약을 맺은 교토의정서가 발효됐다. 2015년에는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해 1.5℃로 제한하자며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세운 파리기후협약을 체결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매년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를 열어 점검을 하고 있지만 지구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상승폭 1.5℃ 제한은 지키지 못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던 위협이지만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며 어영부영하는 사이 눈 앞에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만 높을 뿐 불을 끄기 위한 동작은 여전히 굼뜨다. 

블록체인 기반의 탄소감축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KlimaDAO 홈페이지.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클리마다오 홈페이지 캡처
블록체인 기반의 탄소감축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KlimaDAO 홈페이지.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클리마다오 홈페이지 캡처

교토의정서 발효 당시에는 대표적인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인도에는 감축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미국은 애초부터 참여를 거부했고 다른 선진국들도 뒤이어 탈퇴했다. 파리기후협약 역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며 탈퇴를 결정했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며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모두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게 된다. 그럴듯한 약속들은 쏟아지고 있지만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구체적인 사항들은 부족하고 약속 이행을 강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외교적 방법의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인류는 공동의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기구와 같은 국가간 협력이나 외교적 대응에 기대왔다. NGO와 같은 초국가적 거버넌스를 활용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나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국가간 이해가 상충할 경우 합의점을 찾기 어렵고 합의를 하더라도 국경을 넘어 강제력을 갖는데 한계를 보인다. 최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기술을 활용해 기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보이지만 이 역시 국가간 파워게임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기후 위기를 해결할 희망은 없는 것일까?

최근 국가 주도의 해법이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블록체인은 문제에 대한 초국가적 협력을 이끌어내고 합의 내용들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낸다. 또 의사결정 과정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록된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로 자동화 된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도가 높아지며 합의사항을 이행해야 하는 강제력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은 초국가적 협력이나 조정을 끌어내는 새로운 거버넌스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이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분야가 탄소배출권 시장이다. 파리 기후협약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고 크게 정부가 주도하는 규제탄소시장(CCM)과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발적탄소시장(VCM)으로 나뉘고 있다.

VCM은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이행하고, 베라(Verra)나 골드스탠더드(Gold Standard) 등의 기관에서 인증받은 탄소배출권(크레딧)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시장이다. 탄소 감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기업들이 ESG 활동을 강화하면서 CCM만으로는 탄소배출권의 수요를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다. VCM의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이유다. 맥킨지는 2021년 리포트 ‘기후 도전에 대응하는 VCM 확대를 위한 청사진’에서 크레딧 수요가 2020년 대비 2030년에는 15배, 2050년에는 100배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VCM의 활성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프로젝트 개발부터, 인증, 유통까지 전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꼽힌다. 모든 거래 정보가 기록되고 스마트컨트랙트에 의해 운영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투명한 거래 추적이 가능해진다. 중개인의 개입 없이도 거래 과정을 검증할 수 있게 되며 그린워싱 등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또 토큰을 활용해 일반인들의 참여가 쉬워지면서 유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탈중앙화자율형조직(DAO)을 구성해 탄소 감축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들이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KlimaDAO로, 탄소배출권을 토큰화하고 이를 거래함과 동시에 거래된 배출권의 양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다양한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CzeroDAO가 탄소제로를 목표로 NFT 민팅을 통해 조성한 기금을 신재생에너지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후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DAO들이 생태계 보전, 해양오염, 의약품을 개발하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까지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한 가치를 지켜가는 활동에 나서고 있다. 

아직은 블록체인이나 이에 기반한 DAO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 최근 암호화폐와 관련한 사고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블록체인 전반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개개인들이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면서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가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구를 구하는데 반드시 어벤져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개인들이 모두 영웅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디지털플랫폼 실장은 경영학 박사이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조직과 거버넌스의 변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민간 싱크탱크에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참여형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주도하고 있으며, DAO 운영 등 다양한 웹3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클라우드 국가가 온다(공저)’, ‘코로나 시대 한국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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