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② 잼버리 참사의 경고음은 왜 들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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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② 잼버리 참사의 경고음은 왜 들리지 않았는가? 
  •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 승인 2023.08.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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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디지털플랫폼 실장]  예견된 재앙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 Law)’이다.

1920년대 미국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윌리엄 하인리히는 사고 자료들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한 건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29건의 작은 사고들이 있었고, 피해는 없지만 위험한 순간들이 300번은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큰 사고 이전에 위험을 알리는 크고 작은 경고음들이 수 없이 나온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한 것이다.

사소한 경고 시그널을 지나치지 않고 위험한 행동 패턴을 바꾸거나 대비를 해놓는다면 대형 사고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주 막을 내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를 놓고 벌어지는 책임 공방을 보면 수 많은 경고 시그널들이 무시되고 외면된 것을 알 수 있다. 대회가 파행으로 치닫고 나서야 그간 얼마나 준비가 날림이었는지 증언과 자료들이 화산처럼 터져나오는데 왜 진작 이 사달을 막을 수 없었는지 참담할 뿐이다.

파행으로 치달은 잼버리…외면된 경고 시그널 

누군가는 올해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여름이라며 기후위기를 탓하기도 하지만 이는 낯부끄러운 핑계일 뿐이다. 잼버리가 열렸던 기간은 한반도가 가장 뜨거워지는 중복과 말복 사이다. 30도를 넘는 폭염과 한밤의 열대야는 충분히 예상해서 대비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형편없는 기반 시설과 처참한 위생 상태는 오늘날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국민들의 삶의 질과 비교해도 한참을 못 미친다.

언론 보도를 보면 부실한 대회를 야기한 문제들은 사전에 파악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회에서는 잼버리 사전 조사를 위해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잼버리 대회를 개최했던 일본 야마구치현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를 참관하고 왔다.

출장 보고서에는 간척지의 취약점, 폭염 대비 문제, 화장실과 샤워시설 등의 기반 시설 운영 지침 등에 대해 적시돼 있지만 출장에 나섰던 국회의원들은 그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도됐다.

국회뿐 아니라 전북도 공무원들도 잼버리 사례 조사 명분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평균적인 국민들의 눈높이를 가졌다면 허술한 준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리 없다. 조기 철수했던 영국 스카우트 관계자들도 초기부터 열악한 화장실이나 샤워시설 문제를 개선해 줄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내에서 캠핑 경험이 있는 일반인들조차 그늘막 하나 없이 설치된 허술한 야영장 사진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2023 새만금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잼버리 시설과 진행상 문제가 속출하자 이에 대한 후속 조치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2023 새만금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잼버리 시설과 진행상 문제가 속출하자 이에 대한 후속 조치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위적 조직 문화가 다른 의견의 개진 막아  

지나고 보면 파행을 예견하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이 명백한 시그널들은 왜 묻혀버렸을까? 조직위의 리더십 부재와 무책임한 태도, 지자체의 역량 부족, 예산을 둘러싼 이권 카르텔 등 대회의 파행을 빚은 요인들은 복합적이지만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막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하인리히의 법칙’에서 보듯이 위험 신호를 파악한 실무진들의 의견이 빠르게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에서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는 1997년 발생한 대한항공 괌 추락사건을 다루며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어떻게 생사가 걸린 위기 상황에서조차 적절한 의견 개진을 막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당시 괌 상공의 기상 상황은 좋지 않았고 조종석 계기판에서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착륙을 포기하고 고도를 올렸어야 한다. 그러나 기장은 착륙을 결정했고 공식적인 사고 원인은 괌 공항 유도장치의 결함과 과로 상태였던 조종사에 있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러나 글래드웰은 블랙박스에 담긴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에서 특이점을 발견한다. 기장이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피로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부기장은 왜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까? 위기 10분전의 순간 부기장은 착륙은 위험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냈지만 문제없다는 기장의 한 마디에 다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부기장은 그 이전에도 착륙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사를 매우 소극적인 방식으로 표출한다. 말의 맥락 속에서 부기장이 착륙 시도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글래드웰은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수직적 문화가 조종실에서 적절한 의견 개진이 이뤄질 수 없는 침묵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조직이 경직되면 위험 경고 울려도 듣지 못해 

알카에다의 9.11 테러를 대비하지 못한 CIA의 사례는 경직된 조직이 어떻게 위험 신호에 둔감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2001년의 9.11테러를 앞두고 알카에다는 미국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있는 CIA는 왜 테러의 시그널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을까?

CIA는 스펙으로만 보면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정작 무슬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력은 핵심에 없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알카에다에 관한 정보는 취합하고 있었지만 그 정보에 담긴 위험성을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은 없었던 것이다. ‘백인, 중산층, 기독교’ 문화에서는 가장 유능한 집단이었을지라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순간 무능한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CIA 핵심부는 알카에다를 비현대적이고 무지한 야만인 집단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는 의견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잼버리대회가 막을 내렸지만 정치권은 파행의 책임 주체를 가리겠다며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양쪽 모두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진영 논리에 따라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하다. 이처럼 경직된 분위기에서 재발을 막기 위한 진솔한 반성과 개선 방안들이 나올 수 있을까? 

하인리히의 법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사소한 위기 경보를 헛되지 흘려보내지 말라. 피해가 없었다면 운이 좋았을 뿐, 행동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대형 사고를 맞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위기 경보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번 잼버리가 한국 사회의 위기 경보 시스템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디지털플랫폼 실장은 경영학 박사이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조직과 거버넌스의 변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민간 싱크탱크에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참여형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주도하고 있으며, DAO 운영 등 다양한 웹3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클라우드 국가가 온다(공저)’, ‘코로나 시대 한국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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