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주의 세상보기] 드라마 'D.P'가 현실이 아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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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의 세상보기] 드라마 'D.P'가 현실이 아니었음 좋겠다
  • 나은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2 13:3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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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 칼럼니스트] 하늘이 뚫린 듯 폭우를 쏟아붓던 장마가 끝나자 펄펄 끓는 불볕더위가 세상을 달군다. 자연과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에게 내리치는 하늘의 호된 죽비다. 죽비를 맞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인간도 사회도 희망이 없다. 

얼마 전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해병대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 채수근 상병. 결혼 10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얻은 귀한 아들, 한 집안의 장손이자 27년 봉사한 소방관의 외동아들이었다는 그는 채 꽃망울을 피우지도 못하고 꺾여 버렸다.

흙탕물이 무섭게 소용돌이쳐 흐르는, 사람이며 집이며 모든 걸 사정없이 집어삼키는 급류 속으로, 청년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걸어 들어갔다 변을 당했다. 군 책임자는 하천에 들어갈 때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군 매뉴얼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아들 사진을 안고 통곡하는 채 상병의 어머니를 보며 나도 함께 울었다. 억울하게 아들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그녀의 남은 삶은 얼마나 막막하고 추울까 싶어 또 눈물이 났다.

아들에게 보훈 훈장이 추서되었다고 해서 그녀의 가슴에 박힌 대못이 사라질까? 어린 군인들이 당하는 일은 모두 내 아들이 당한 일이나 다름없다. 채 상병의 죽음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의 아픔이다. 

지난 7월21일 오후 포항해병대 1사단내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보국훈장 광복장 서훈식에서 해병대원들이 경례로 예를 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21일 오후 포항해병대 1사단내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보국훈장 광복장 서훈식에서 해병대원들이 경례로 예를 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국군. 분단의 나라에서 태어나 휴전 중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정 나이가 되면 군대에 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남자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 숙명이다.  

내가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이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정성 들여 위문편지를 쓰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국군 아저씨들이 마냥 존경스럽기만 했다. 부모와 형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그들이 어린 내겐 영웅 같은 존재였다.

대학에 들어가자 겨우 애티를 벗은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에 갔다.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목이 터져라 ‘입영 전야’를 불러대던 친구들. 짠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로 군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으므로. 저런 친구들이 나라를 잘 지킬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몇 달이 지나면 친구들은 각 잡힌 군복을 입고 늠름하게 불쑥 나타나곤 했다. ‘충성’ 거수경례를 멋들어지게 하는 친구들에게서 제법 사내 티가 났다. 그때, 군대는 어린 남자들을 씩씩한 사나이로 만들어 주는 통과의례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들도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갔다. 화천의 포병부대에 배치된 큰동생은 장남답게 힘들다는 내색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험한 대포를 다루다 사고가 일어나 지금도 온몸에 벌겋게 상흔이 남아 있다. 부모님은 큰아들이 더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라면서도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중에 동생이 휴가를 나와서야 가족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군에서는 누구도 그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막내동생은 대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전투경찰로 차출이 되었다. 동생은 제 또래의 대학생들과 맞서야 하는 정신적 고통, 전투경찰 내의 구타와 얼차려 같은 고질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힘들어했다. 피해자가 되었다가 가해자가 되었다가 방관자가 되기도 하는 자신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몇년전 아들을 배웅했던 논산훈련소 입소식 전경. 사진=나은주
몇년전 아들을 배웅했던 논산훈련소 입소식 전경. 사진=나은주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 아들들이 군인이 되었다. 두 살 터울인 아이들은 각자 지망하는 곳이 달라 15일 간격으로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 건강히 자라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이니 웃으며 보내자고 다짐했지만 보통의 엄마들이 그러하듯 연무대 연병장까지 걸어 들어가면서 눈물을 참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의 군대는 예전의 군대가 아니다, 절대 훈련도 세게 시키지 않는다, 군대 다녀와야 부모 품 귀한 거 안다’는 등의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조언도 소용없었다. 아이가 처음 맞닥뜨릴 딱딱한 규격의 세계, 통제의 세계, 강압의 세계가 한없이 염려스럽기만 했다. 모른 척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들은 나를 안으며 말했다. “잘하고 올게, 엄마. 걱정하지 마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들은 아버지도 그렇게 안아주었다. 15일 후면 따라 들어올 동생에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고는 연병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에겐 그저 어리디어려 보이는 아들 군인들이 연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뒤꿈치를 들고 아들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다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보름 후에도 또 한 번 비슷한 풍경 속에 놓였다. 먼저 맞은 주사 때문인지 마음은 좀 차분했다. “엄마, 나 믿지?” 작은아들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연병장으로 들어갔다. 특전사가 되고 싶다던 녀석은 육군쯤은 식은 죽 먹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또 수많은 아들 군인들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기만 하거라. 나의 기도는 늘 한결같았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는 달리 작은아이는 제대를 두 달여 남겨두고 통신선 매설공사를 하다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아이는 결국 국군통합병원 중환자실까지 가게 되었다. 담당 군의관은 전화를 걸어 ‘치사율 30프로의 감염병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원한다면 민간 병원으로 옮겨도 된다며. 전화기를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열 명 중 세 명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나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한타바이러스 예방 접종을 했다면? 미세먼지 마스크라도 썼다면 그런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한 달여 고생 끝에 다행히 나아서 제대를 했다. 군대에서의 사고가 얼마나 많으면 말년병장 땐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라고 했을까. 그 뒤로 나는 군인들을 보면 그들이 아무 탈 없이 군 생활 잘 마치고 부모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빌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대학생 시절의 내가, 엄마가 된 내가 그랬듯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 다르다. 하지만 바탕에 깔려 있는 감정은 ‘사랑’이다. 우리나라 군인은 50만 명이지만 그들의 안위를 염려하고 무사 제대를 기원하는 가족은 5000만 명이다. 한 사람의 군인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삼촌이고 남편이고 애인이며 친구이고 손주이다. 어떤 정치적 논리, 경제적 논리에도 함부로 이용돼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전 세계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잠시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우리는 휴전 상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이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한 중학생이 아주 진지하게 ‘우리도 군대 없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했다. 그건 군대 가기 싫다는 말이 아니었다. 전쟁과 대립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193개국 유엔 회원국 가운데 무려 26개국에 군대가 없다고 한다. 이유야 다양한지만 , 자신들은 평화를 원한다며 아예 무장해제를 해버린 것이다.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그건 이상임을 안다.   
6·25 전쟁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년을 넘어가는 이 시대 대한민국 군대는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애국관도 변했다. 이제 우리나라 군대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고 월급을 올려 주기 전에 군인 한 명 한 명을 존엄한 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배려하며 스스로 대한민국 군인임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전 세계 무기 수출 점유율 2.8%, 전 세계 무기 수입국 점유율 4.1%, 한 해 국방비로 500억 달러를 쓰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전쟁 대비를 잘하고 어마어마한 나랏돈을 국방비로 쓰는 대단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을 귀히 여기는 훌륭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군대가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존재했으면 좋겠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진짜 사나이’를 만들어 주는 군대. 그래야 이 땅의 부모들이 마음 놓고 아들을 나라에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넷플릭스에서 군대를 다룬 <D.P.>가 인기라고 한다.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일 뿐인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나은주 칼럼니스트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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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그리기 2023-08-03 11:59:19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지휘관의 잘못된 상황판단으로 인한... 이런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더 이상 반복되는 일이 없어야... 좋은 글이 었어요.

정나도 2023-08-02 17:21:23
글을 읽으니 좀 있으면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내 자식뿐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싸움없는 세상에서 살길 빌어봅니다.

푸른숲 2023-08-02 16:24:24
언제나 읽고 공감하는 선생님 글이지만 아들을 군에 보내 본 엄마마음으로 보니 더욱 더 공감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