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주의 세상보기] 오염수 걱정하며 열무김치 담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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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의 세상보기] 오염수 걱정하며 열무김치 담그던 날 
  • 나은주 글쓰기 선생
  • 승인 2023.07.02 12:09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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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 선생
나은주 칼럼니스트

[나은주 글쓰기 선생]  “우리 언니 집에서 열무김치 담그기로 했어”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우리 집에서?” 

뜬금없이 웬 열무김치? 그것도 우리 집에서? 호프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들은 말이었다. ‘중요한 문제(?)로 하이오비(단골 맥주집)에서 중요한 번개 모임 하고 있으니 수업 얼른 마치고 오라’는 기타동아리 후배들 문자로 받고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500ml 맥주잔들이 거의 비어가고 있었다. 다들 얼굴이 발그레했다. 

“장마 대비 김치 담그기야.”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수 바다에 쏟아붓기 전에 담가야 해, 언니 집 항아리에 소금 있잖여.” 

“식민 통치에 2차 세계대전도 모자라 이젠 바다에 핵폐기물 방류까지? 국제 깡패들이야. 기막혀!” 

“스무 단쯤 열무 다듬고 씻고 하려면 할 데가 언니네 옥상밖에 없어. 이번 주는 기타 연습 대신 김치 담그기로 결정한 거야. 만장일치로.” 

만장일치라고? 나 없는 만장일치? 이렇게 두서없이 귀여운 억지를 쓰는 아줌마들은 기타동아리 동생들이다. 동네 복지관에서 동아리 모집하는 걸 보고 모여 만든 기타동아리 통통통.

‘기타를 통해 나와 소통하고 가족과 소통하고 사회와 소통한다’는 꽤 그럴 듯한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지었다. 단 한 번도 기타를 쳐본 적이 없는 완전 초보 아줌마들이 모였다. 실력은 꽝이지만 의지와 끈기는 대단해서 무려 7년을 거의 매주 만나오고 있다. 복지관 자원봉사를 나오는 강사분이 기타를 가르치다 보니 조금 나오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기타 배우는 속도는 당연히 거북이걸음.  

그러나 오히려 그런 상황들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기타 연습 시간보다 얄미운 남편 흉보기, 애들 속 썩이는 얘기, 시댁 식구들 하소연하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속상한 일은 속상한 일대로 함께 울고 웃으며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의 긴 단절은 ’통통통‘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였던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통통통‘의 만년 회장인 나는 고민 끝에 우리 독서교실에서 다시 연습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3년의 세월만큼 손가락도 굳고 머리도 굳었지만 무엇이 대수겠는가? 아줌마 여섯 명이 모였는데.  

어이없어하는 나를 보며 미정이가 분위기를 잡는다. 

“자자, 일단 션하게 한 잔 드시구. 오늘도 고생했슈. 인생 뭐 별거 있어? 이렇게 살면 되지.” 

무더운 여름, 귀갓길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역시 맛있다. 빈속으로 짜르르 흘러드는 찬 맥주가 시들시들 지친 하루를 상큼하게 털어내 준다. 튼실한 닭 다리 하나를 뜯으면서 후배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니 대강 이랬다.

얼마 전에 직장을 옮긴 막내 윤희가 사장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 우울해서 번개를 쳤단다. 다들 퇴근해서 식구들 밥 차려주던 나머지 동생들이 이때다 하고 후다닥 나와 모임 성사. 갑자기 윤희가 ‘보리밥에 열무김치,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스트레스고 뭐고 다 풀리겠다’고 했고, 그럼 당장 담그자, 김치 잘 담그는 명선이가 총지휘하고 버무려라, 스무 단쯤 해서 여섯 집 나누자, 시장에서 열무 · 얼갈이 · 쪽파는 살림꾼 총무 경존이가 사고 나머지 마늘, 양파, 마른 고추는 자기 집에 있는 것들 들고 오기. 그렇게 됐단다. 동아리 맏언니인 내가 거절 못할 걸 알고 한 작당이다. 어쩌겠는가, 가져와 담겠다는데.  

“언니도 혼자 담기 싫잖아. 우리가 다 할 테니 언니는 내일 열무김치에 넣을 풀죽 한솥 쑤고 밥이나 해놓으셔.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이 미리 가서 준비하고 있을게.” 

“삼겹살과 맥주는 내가 쏠게. 김치 다 담고 구워 먹자.” 

회사 다니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엊그제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딴 지원이가 분위기를 띄운다. 뭐에 홀린 듯한 기분인데 딱히 거절할 핑계를 만들기도 전에 상황 종료.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에 500ml 한 잔씩 마시며 거사를 통보한 후배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어쩐지 낚인 거 같기도 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같기도 하고.  

거의 김장 수준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한쪽에 처박아 두었던 함지박과 채반들을 꺼내 놓았다. 그동안 절임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한 탓에 엄청 큰 함지박은 없었다. 김장철 되기 전에 대형 함지박을 한두 개 사야 하나?

방사능 오염수 때문에 당장은 절임 배추를 사 먹는 게 께름칙할 것이다. 그래도 몇 년은 직접 배추를 절여서 김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소금만 문제가 아니라 새우젓, 미역, 다시마, 생선, 조개까지. 아니, 간장, 된장, 고추장, 우리가 먹는 모든 반찬에 소금 안 들어가는 게 없네. 괜히 심란해진다.  

커다란 곰솥에 풀죽을 한가득 쑤었다. 작년 가을에 산 마른 고추도 꽤 남아 있으니 그걸 갈아 넣으면 될 것 같고. 김장 양념 버무리던 둥그런 매트가 어디로 들어갔는지 안 보여 한참을 찾았다. 이것저것 꺼내 놓으니 작은 옥상이 김치 담글 도구들로 그득하다. 손바닥만 한 옥탑방까지 대충 청소하고 나니 땀이 비 오듯 한다. 화분에 상추 몇 포기 심었으니 삼겹살 한번 구워 먹을까 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벌어진 일.  

그런데 다들 소금 가지고 온다는 말은 없다. 당연히 우리 집에 있으려니 해서겠지.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에 사 두셨던 소금 한 포대를 들고 왔더니 작은 항아리가 그득하다. 그래 봐야 20킬로짜리. 요즘 소금 때문에 난리라는데 나도 몇 포대 사둬야 할 거 같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마트 소금 매대는 비어 버린 지 오래라는 뉴스를 보았다. 인터넷 쇼핑몰의 천일염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고 들었다. 정부에서 쟁여둔 소금을 푼다고 하는데… 일본 방사선 오염수 깨끗해질 때까지 몇십 년치 소금을 쟁여 놓기라도 한 건가?   

일본 때문에 왜 우리가 이 난리를 겪어야 하나 생각하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현대 문명의 이기 뒤에는 항상 그 이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이 여름에도 에어컨이며 냉장고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전기를 만들어야 하고, 수력 · 화력 발전소만으로는 수급을 못 하니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진으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가 폭발했듯 어떤 나라에서건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일본처럼 방사능 오염수를 처리할까?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처리 방식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인체에 치명적인 삼중수에 60여 종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원전 오염수를 드높은 과학 기술로 정화해 깨끗하고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니 드넓은 태평양에 방류하겠다, 당신네 나라 국민들 안심시켜라. 딱 그 짝이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25명이나 배출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돈이 훨씬 더 들더라도 지구의 뭇 생명들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게 선진국다운 자세이다.

무서운 핵 폐기물을 10년 이상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던 그네들이 그 사이 신적인 비법이라도 찾아냈단 것인지? 방사능 오염수 정화 비법으로 다음 노벨상 수상자가 또 나올지 모르겠다. 미국도 IAEA(국제원자력기구)도 오염수 방류에 찬성했다는 기사를 보며 을사늑약 전에 이루어진 가스라-태프트 밀약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투기한 바다를 향해 누군가 또 오물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께름칙하다.

텔레비전만 틀면 우리나라 대통령도, 장관도, 유명 대학 교수들도 나서서 방사능 오염수가 인체에 무해하니 안심하란다. 자신은 그 물 마실 수도 있다고 한다. ‘과학’의 ‘과’자도 잘 모르는 ‘나’이므로 안전하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순 없다. 하지만 그 말들을 믿진 못하겠다.

논술 수업을 하면서 생명의 소중함, 생태 중심주의 사고, 이타주의,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환경을 보호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떠들어 온 나로서는 저들의 행태가 불편하고 화가 날 뿐이다.

불안한 눈빛으로 “선생님, 제가 생선이나 김을 무지 좋아하는데 계속 먹어도 병에 걸려 죽진 않겠죠?”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나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비닐봉지가 배에 가득 찬 고래, 빨대가 코에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거북 영상을 보며 눈물 글썽이는 아이들에게 정화된 방사능 오염수는 바다에 버려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강물을 정수한 수돗물도 안심이 안 돼서 정수기 들여놓고 생수 사 마실 만큼 건강에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물며 방사능 오염수는 마실 수 있을 만큼 안전하다고 하면 누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소견이 좁고 세상 보는 눈이 편향적인(음, 사랑이 넘치는) 나이지만 난 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미래 세대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치적 논리, 경제적 계산보다 국민의 마음을 먼저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소금 매대 앞에서 핸드카 끌고 줄 서는 할머니, 아줌마들을 사재기나 하는 무지한 존재들로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나쁜 물질이 섞여 있을지도 모를 소금을 자신이 먹는 게 두려운 게 아니다. 먹는 대로 피와 살이 되는 어린 손주들과 내 아들, 딸들만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돈 몇 푼 더 쥐어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스텐 용기에 소금 너댓 바가지 퍼 담으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오전 내내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휙 지나갔다. 부지런히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옥상이 시끌시끌하다. 다들 직장을 다니지만 내 퇴근이 가장 늦다. 어느 채소 가게를 쓸어왔는지 어마어마한 양의 어린 열무, 얼갈이가 소쿠리와 함지박마다 수북하다. 손이 잰 주부들이라 어느새 거의 다 다듬어간다. 억세지 않고 여리여리한 게 맛있는 열무김치가 될 것 같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언니, 양파 안 갖고 왔네. 여기 있어?” 

“정수기 물 좀 받아 오셔.” 

“믹서기 어딨어? 갖다줘.” 

그날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나이 든 회장님은 심부름하다 파김치가 됐다. 풋내나니 오래 주무르지 마라, 설탕 넣지 말고 양파 많아 갈아 넣어야 시원하다, 고춧가루 넣으면 텁텁하니 건고추 간 것만 넣어라… 이집 저집 비법이 섞여지고 버무려져 열무김치 완성! 장마 준비 끝! 가득가득 눌러 담은 김치통들이 흐뭇하게 웃고 있다. 더 이상의 부자가 없다.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바지런한 미정이, 윤희가 삼겹살을 굽고 있다. 삼겹살에도 왕소금을 뿌려야 제맛이라나? 지글지글 노릇노릇 삼겹살이 익어간다. 화단에서 상추 몇 닢, 풋고추 몇 개 따서 씻고, 청량고추 다져 넣어 칼칼한 쌈장을 만들어 내놓는다. 지원이 남편이 들고 왔다는 맥주가 냉장고 한가득.  

적당히 어두운 시간에 좋아하는 후배들과 먹는 삼겹살과 맥주 맛이란 더 말해 무엇하리오? 

“오늘 진짜 고생했슈. 인생 뭐 별거 있어? 션하게 한 잔 마시자구요!” 

역시 분위기 메이커 미정이다. 유일한 기독교인다운 건배사. 

“우린 세상에 필요한 소금 같은 사람이 됩시다, 할렐루야.” 

“오염수로 만든 소금 말고 청정 천일염으로! 나무 관세음보살.”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사진=나은주 칼럼니스트

아무렴, 과학도 종교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깊어가는 밤. 가족들을 위해, 열무김치 가득 담은 김치통을 들고 돌아가는 후배들이 참으로 갸륵해 보였다.  

내일은 보리밥에 열무김치 넣고 쓱쓱 비벼 먹어야겠다. 

나은주 글쓰기 선생님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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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lan22 2023-07-07 22:17:57
저두 옥상에서 같이 김치 담그고 삼겹살에 맥주 한잔 하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며칠전 마트 갔는데 소금이 없더라구요. ㅠ

민민연 2023-07-03 16:35:19
한국인의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먹거리 김치^^
정치,경제, 좌파니 우파니 이런 말 솔직히 모르겠고,
건강하고 안심한 먹거리로 이쁜 울 아이들에게 맛있게 먹이고 싶네요^^
오늘 저녁 양푼이에 열무 비벼서 식구들과 둘러앉아 먹어야겠어요 ㅎㅎ
나은주님의 글에서는 사람사는 맛이 느껴져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 정말 2023-07-03 11:45:34
이 글에서 과학적 근거는 하나도 없네요. 100년전 있었던 일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말하고 자기들은 일본 여행경비가 싸다고 일본 가고 바다에 이미 11년전에 막무가네로 흘러가던 오염수가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한국의 절반이상이 다 원자병에 걸린 이상한 나라의 타령을 듣고 있자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가 난 바로 그 순산부터 하루 300톤이라는 엄청난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대한민국은 절라도는 100%가 좌빨은 120%가 원자병에 걸려 미친듯이 날뛰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 같습니다. 무지막지한 좀비 영화를 보니 원자병에 걸맄 좀비같은 좌빨과 절라도는 모두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전염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과학적 근거는 무시하고 이미 그들은 원자병에 걸린 상태임

김윤태 2023-07-02 14:19:33
함께 부딪혀 가며 살다보면 서로에 마음도 열리겠요.^^

정나도 2023-07-02 13:48:16
글을 읽다보니 침이 고이네요~~
요즘 다 사서 먹는데
재미나게 만들어 먹어서 정감어리네요.
먹는 것만이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세상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