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이야기③] 철옹성에 피는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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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이야기③] 철옹성에 피는 진달래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5.05.3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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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철옹성 밑에서 북한은 핵 실험을 했다

옛날의 전쟁은 선이 아닌 점으로 이뤄졌다. 공격하는 쪽에서는 주력군을 이끌고 성(城)을 공격하고, 그 공격 지점을 이은 것이 공격로가 됐다. 또한 방어하는 쪽에서는 주군(임금)이 있는 지점까지의 점(성)들로 방어진을 구축했다. 현대전에서처럼 동에서 서로, 또는 남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긴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은 대단히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고, 축성술은 방어력의 요체였다.

영변 약산 진달래

옛 성은 돌과 나무로 만들어졌다. 나무로 긴 울타리를 만들거나 돌을 네모나게 깎아 높게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방어진을 쳤다. 그러나 아무리 견고하게 만든 성이라도 적의 우세한 공격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는 화공(火攻)에 불타 소실되고, 끝을 뾰족하게 만든 원목을 수십명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목재 성문이 무녀져 적이 밀물처럼 몰려와 함락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천년 동안 방어에 성공했던 콘스탄니노플 성도 투르크 군대의 무자비한 공격에 무너져 천년 로마제국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전쟁에서 권력자들은 어떤 공격에도 견딜수 없는 성을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쇠(鐵)로 만든 성을 만들면 화공에 타지 않고, 포격에도 견딜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 소망에서 나온 가상의 성이 철옹성(鐵甕城)이다.

동양적 개념의 철옹성은 정확하게 말하면 ‘철로 만든 옹성’이라는 뜻이다. 옹성은 성문을 두 겹으로 쌓아 적이 쉽게 쳐들어 올수 없도록 한 것인데, 그 모양이 옹기 같이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현재 우리나라 동대문을 보면 누각이 있는 성 밖으로 반원을 그리며 또다른 성(옹성)을 겹으로 쌓았고, 수원 화성의 4대문이 전형적인 옹성 방식으로 축조됐다.

옹성의 전형은 중국의 중원제국 수, 당과 싸워 이긴 고구려의 성에서 비롯된다. 철옹성이라는 단어는 철로된 옹성이라는 보통명사이지만, ‘철옹 같다’, ‘철옹성처럼 버티다’처럼 비유어로 사용된다. 또한 보통명사 ‘철옹성’은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에 있는 성을 말한다. 이 성은 본성(本城)과 신성(新城)등 4이름 성으로 이뤄져 있다. 전체 둘레가 12.5km인데, 본성이 8km, 약산성이 1km, 북성이 2km, 신성이 1,5km에 이른다.

약산성과 본성은 고려시대에, 북성과 신성은 조선 숙종때 쌓았다. 후대에 쌓았지만, 성의 모양은 고구려의 축성 방식을 채택했다. 철옹성은 영변 일대의 자연지리적 조건을 잘 이용했는데, 약산성의 경우 동, 서, 북쪽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이용하고, 남쪽의 일부만 쌓았다. 본성은 고지와 능선 부분에는 외면쌓기, 골짜기와 성문 좌우 부분에는 양면쌓기를 했다. 높이 6~7m의 성벽은 가공석을 사용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철옹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철옹성이라는 이름은 지형이 절벽과 벼랑으로 되어 있어 험준하고 사방에 둘러쳐진 산봉우리가 겹쳐 마치 철 옹기 같다는데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이 성을 사적 36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철옹성은 이름답게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 영변성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11세기초 거란의 공격을 수차례 받았지만, 물리쳤으며, 1236년 몽고, 고려말 홍건적,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입을 모두 막아냈다.

철옹성이 둘러싸고 있는 산이 바로 시인 김소월의 유명한 ‘진달래꽃’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

 

철옹성과 진달래꽃의 고장 영변에는 원자로가 가동돼, 국제사회의 초점이 된 적이 있다. 북한은 2002년말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후 영변 원자로를 가동하겠다고 위협했다. 영변 원자로는 미국 군사인공위성이 매일 확인하는 곳이 됐다. 마침내 북한은 2006년 가을에 영변 원자로 가동과는 별도의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다.

▲ 북한 영변 핵시설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국제사회가 그어놓은 ‘금지의 선(red line)’을 넘어섰다. 북한 핵실험은 한반도를 파국의 위험으로 몰아 넣었다.

고구려가 망하기 직전에 실세 연개소문은 보장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아시아의 최강자인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그때 연개소문이 차지한 지위 대막리지가 김정일과 김정은이 차지하고 있는 국방위원장 자리쯤 됐다. 연개소문은 끝내 몰락했다.

북한이 아직도 핵실험을 하겠다고 서방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원자로가 위치한 영변의 약산 철옹성에는 여전히 봄이면 진달래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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