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본문⑧…환오십(環五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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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본문⑧…환오십(環五十)
  • 주우(宙宇)
  • 승인 2018.01.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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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오십(環五十)

環(환)은 고리를 형성한다는 건데 갑골문으로 보면 동그라미 두 개가 겹쳐있는 모양(다음 쪽 그림 참고)입니다. 두 개의 원이 겹쳐서 서로 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모양으로 볼 때 고리를 형성하는 것은 한 개가 아니고 두 개입니다.

일단 왜 環五七(환오칠)이 아니라 環五十(환오십)이 되는지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접하고 있는 천부경이라는 텍스트 근원에는 고대의 글자를 한자로 번역한 신라 때의 최치원 그리고 이 글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계연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처럼 이 텍스트를 처음 접한 계연수라는 분도 천부경에 숫자가 많으니까 수리(數理)로 비밀을 풀어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을 겁니다. 그런데 環五七(환오칠)로 해서 31개인 숫자를 다 합쳐 보면 99가 됩니다. 그러면 9×9=81이 되어 수리로 설명하기에 엄청나게 괜찮은 듯이 보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천부경에서 수리로 되어있는 부분은 둘째 문단뿐이고, 나머지는 수리가 중심이 아니므로 수리로 풀면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고대 글자에서 ‘七(칠)’과 ‘十(십)’은 모양이 비슷합니다. 갑골문에서 ‘七’이 지금의 ‘十’자와 비슷하고, 十은 오히려 아라비아 숫자 1과 비슷합니다. 이 때문에 계연수님이 혼선을 일으켜 環五七(환오칠)로 했으리라 여깁니다.

그리고 環五十이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運三極 四成 環五十’이 대원리를 제시한 첫째 문단의 一積十鉅를 설명해주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즉 외부의 근거가 아니더라도 천부경 자체가 環五七(환오칠)이 아니라 環五十(환오십)임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運三極 四成 環五十’이 바로 완전한 十의 경지로 닦아간다는 ‘一積十鉅’의 설명입니다. 즉 각자의 존재됨됨이가 완전한 10(十)이라는 단련된 경지로(鉅)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가듯이 상승하며 닦여간다(積)는 것이 바로 一積十鉅(일적십거)입니다.

그래서 一積 다음에 十鉅가 있듯이 運三極 四成 다음에도 環五十이 되어야 합니다. 어쨌든 천부경의 구조가 명확하므로 環五七이 아니라 環五十입니다.

▲ 환오십

또 이것은 역학에서 하도(河圖)로 볼 때도 五(오)十(십)土(토)이지만, 김일부 선생님이 내놓은 정역(正易)을 보면 지천태(地天泰) 괘(䷊)라고 해서 위가 5곤(坤)이고 아래가 10건(乾)입니다. 남북에 있는 五坤(곤) 十乾(건)이 바로 두 개의 고리이며 소위 십오일언(十五一言)이라고 합니다.

 

五와 十이라는 고리를 형성한다는 말은 이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연결고리를 짓고서 상호작용한다’는 뜻입니다. ‘五’는 중심을 잡은 중수(中數)의 상태이고, 그림자 통합을 이룬 상태이며, 수기(修己)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十은 적중하는 중용(中庸)의 상태이고, 홍익(弘益)하는 상태이며, 치인(治人)의 상태입니다. 고리를 형성하는 것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이 왼발과 오른발처럼 상호작용하면서 완성해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기치인(修己治人) 내성외왕(內聖外王), 의통(醫統),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자리이타(自利利他)입니다.

 

☸ 오(五)

이제 四成(사성) 環五十(환오십)과 관련해서 ‘四’에서 ‘五’가 되는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四를 알아보고 완성(成)해가면 1+4, 2+3이라는 균형이 잡힌 상태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서울에 사대문(四大門)이 건설되고 나서 그 문을 때에 맞춰서 여닫으며 제어해야 하는데, 네 곳을 따로 제어하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필요 때문에 이 네 군데를 한꺼번에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취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괜찮은 방법이 뭐가 있겠습니까? 중앙에서 네 곳에 다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뭔가를 설치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보는 건 시야의 제약이 있으니까 종을 쳐서 들리게 하면 되겠다는 발상으로 만들어낸 게 보신각종입니다.

그래서 사방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동쪽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은 돈의문(敦義門) 남쪽은 숭례문(崇禮門) 북쪽은 숙정문(肅靖門)을 만들고 중앙에는 신(信)이라고 해서 보신각(普信閣)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오행(五行)의 중앙이 신(信)이니까 보신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방식이 가장 편리하므로 중앙에 보신각종을 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행 때문이 아니라 기능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현실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五’가 자리를 잡습니다.

요약해보면 四를 완성해갈 때, 즉 나 아닌 모습을 찾아 그림자 통합 작업을 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五’의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그림자 통합 과정을 겪어가면서 사람(四覽)이 되고, 결혼이 되며, 단군을 낳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되면 결혼은 그냥 되는 것입니다. 결혼이 되는 것이 五의 과정인데, 이것이 바로 보신각과 같은 역할로써 중심의 역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다음 오장(五臟)도 같습니다. 오장 중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게 비장(脾臟)이며 일명 지라라고 합니다. 우리 인체에는 영양분을 옮기는 혈관이 있고, 혈관 밑에는 림프관이 있습니다. 림프의 총 집합소, 림프의 공장이 비장입니다.

혈관이 상수도관이라면 림프관은 하수도관에 해당하므로 비장은 인체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비장은 면역기능을 유지해주고 세균이나 항원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므로 없어서는 안 됩니다. 간장·심장·폐장·신장처럼 뚜렷하게 구분되는 역할이 있지 않으나 비장은 이 네 장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보신각이나 비장처럼 네 부분을 조율할 목적으로 저절로 생기는 것이 ‘五’라는 것입니다.

 

☸ 십(十)

그다음에 ‘十’은 1+2+3+4의 결과인데, 이 의미는 사계절 춘하추동(春夏秋冬) 기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기운 중에 특정 몇 개만이 아니라 골고루 잘하고, 적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이제마 선생이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으로 체질을 구분했는데, 소양인이면 소양인에게 맞춰서 생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체질에 맞춰서 생활하지만, 건강할 때는 자신한테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4개의 체질을 골고루 갖추어 춘하추동 기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十’은 타인에게 덕(德)이 됨으로써 널리 더해주는 즉, 홍익하는 인간의 상징입니다.

정리해보면 자신의 그림자인 四를 알아보고서(覽) 사람(四覽)이 될 때, 2와3 4와1 즉 음양이 합해져서 五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람이 된 웅녀와 환웅이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五가 조율하는 중심의 역할을 하게 되면 그다음에 널리 더해주려고 하게 됩니다. 그때야 낙서(洛書)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도(河圖)의 十에 접근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단군을 낳아서 홍익하는 인간이 되고, 이화하는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리로 설명해보면 각자의 존재됨됨이에 따라 天1地2人3이 펼쳐진 다음 ‘4’를 완성해가고(成), 그러면서 ‘5’와 ‘10’의 고리를 형성하는데, 여기서 5에서 곧바로 10으로 상승하지 않고 二로 성장해갈 수도 있습니다. ‘성장한 二’로 가는 이유는, 일정 극기훈련과정을 밟은 사람이 곧바로 퇴소하지 않고 반복해서 그 과정을 체득해야 하거나 아니면 체득하려고 하듯이, 10으로 상승해서 졸업하기보다 더 많은 체험을 체득해야 하거나 체득하고 싶거나 아마 더 중대한 역할을 맡으려고 자신을 더욱더 단련해서 대기만성(大器晩成)하기 위함 때문일 겁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제시된 외부현상을 교훈으로 삼아서(運三極을 실천해서) 자신이 변화하여 이전의 자신보다 확실히 성장했음에도 비슷한 상황이 삶에서 반복되는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교사를 마스터한 후에 (대부분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업종(業種)이 아니라 비슷하나 단계가 조금 높은 업(業)인 중학교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경우입니다. 또 말과 행동이, 사실과 말이 다른 거짓말쟁이에 대해 상당히 겪어내서 틀림없이 이들에게서 졸업했다 싶은데도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이전보다 더 단수가 높은 사기꾼들을 주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졸업시험처럼 인생의 숙원(宿願)을 풀어내서 삶의 핵심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연말시험처럼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 숙제(宿題)를 풀어가는 과정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숙원(宿願)을 풀어낼 때에는, 즉 ‘단군을 낳는다’로 비유되는 ‘10’의 과정에 돌입하는 경우에는 공통으로 ‘죽음’이라는 체험을 동반합니다. 물론 죽음을 각오한 시험을 거쳐서 대체로 ‘정신적 자살’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재탄생, 즉 부활하게 됩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본다면,

 

만일 5에서 10으로 상승해 졸업한다면, 즉 하나의 인생공부 과제를 마스터해낸다면, 자기가 계획해서 계약한 하나의 과정을 완성해낸 셈입니다. 이렇게 10의 상태가 되면 이 상태는 一에서 상승해서 승화해버린 10입니다. 완성된 十(십)(10)이 바로 ‘상승한 二’가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一終無終(일종무종), 즉 끝이 없다고 했습니다. 끝에 이르면 그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데, 처음 의식해서 시작한 一에서 ‘상승한 二’의 존재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상승한 二(10)이라는 존재상태에서도 三極이 펼쳐지는데, 이번에는 이전의 1·2·3과는 다른 차원인 11·12·13으로 펼쳐집니다. 이를 1·2·3으로 天1極·地2極·人3極이라고 간략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인 人3極에서 또다시 다른 삶의 숙제가 펼쳐지게 됩니다. 또 한 단계 상승하게 하려고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주변 사람 중에 나를 못살게 구는, 마음에 들지 않는 타자가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 그림자를 통해서 자각해서 그림자 통합작업을 해가면 ‘14’인 四가 되는 것입니다.

四를 완성해가는 과정에 ‘15’인 五와 ‘20’인 十이라는 고리를 형성해서 ‘상승한 三’이 됩니다.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상승하는 것을 진화해간다고 합니다. 이것이 一積十鉅(일적십거)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해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이 열리고, 때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게 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우주가 완벽히(?) 챙겨주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한테 다 맞춤식으로 제대로 작동되고 있으므로 각자가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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