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의 통신보국④…YS진영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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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의 통신보국④…YS진영의 반격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1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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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특혜시비에 사업자 연기 촉구…정부는 예정대로 진행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일주일쯤 앞둔 1992년 8월 중순의 어느날. 삼청동 안가에서는 최종선정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마지막 의견조정을 위한 당정 대책회의가 열렸다. 청와대와 정부측에서는 정해창(丁海昌)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진설(李鎭卨) 경제수석, 이상연(李相淵) 안기부장, 송언종(宋彦鍾) 체신부장관이, 민자당에서는 황인성(黃寅性) 정책위의장, 최창윤(崔昌潤) 대표비서실장, 박관용(朴寬用)의원이, 각각 참석했다.

민자당 쪽에선 정부측 입장을 이해하지만 당의 입장도 고려해야지 않느냐는 것이었고, 청와대쪽에서는 문제제기가 너무 늦어 어쩔 수없다는 쪽이었다. 이들은 밤늦도록 함께 고민을 했지만 이렇다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선경이 선정돼도 어쩔 수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이날 회의에는 김영삼 대표의 핵심측근들도 참석했던 만큼 청와대측은 김후보의 뜻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 이를 계속 밀고 나갔다.

이 무렵 6공화국 내내 대통령에게 막강한 영항력을 행사했던 동서 금진호씨와 5공화국 시절부터 통치권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이원조(李源祚)씨가 개입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대통령을 찾아가 불편한 심기를 삭이려고 했다. (이들의 중재노력으로 선경의 이동통신반납이 성사됐다는 설이 있다)

최종발표에 임박해서도 당정 간의 의견일치를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양측의 감정의 골은 패일대로 패였다. 발표와 동시에 당정갈등은 표면화할 수 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이동통신을 둘러싸고 노 대통령과 김 대표와의 견해차는 7월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업계와 증시에는 온갖 소문이 떠돌고 야당이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할 움직임을 보였다.

7월23일 김 대표는 청와대에서 있은 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사업자 선정 연기를 건의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동통신 문제가 적법성, 합리성과 관계없이 대통령 사돈에 대한 특혜시비로 비화되고 있는 만큼 사업자 결정을 대통령 선거 후로 넘겨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동통신으로 인한 잡음이 선거에서 여권에 불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고 한다. 이에 노 대통령은 “이 사업에는 한 점의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김 대표의 말에는 수긍, 송언종 장관을 불러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송 장관은 대통령의 질문에 “이미 공고를 마치고 심사에 들어가 있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선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며, 선경이란 일개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이 함께 얽혀 있어 절차상 중단할 방법이 없습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심사는 계속됐다.

7월29일 체신부는 1차심사결과를 발표했다. 주주선정의 적정성에 20%, 재무상태와 자금조달능력에 30%, 영업계획과 기술계획서에 각각 25%의 점수를 부여한 심사결과,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이 1만점 총점에 8,127점으로 1위,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이 7,783점으로 2위,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이 7,711점으로 3위를 각각 차지, 3개의 컨소시엄이 1차 관문을 통과했다.

8월초 민주당을 비롯, 야당들이 이통건을 놓고 여당을 한꺼번에 비난하고 나서자 김 대표의 측근들은 김 대표가 노 대통령에게 사업자 결정(발표)의 연기를 건의했다고 흘리면서, 김 대표와 정부의 결정은 별개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자 1차 심사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한 선경과 코오롱은 연기반대의 입장을 밝혔고, 3위를 한 포철은 “발표만 연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연기한다면 심사를 연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측의 이러한 움직임이 청와대와 민자당의 갈등, 불화의 시각으로 비춰졌다. 김 대표의 선거준비팀이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1차로 이동통신 문제를 선정했으며, 그에 따른 여론화 작업이라는 설도 이 무렵 유포됐다.

최종심사를 앞두고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흐르자, 8월6일 이진설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동안 여섯차례의 공식당정회의 거쳤으며, 이 사업은 어느 기업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이고 공정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어 의혹이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청남대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노 대통령은 8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동통신에 관해 보고를 받고 이동통신 연기론은 일축했다.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은 임기 초부터 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고, 이동통신도 외국에 비해 10년이나 뒤져 있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서는 안 되지만, 국민에게 공약한 사업과 국가에 필요한 사업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13일 김 대표측이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가운데 노 대통령과 김 대표와의 첫주례회동이 열렸다. 회동이 끝난 후 김중권(金重權) 정무수석은 “이동통신문제는 일체 거론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날저녁 김 대표는 상도동 자택에서 “이동통신이든 움직이지 않는 통신이든 나한테 묻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 대표 측근들은 “金대표가 사업자선정 연기를 대통령에게 촉구했으며, 이제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김 대표로서는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추가로 설명했다. 이날 노대통령은 국책사업을 정치적 이유로 연기할 경우 정부의 공신력이 실추된다는 등 사업추진의 불가피성을 일일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날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출입기자들에게 사업연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역설했다. “임신하기 전에 아기를 갖는 것은 연기할 수 있습니다. 또 임신초기라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낙태를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달이 다 되어 곧 아기를 낳으려는 산모에게 낙태나 출산연기를 명령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8월18일 정부측이 예정대로 사업자를 확정 발표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김 대표측에서는 선거에서의 감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따라서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강경입장이 절대 우세했다. 사업자가 예상대로 선경으로 발표될 경우 선경을 제외한 참여업체로부터의 반발은 불을 보듯 명확했다.

이어 20일 상오 송 체신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제2이동통신의 주사업자로 선경이 선정됐습니다”라며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제14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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