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40주년] ①창업부터 조흥은행 합병·신한사태까지…신한이 걸어온 길
상태바
[신한은행 40주년] ①창업부터 조흥은행 합병·신한사태까지…신한이 걸어온 길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07.04 1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2년 7월 7일 최초 민간 시중은행으로 창업
2006년 4월 1일 조흥은행과 합병 후 '통합 신한은행' 출범
2010년 '신한사태' 겪으면서 위기 맞이해…조용병 체제 후 봉합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신한은행 본점 사옥 전경. 사진제공=신한은행
신한은행이 창업 40주년을 맞이했다. 국내 최초 시중은행인 신한은행은 금융을 통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금융보국(金融報國)'을 이념으로 삼고 현재까지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당초 신한은행은 조흥은행과의 합병일인 4월 1일을 기념했으나 근래에는 1982년 당시 설립일인 7월 7일을 기념하는 분위기다. 신한은행 40주년을 맞이해 그간의 전통과 역사를 돌아본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신한은행의 '신한'은 새로울 신(新)에 나라 한(韓)이다. 이는 곧 대한민국 금융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은행이라는 뜻이다. 1981년 고(故) 이희건 회장이 재일동포의 교민은행 설립에 관한 대정부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신한은행의 역사가 막을 올렸다. 

80~90년대 '국내 최초' 서비스 시행하며 지속적 성장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오는 7일 창업 4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82년 국내 최초 순수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시중은행인 신한은행은 당시로는 새로웠던 시스템인 텔레뱅킹과 무인점포 등의 영업시스템을 도입해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나갔다. 

신한은행의 창립 첫해 총수신은 1080억원, 납입자본금은 25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 신한은행은 지난 6월말 기준 총수신 355조473억원, 지난해 말 기준 고객수 2667만명에 이르는 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점포수 역시 창립 첫해 8개에서 현재는 739개로 늘었다. 

신한은행의 80년대는 창업과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시기였다. 1985년 동화증권을 인수하는가 하면 1986년에는 총수신이 1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1988년 11월에는 본점이 현 본점위치(서울 중구 세종대로 9길 20 대경빌딩)로 신축 이전했다. 기업 공개와 주식 상장을 해낸 것은 1989년 11월이다. 

90년대에도 신한은행은 여러 분야에서 '국내 최초' 타이틀을 달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PC뱅킹 서비스를 시행하며, 1993년에는 국내 최초 무인점포인 '365일 바로바로코너'를 개설한다. 이어 1994년에는 국내 최초 텔레뱅킹 서비스를 시행한다. 

이어 2001년에는 국내 최초 민간 금융지주회사인 신한금융지주회사가 출범했다. 2002년에는 은행에서 카드사업부문을 분할해 신한카드가 설립됐다. 

조흥은행과의 통합…109년 전통의 역사 품기까지

신한은행이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성공시킨 이후부터다. 신한은행은 2003년 조흥은행을 지주사로 편입하고 2006년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신한·조흥은행 합병 인가를 받았다. 이어 같은 해 통합 신한은행으로 출범했다. 

당시 창립 24주년이었던 신한은행이 109년의 역사를 가진 조흥은행을 합병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조흥은행은 일제강점기 민족계 은행 9개사를 통합해 설립돼 1956년 3월 국내 증시가 출발할 때도 상장번호 1번을 단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2003년 6월 공적자금위원회는 정부가 보유한 조흥은행 지분 80.04%를 3조3700억원에 신한금융지주회사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이후 조흥은행은 신한금융지주 자회사가 되면서 2004년 7월 국내 증시에서 상장 폐지됐다. 

당시 조흥은행 노동조합이 매각 소식을 듣고 파업을 결정하기도 했지만, 당국이 중재에 나서면서 합의가 수월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노사정 합의 이후에 신한은행은 '감성 통합'에 주력했다. 2003년 7월 본계약 체결 후 양사는 경영진을 선임하고 2005년 9월까지 공동 경영기간에 돌입해 '투뱅크-원체제'를 확립했다. 이 시기 양사는 월급 수준과 임원 비율을 맞추는 등 화학적 결합에 집중했다.

조흥은행과의 통합 이후 신한은행은 자산 164조원, 지점수 946개, 직원 1만1000명의 국내 2위 은행 지위로 올라섰다. 

신한사태-남산 3억원 사건 거치며 위기 극복

위기도 있었다. 2010년 9월 신한은행은 '신한사태'를 겪게 된다.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 회장과 이백순 당시 신한은행장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 사장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 발단이었다.
 
신 전 사장은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의 경영 자문료 명목으로 회삿돈 약 15억6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법정 공방이 이어진 끝에 2017년 3월 대법원은 신 전 사장이 받아온 혐의에 대해 대부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남산 3억원 사건'도 신한은행의 지배구조를 흔드는 역할을 했다. 해당 사건은 2008년 2월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 전 은행장이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3억원을 누군가에게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사건이다. 

당시 이 돈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 측에 전달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관련 재판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기소된 신 전 사장과 이 전 은행장은 최종적으로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일련의 사건들은 2017년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신한금융은 지배구조 안정화를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