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첫 버디의 함성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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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첫 버디의 함성에서 배운 것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8.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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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골프이야기①…골프나 인생이나 물 흐르듯 흘러가야

 

[조병수 프리랜서] 우리나라사람들은 정말 골프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나온 남녀선수들이 세계의 거장들과 어깨를 겨루며 각종 골프대회를 휩쓸고 다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요즈음의 1/10도 안되던 시절인 1980년대에 영국에 나와있던 주재원들도 모여 앉으면 골프이야기였다. 모두가 무슨 할 말이 없으면 골프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당시 웬만한 샐러리맨 형편으로는 서울 돌아가서는 골프를 치지도 못할 텐데 왜들 모두 그리 극성들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서울에서 골프 배우려면 작은 아파트 한 채 값 정도 들어가니, 여기 있을 때 부지런히 배우라”는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열심을 내는 이도 있었다.

내 개인적으로 한참 동안 골프라는 운동을 썩 내켜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그때 느꼈던 '지나치다'라는 관념이 많이 작용되었던 것 같다. 물론 요즈음에 와서 보니, 세상의 흐름과 미래의 변화를 읽는 식견이 부족했었던 것이지만···.

 

런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변에서 “골프를 배워야 하니까 골프채를 하나 마련하라”고 했다. 어쨌거나 운동은 해야 되겠기에, 때마침 쓰던 채를 바꾸려던 선배의 채를 인수했다.

그리고 그립 잡는 법만 잠깐 듣고는, 집에서 가까운 샌다운 경마장(Sandown Park)의 광활한 연습장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채를 휘두르기만 했다. 말단 책임자로서 직장일 감당도 버거운 터라 따로 시간 내서 배우고 어쩌고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에, 그저 실내야구장 공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는 수준이었다.

 

▲ Royal Automobile Club-Old Course-Surrey, England /사진출처= RAC웹사이트

 

그러던 어느 날, 책임자들 끼리 체육대회 삼아 골프경기를 한다는 소식이 돌았다. “나는 준비가 안되어서 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무조건 참석”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공을 굴려본 적이 없고 골프규칙도 모르는 나의 “머리를 얹어준다”면서, 제일 마지막 조에 배정해서 생애 첫 라운딩을 하게 만들었다.

 

골프장에 도착해서야 부랴부랴 골프화와 모자를 사고 첫 홀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데 코스관리자(starter)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뜩 힘을 주어서 휘두르니 공이 맞을 턱이 없었다. 가만히 서 있는 공도 못 맞추고 허둥대다가 두어 번 만에 겨우 맞추긴 했지만, 그나마도 바로 코앞에 떨어졌다. 그 공을 자치기 하듯 굴려서 간신히 첫 홀을 마치고 돌아서니,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한 홀을 더 돌아서니 파 3짜리 홀이 나왔다. 거기서 왠지 편안해진 기분으로 친 공이 그린 위, 그것도 홀 가까이에 뚝 떨어졌다.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공을 굴렸더니, “땡그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기준타수 (par)보다 하나 적게 홀에 넣는 것을 버디(birdie)라고 부르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말은 1903년 미국 Atlantic City Country Club에서 Abner Smith라는 사람이 홀컵 6인치옆에 붙는 멋진 샷을 하고는 "That's a bird of a shot.” 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세기말경 미국에서는 무언가 특별히 잘했을 때, 요즈음 흔히 듣게 되는 "쿨 (cool)"정도의 의미로 "bird"라는 속어(俗語)를 사용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 뒤로는 여전히 엉망진창이었지만, 골프채 잡는 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처음 나간 골프장에서 버디를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3번째 홀에서···.

그 바람에 흥분해서 그 순간의 산뜻한 감동을 떠들썩하게 얘기하며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맨 앞 조로 나간 상급자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같은 조의 동료들이 그분들에게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이 버디를 했다”고 큰소리로 알렸다.

그렇게 라운딩을 끝내고 식당에 모여 앉은 자리에서, 지점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당혹스럽고 미안하던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골프는 물 흐르듯이 조용히 흘러가야 한다. 골프장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고 요란을 떠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날 그렇게 입문(入門)하는 것으로, 골프의 천국이라는 영국에서 골프장과의 인연은 끝이었다. 더 이상 골프에 신경 쓰고 배울 여력도 없어서 아예 접어버렸다.

그리고는 그 후로 한참의 세월이 지나 미국 땅에서 골프라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대륙에서의 편한 대중골프문화에 젖어들었던 모양이었다. 지난해 피지(Fiji) 여행 때 ‘자투리 시간에 한동안 손 놓았던 골프나 한번 해보겠다’며 반바지에 라운드 티를 입은 채로 휴양지 골프장을 찾았다가, "깃이 있는 (collared) 셔츠 아니면 플레이 할 수 없다"는 제지를 받고서야 ‘아차’ 싶었다.

전통을 중시한다는 영국에서부터 듣고 배우기 시작한 골프장 에티켓과 골프를 매너 스포츠라고 한다는 사실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그저 '쉬운 대로, 기분대로, 편한 대로' 사는 방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우리의 태극낭자가 브리티시 여자오픈 골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활짝 웃는 모습이 TV화면에 오르내리는 상큼한 아침이다. 주말골퍼가 실력보다 의욕만 앞서서, 왁자지껄하게 푸른 초장(草場)을 헤매던 지난 날의 내 모습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물 흐르듯이 조용히 흘러가야 한다”던 그 첫날의 가르침도 저만치 추억의 장(欌)에서 꺼내어 본다.

세상사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하는 이치(理致)는 같은가 보다.

 

▲ 영국 버밍엄 인근 Forest of Arden Country Club의 안내문 /시잔=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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