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일본이라는 나라②…절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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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일본이라는 나라②…절제미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7.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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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관광지, 번화가에도 절제와 고요함 유지··· 배려의 정신 돋보여

 

[조병수 프리랜서] 교토(京都)의 관광지는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아라시야마(嵐山) 토게츠교(渡月橋) 위쪽으로 치쿠린(竹林)에 이르는 길가나 상점들은, 수학여행을 온 듯한 일본학생들과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길가에 늘어선 상점마다 음악을 틀어놓거나 호객(呼客)행위 같은 걸로 시끄럽게 하지는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 텐류지(天龍寺) 앞쪽의 한 찻집에서 맛본 녹차팥빙수는 압권(壓卷)이었다. 너무 달지도 흐트러지지도 않은 뒷맛에, 상냥한 여직원이 가져다 준 따뜻한 녹차까지 곁들이니 그만 잊지 못할 맛이 되어버렸다. 정결(淨潔)한 분위기와 이 맛 때문에라도 이곳에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는 치쿠린 대나무 숲길을 걸어보았다. 우리나라 담양의 대나무 숲에는 가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곳은 두 번째가 된다. ‘기왕이면 숲길이 좀더 길거나, 숲이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가면서 높다란 대나무들 사잇길을 걷다 보니, 귀에 익숙한 우리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던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어떤 한국여자분이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혼자서 다니다 보니 우리말만 들리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적극적인 분이었다.
그런 정도의 대화 이외에는, 여러 사람들이 좁은 길을 오가는데도 불편하다거나 소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많은 외국인관광객들도 조용조용한 이 나라의 분위기에 어우러진 모양이었다.
교토 시내 쪽으로 유명관광지인 기온(祇園)거리, 기요미즈데라(淸水寺)주변이나 다이마루(大丸)백화점, 니시키 시장(錦市場)부근도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기모노 차려 입고 오가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다는 것 빼놓고는···.

 

▲ 교토 아랴시야마 치쿠린, 대나무 숲길 /사진=조병수


기온(祇園)거리도 돌아볼 겸, 점심식사 때는 야사카(八坂) 신사 앞쪽에 고등어 스시를 잘한다는 식당을 찾았다. 수년 전에 그곳을 들렀을 때는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날이 더워서 그런지 수월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사실 고등어스시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지라 모듬초밥과 유부·김초밥을 시켜보았는데, 일부러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다음날은 오사카로 가면서, 사슴들이 많이 있다는 나라(奈良)공원과 도다이지 (東大寺)부근을 둘러보았다. 푸른 초원을 여유롭게 거니는 사슴무리를 상상하고 갔더니,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사슴들이 많은 관광객들과 뒤섞여서 ‘사람 반(半), 사슴 반’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길에 널린 사슴의 배설물과 먹이를 든 관광객들의 손을 살피며 파고드는 사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도다이지 쪽으로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흰색 상의에 까만 바지, 무릎을 덮는 교복치마를 단정하게 입은 남녀학생들이 질서 있게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들의 흐트러지지 않은 풋풋한 모습들이, 잠시나마 반세기전 학생 때의 기분을 되살리게 해주었다.   

 

▲ 나라 동대사 입구 사슴무리들

 
그곳을 떠나서 오사카 도톤보리(道頓堀) 부근으로 갔다. 저녁 무렵 인파(人波)로 흘러 넘치는 그곳 상가도로는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구경을 하는 곳’ 같았다. 그런데, 상가거리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목에서, 지나는 자동차가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행신호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길을 건너지 않고 기다리고 서있는 광경은 정말 볼만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붐비는데도, 휘황찬란한 난바(難波)역 인근의 지하 게임실 같은 곳을 지날 때 외에는 크게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가건물 2층의 약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창 밖으로 피켓을 내밀고 좌우로 흔들며 광고를 하고 있을지언정, 큰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그런 소음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덩달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오사카 에비스바시 부근 상가 2층 창문으로 피켓을 흔드는 모습 /사진=조병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에비스바시(戎橋) 부근에서는, 가까이 갈 때까지도 거리공연 같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모를 정도였다. 다리아래 도톤보리 강 한 켠의 작은 무대에서 젊은 여인들이 가면을 쓰고 군무(群舞)와 노래를 하고 있고, 거기에 맞춰서 형광봉을 흔드는 강 건너편 젊은이들의 함성에서조차 군인들의 절도(節度)있는 응원 같은 절제(節制)를 느낄수 있었다.

밤거리에 쏟아진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유분방한 감정표출 등으로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은 보지를 못했다. 비록 며칠간이었지만, 어느 찻집, 어느 식당, 어느 상가에서도 소음같은 음악을 들어본 기억이 없고, 옆자리에서 들릴만큼의 큰목소리 대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이들 모이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렇게 절제되고 배려하고 고요함이 유지될 수 있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무언가 좀더 일본이라는 나라를 살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밤낮없이 음악과 소음들을 안팎으로 쏟아내고 있는 우리네 찻집이나 식당, 상점이나 쇼핑몰, 거리상가(street mall),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는 이런 풍경들을 보고 과연 무슨 말을 할는지도 궁금해 진다.

 

▲ 오사카 에비스바시 다리아래 공연 모습 /사진=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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