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일본이라는 나라①…靜中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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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일본이라는 나라①…靜中動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7.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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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 속에서 돋보이는 조용함과 공손함…약간은 어둡고 기계적인 분위기도

 

[조병수 프리랜서] 오사카 남항(南港)부근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나오는데, 뒤따라 나오던 딸아이가 갑자기 혼자서 웃음보를 터뜨린다. 주인에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한다는 것이 "아리가또 구다사이"라고 말하고는 ‘아차’ 싶었던 모양이다. 며칠 체류하는 사이 귀동냥으로 배운 “고맙다(ありがとう)”는 인사말의 끝자락이, 엉겁결에 “주세요(ください )”와 뒤엉킨 것이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아침나절에 내비게이터에다가 행선지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찾아갔더니, 전혀 엉뚱한 곳이었다. 근처 길가에 주차장이 있는 카페가 보이길래, 현 위치도 확인할 겸 잠깐 들렀던 터였다. 별로 넓지는 않은 그 카페에는 어느 듯 이른 점심때가 되었는지,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들이 꾸부정하게 앉아서 식사들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머잖아 저런 모습들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또는 부부가 함께, 말없이 먹고 마시며 조용히 움직이는 그 모습들이 우리네 삶 속의 흐트러진 분위기와 대비되면서,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될 것 같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회전체가 고요한 것 같았다. 그날 아침 지하철역과 붙어 있는 호텔주변 상가건물로 나가보았더니, 검정색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 까만 가방을 둘러맨 남자들과 수수한 차림의 젊은 여인들이 소리 소문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조용히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20세기 미국시인 엘리엇(T.S. Eliot)이 『황무지』란 시에서 “겨울 아침 안개 속에, 런던브리지 위에서 종종걸음 치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령들의 형상 같다고 표현했다”던 그런 음울한, 약간은 어둡고 기계적인 분위기가 겹쳐 올랐다.

늦은 저녁 무렵, 편의점 창가에 홀로 앉아 조용히 식사하던 남자의 모습에서도 ‘몹시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쇼핑몰 식당가나 그 아침 카페에서 말없이 식사하던 노인들, 일요일 아침 일찍 해안가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과 출근길 젊은이들의 무표정함들도 비슷한 느낌을 던져주었다.

분명 내재(內在) 하고 있을 감정들을 안으로 녹이며 살고 있는듯한 그들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곳곳에서 던져지는 갖가지 소음과 거침없는 목소리, 배포 큰 동작과 화려한 차림으로 시끌벅적한 우리 동네와는 판이하게 다른 그네들 삶의 방정식에 관심이 끌리기 시작한다.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두 손으로 감싸듯이 공손히 건네는 점원들, 늘어선 차들 뒤에 점잖게 줄지어 서서 이륜차(二輪車)로서의 당당함을 지키는 오토바이 탄 사람들까지, 몇 번 가보지는 않은 나라이지만 참으로 돋보이는 모습들이었다.

 

▲ 오사카 만의 석양 /사진=조병수

 

일본을 가본 적이 없는 둘째 딸이 느닷없이 “오사카 가는 싼 비행기표 끊어 놓았다”며 며칠간 다녀오자고 나섰다. 수년 전에 한차례 다녀왔던 지역이지만, 왕복비행기와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폭염주의보가 내린 6월 중순에 일본의 칸사이(關西)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나흘 동안, 호텔을 포함해서 모든 순간을 몸짓과 표정으로 버티어 나갔다. 그 흔한 통역 앱도 제대로 챙겨보지 않고 갔던 탓도 있지만, 어디서든 웬만해서는 영어로는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날 숙소는 고베 서쪽 아카시카이쿄(明石海峡)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어찌 모두들 그렇게 부지런한지, 아침 7시부터 식사가 시작된다는 호텔 부페식당에는 정각부터 일본인 투숙객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네모난 까만 색 쟁반 위에 접시들을 올려놓고 줄지어 서서 음식을 담아 오가는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늘 접시 하나 들고 다니며 음식을 담아먹던 사람에게는 조금 낯선 장면이었다.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그렇게 조용조용히 움직이고 소리 없이 식사하는 모습들까지도···

 

그리고는 고베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히메지성(姬路城)을 찾아갔다. 백색의 회벽으로 되어있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는 그 하얀 성(城)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는 제법 그럴 싸 했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날에, 대천수(大天守) 내부를 구경해보겠다고 지하1층, 지상 6층 높이의 계단을 줄지어 올라갔더니 조금은 허탈했다. 마루바닥 외에는 별로 이렇다 할 것도 없이 휑하니 비어있는 그 목조구조물이 세계문화유산이라곤 하지만, 나에게는 ‘한번 와보았다’는 사실 외에는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제법 눈에 띄는 서양사람들도 신발을 벗어 들고 열심히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면서, ‘문제는 홍보(弘報)야’라는 문구(文句)가 떠올랐다.

 

▲ 일본의 대표적 근세성곽, 효고 현 히메지성 /사진=조병수

 

교토로 옮겨가던 중에는, 유명하다는 온천동네 구경이나 해보려고 아리마온센(有馬溫泉)지역에 들렀다. 상점들이 문을 닫을 시간에야 도착하는 바람에 별로 기웃거릴 데는 없었지만, 잘못하다가는 저녁시간도 놓칠 것 같아서 무슨 철판구이집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이었는데, 나이가 지긋한 주인이 가져다 주는 일본어 메뉴로는 도통 무슨 요리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옆자리에서 먹고 있는 요리를 곁눈질해가며 대충 찍어서 주문을 했다.

그런데 우리 테이블 철판 위에 놓여진 야채와 해물이 버무려진 요리를 데워가면서 먹다 보니까, 소고기 썰어놓고 양념통이나 식칼로 묘기를 부리던 것쯤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기름기도 느껴지지 않고 담백한데다 뒷맛이 깔끔했다.

 

옆자리를 정리하러 나온 주인 딸에게 메뉴의 음료수 부분을 물어보다가, “아리마 사이다”라는 것을 맛보게 되었다. 크게 달지도 강하지도 않고, 은은한 맛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무슨 메뉴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여행 첫날치고는 제법 괜찮았던 선택 같아서 혼자 흐뭇해했다. 그리고 비록 조그만 공간이지만 역할을 분담하면서 성심껏 손님들을 대하는 그 식당가족들의 공손함과, 오밀조밀 모여 앉은 손님들 모두가 조용조용히 움직이고 말없이 식사하던 그 고요한 풍경이, 또 한 장의 사진으로 내 마음에 남겨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 온천지역 지도를 다시 검색하다가 보니까, 그 식당이 “오코노미야키(おこのみやき) 전문점”이라고 표시되어있었다. 오사카지역의 유명한 음식이라는 그 “밀가루 반죽에 재료를 넣고 구운 음식”을 이번 나들이에서 맛보지 못하고 온 걸로 생각했었는데, 그날 그 식당에서 맛본 요리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괜히 자꾸 핑계대고 밀쳐만 낼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일본어를 제대로 좀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무엇 무엇을 한다는데, "아리가또”에다가 “구다사이"를 갖다 붙이는 수준은 벗어나야지 이웃나라 갈 때 밥이라도 제대로 찾아먹을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문화도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 히메지 성 부근 수제 햄버거집 Bakery Lamp내부 /사진=조병수
▲ 아리마온천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잇큐( 一休) 내부 /사진=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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