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는 호랑이는 쏘는 벌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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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는 호랑이는 쏘는 벌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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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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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배남효] 망설이는 호랑이는 쏘는 벌보다 못하다

-猛虎之猶豫(맹호지유예), 不若蜂蠆之致螫(불약봉채지치석)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다 보면 책사와 식객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많이 나온다.

사기열전의 역사적인 주요 무대가 춘추전국시대와 초한(礎漢)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난세에는 자신의 실력으로 출세할 기회가 많아서 이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책사가 출세하여 고위직에 오르면 또 다른 책사나 식객이 찾아와 자리를 얻어가기도 하고 아예 그 자리를 넘겨받기도 하는 일화도 가끔 나오고 있다.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 통일의 최고 공신인 한신도 무명의 책사였다가 유방의 핵심 측근 소하의 천거로 전격적으로 발탁되어 최고 사령관의 지위에 올라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그 힘과 명성이 천하를 뒤덮을 정도로 커졌다.

한신이 항우와 유방과 함께 천하를 삼분할 정도로 위세가 커지자 한신에게 잘 보여 신임을 얻고 큰 일을 해보려는 책사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괴통(蒯通)이다.

 

사기열전 32편인 회음후(한신이 제후로 봉해진 이름)열전에서 괴통이 한신을 만나 유세하는 내용이 상당히 길게 나오는데 정세를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 언변이 대단히 예리하고 뛰어나 읽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던져주고 있다.

괴통이 어디서 어떻게 공부해서 그런 실력을 쌓았는지 또 실제로 실력 발휘를 한 적이 있었는지 등 그 내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바로 등장하여 한신을 유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괴통은 사람의 운세를 볼 줄 안다는 구실로 한신에게 접근하여 귀천은 골격에 보이고, 근심과 기쁨은 안색에 드러나며, 성패는 결단에 있다고 설득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신이 확보한 정치적 군사적 지위가 막강하기 때문에 한신이 독립해서 유방과 항우와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여 그 하나를 차지하고 제위에 오르면 향후 천하를 제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득한다.

 

괴통은 한신에게 '천여불취 반수기구 시지불행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이라 즉 하늘이 준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 되며, 때가 이르렀는데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입는다'라고 비유하면서 간언을 한다.

또 괴통은 한신의 처지를 비유하여 용맹과 지략이 군주를 진동하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이 천하를 덮는 자는 을 받지 못한다는 옛말을 들어 설득한다.

그리고 토사구팽당할 위험이 크다면서 월나라 문종이 구천을 도와 패자로 만들었지만 결국 재주와 공이 너무 커지자 군주의 견제를 받고 처형당했던 고사를 들어 설득했지만 한신이 생각해보겠다며 며칠을 머뭇거린다.

 

이에 괴통은 한신을 다시 찾아가 망설이는 호랑이는 쏘는 벌보다 못하고, 천리마가 갈까 말까 망설이면 노마가 느리게 가는 것만도 못하고 맹분과 같은 천하 장사도 우물쭈물하면 필부가 진력하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설득한다.

또 순우(舜禹)와 같은 지혜로운 자도 입안에서 웅얼거리기만 한다면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지휘하는 것만 못한데 이는 실행하는 것을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득한다.

공은 이루기는 어려우나 실패하기는 쉽고, 때는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고, 좋은 때를 만나는 것은 두 번 오지 않는다고도 거듭 설득한다.

 

그러나 한신은 망설이다 유방이 자기를 잘 대우해줄 것이라 믿고 차마 배신하지 못 하고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괴통은 한신에게 자신의 말이 먹혀들지 않자 다가올 앞날이 두려워 미친 척 행세하면서 무당으로 변신하여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였다.

그후 한신은 결국 모반의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면서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다.

유방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괴통을 괘심하게 여겨 잡아들여 심문을 하게 되었다.

 

유방이 괴통에게 한신의 배반을 부추겼느냐고 추궁하자 괴통은 한신이 못나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고 항변했다.

유방이 화가 나서 괴통을 삶아죽여라고 명하자 괴통은 도척의 개가 요임금에게 짓는 것은 요가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디 개는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짖는 것이라면서 그 당시에는 자신이 다만 한신을 알았을 뿐이고 황제는 알지 못 하였기 때문이라고 변병을 하였다.

또 괴통은 천하를 차치하려 많은 사람들이 달라들었지만 황제보다 힘이 못 미쳐 할 수가 없었는데 그들을 다 삶아죽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면서 유방에게 필사적으로 구명(救命)을 간언하였다.

결국 유방은 괴통의 변병을 그럴듯하게 여겨 풀어주라고 명하여 괴통은 위기를 면하고 목숨을 구하게 된다.

 

회음후열전에는 괴통이 한신에게 유세하는 내용이 길게 상세하게 잘 나와 있는데 역사적인 사례와 교훈을 풍부하게 들어가며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일 만큼 언변이 좋게 기술되어 있다.

괴통의 말과 행적이 어떻게 전승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괴통이 한신에게 유세하는 그 긴 문장들을 사마천이 그대로 옮겨 기술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사마천이 괴통의 입을 빌려 자신의 견해를 창조하여 기술하였다면 사마천의 식견과 논리가 엄청나게 넓고 탁월하여 그 위대함에 더 놀라게 된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놓고 쟁패하는 초한 시대는 중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대인데 여기에 나오는 기라성같은 인물들 중에 최고의 장수가 한신이다.

그래서 이런 거물 한신에 접근하여 그를 움직이려면 대단한 실력을 갖춘 책사가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니 괴통은 당대 최고 수준의 책사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사기열전에 기술된 괴통의 언변은 분명한 정세 판단과 설득력 있는 풍부한 사례, 과감한 결단의 필요성 등을 담고 있는 최고 수준의 유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신이 괴통에게 완전히 설득되지 않고 움직이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신은 숱한 전쟁을 치루면서 결단을 내리는 일에도 매우 익숙했을텐데 자신의 처신에 결단을 못 내리고 나중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은 아이로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분석을 한다면 아마 한신은 끝임없이 1인자의 최고 권력을 추구하는 권력의지가 부족해서 불확실한 자립(自立) 을 모험하기 보다는 안전한 2인자의 자리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전공을 크게 세워 많은 것을 가진 지위가 되니 없는 상태의 초기처럼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이 생겨난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이 너무 커서 천하를 덮을 정도이면 이미 남의 밑에 있기가 어려워 현실적으로 긴장을 하고 냉정하게 대처를 해야 하는데 한신은 이 점을 간과하여 군주의 시기와 의심을 받고 결국은 패가망신하는 몰락의 길을 갔던 것이다.

이것은 한신 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큰 공을 세우고도 토사구팽당하는 숱한 인물들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사례에서도 그런 면이 복잡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신의 몰락사를 통해 냉혹한 권력투쟁의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니 나는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려 눈을 감고 잠시 진정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무 권력도 없는 백수 서생의 처지가 상팔자이고 다리뻗고 편안하게 잘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어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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