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파리의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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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파리의 자장면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7.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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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는데…되돌아 보면 아름다운 시절

 

[조병수 프리랜서] 서울과 런던 간에 직항(直航)편이 없고, 대한항공이 파리를 주(週) 2회 운항할 때였다. 런던에서 감사와 합류한 본점 검사팀이 검사일정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편을 기다리느라 파리에서 이틀 밤을 체류하게 되었다.

그들의 파리 체류 동안 현지에서 지원하라는 지시가 나에게 떨어졌다. ‘맡은 일도 산더미 같은데···’라는 불만이 살며시 솟기도 했지만,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후다닥 거리며 일과(日課)를 챙기다가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파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팀원들과 승합차를 타고 파리시내로 나서는데, 한여름 파리의 햇볕이 왜 그리 따가운지 런던하고는 완전 딴판이었다. 서유럽의 온화한 기온 탓인지는 몰라도, 1980년대 중반에는 런던이든 파리던 어지간한 차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그러니 승합차 안은 완전히 땀 바가지였다. 햇볕이 없는 곳은 바깥 공기가 차라리 더 시원했다.

그런 날씨에, 일행들은 출장일정을 모두 끝내고 귀로(歸路)에 올랐다고 간편한 복장으로 다니는데, 나 혼자만 정장차림이었다. 그러니 차 안에 있으면 얇은 하복의 등판이 완전히 땀으로 젖어 있다가. 차에서 내리면 옷이 마르곤 하기를 반복했다.

검사 팀 수반이 “양복 저고리를 벗으라”고 권했지만, 적어도 수행하는 아랫사람 한 명쯤은 반듯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어서 그대로 있었다.

 

▲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마르스광장(Champ de Mars) /사진=조병수

 

그 때 그 검사 팀은 몇 군데 해외지점을 돌아오는 중에 제법 여러 날을 2명씩 같이 호텔방을 쓴 모양이었다. 팀 수반은 “그 동안 같이 방을 쓰던 팀원이 코를 고는 탓에 잠을 잘 못 잤다. 파리에서는 파트너를 바꾸어서 당신과 같은 방을 쓰자”고 했다. 상급자라서 좀 어렵기는 했지만, 거절할 명분도 없어서 같은 방에서 조심스레 기숙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그 분이 웃으면서, “이거 고양이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났다”고 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느라고 나름대로 많이 피곤했던지, 코를 엄청 골았던 모양이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코를 고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직장의 대 선배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셈이다.

 

그 때 파리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정말 맛있게 먹은 것이 자장면이다. 점심식사를 하러 한식집을 찾아갔을 때, 메뉴 중에 눈에 확 띄는 것이 바로 자장면이었다. 그 당시 런던에는 자장면을 하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생각이 나면, 주말에 아내가 너구리 같은 국수를 삶고, 중국인 슈퍼에 가서 춘장 같은 것을 구해다가 비벼서 만들어 주던 궁즉통(窮即通) 수제(手製) 자장면으로 향수를 달래곤 했다.

그런데 파리의 식당에는 그 자장면이 있으니 말 그대로 ‘띵하오(顶好)’였다. 마음 같아서는 곱빼기로 시키고 싶었으나 바로 옆에 어려운 상사(上司)가 계시는 데서 품위 없게 굴 수도 없었다. ‘그래도 제대로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은 주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정작 나온 것을 보니 몇 젓가락 왔다갔다하면 그만일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감사가 “그것 먹고 되겠나? 다른 것 좀 더 시키지”하며 배려해 주시는데도, 그 알량한 사나이의 부질없는 체면과 추가 주문으로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어서 “괜찮습니다. 충분합니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만에 제법 그럴싸한 자장면을 먹게 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차 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허기와 싸워야 하는 코미디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후 몇 년이 흐르는 사이 그때의 감사(監事)님은 은행장이 되셨고, 귀국해서 지점에 근무하던 나는 다시 비서실로 가서 그분을 수행하게 된다. 나중에 전해들은 얘기로는, “전에 런던에 있던 그 친구 지금은 어디 있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 때 절실히 느꼈던 것은, ‘사람은 어디서든지 간에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누군가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순풍(順風)으로, 때로는 비바람도 맞아가며 우리의 삶은 그렇게, 그렇게 이어져 가는 것 같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은행장께 그 때 파리에서 자장면을 먹고 고전하던 순간을 말씀 드렸더니 싱긋이 웃으셨다. 어떤 이는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살라”고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그렇게 되돌아보고 웃음지을만한 아름다운 시절이 있음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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