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프랑스 50년 앙시앙 레짐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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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50년 앙시앙 레짐 무너뜨렸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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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5월 혁명 후 권력을 나눠먹던 구정당 완패…실리추구형 신생정당 압승

 

1968년 5월 13일 프랑스 파리. 100만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가해 엘리제궁으로 향했다. 그해 봄 파리 남부 낭테르 대학에서 발생한 학생들의 교내시위는 이른바 ‘5월 혁명’의 불을 댕겼다.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미국의 베트남 침략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로 번졌고, 기성 세대와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혁명으로 발전했다. 샤를 드골 정부는 국가가 끊임없이 외부의 적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학생들은 자신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국가 구조에서 인간의 가치와 이상을 찾았다. 학생들은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하는 기성 세대와 사회 풍조에도 저항했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주의를 주창하며 자신들을 억누르는 모든 권위와 권력, 체제, 조직에 반대했다.

명문 소르본느 대학 학생들은 ‘인민의 대학’(people's university)임을 선언했다. 노동단체가 가세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과 파업을 전개했다. 5월 17일 프랑스 노동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0만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가담해 드골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나서 최저임금 35% 인상, 7% 인금인상을 요구했다.

5월 28일 민주사회 좌파연맹 총재였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더이상 국가는 없다. 신 정부 구성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5월 29일, 드골 대통령은 엘리제궁을 떠나 독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독일 바덴바덴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군 사령부였다. 그곳 사령관이었던 자크 마수는 귀국하도록 드골을 설득했고, 드골은 마지못해 다음날 귀국했다.

드골의 망명 소식이 전해진 5월 30일, 40만~50만명의 시위대가 파리로 행군했고, 그들은 “드골이야 안녕”을 외치며 하야를 요구했다. 시위대는 파리 도심을 가득 메웠다. 조르주 퐁피두 내각은 시위대가 관공서를 점거할 경우 탈환계획을 수립하고, 파리 외곽에는 탱크를 대기시켜 놓았다. 1871년 파리코뮌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번엔 드골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80만명에 이르는 드골주의자들이 프랑스기를 흔들며 엘리제궁으로 행진했다. 우파인 드골주의자와 좌파 시위대의 팽팽한 대립이 전개되자, 프랑스 정치인들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마침내 프랑스는 혁명을 피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학생들은 학교로, 노동자는 공장으로 돌아갔고, 시위는 잦아들었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 시위를 ‘5월 혁명’ 또는 또는 ‘68혁명’이라고 명명한다. 5월 혁명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드골의 공화국민주연합(UDR)이 전체 의석의 72.6%를 차지했다. 프랑스인들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킨 영웅 드골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5월 혁명이 사회당으로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2차 대전 직후 프랑스 좌파를 주도한 공산당이 몰락하고 사회당이 좌파의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시위를 주도한 미테랑은 1981년 대통령에 당선돼 13년전 혁명의 열매를 맺게 한다.

 

▲ /그래픽=김인영

 

5월 혁명이 발생한지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프랑스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 시위 이후 프랑스 정치는 보수당과 사회당이 교차로 정권을 차지하는 보수-사회당의 체제를 굳혀왔다. 그러나 39세의 젊은 정치 지도자에 의해 프랑스의 구질서가 무너졌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은 5월 7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 승리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나이, 그의 결혼, 그의 철학이 프랑스인은 물론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불과 한달 사이에 치러진 총선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의 신당 '앙 마르슈'(En Marche: 전진)는 출구조사에서 전체 의석의 최대 77%를 가져갈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마크롱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이번 총선은 지난 50년간 프랑스 정치를 지배해온 구체제(앙시앙레짐, ancien régime)을 무너뜨렸다는데 정치평론가들은 중점을 두고 있다.

얼마전까지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참패했다. 사회당은 현재 보유한 277석 가운데 200석 이상이 줄어든 15∼40석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사회당 대표인 장 크리스토프 캉바델리 서기장마저 전통적으로 사회당 강세 지역인 파리의 지역구에서 패배했다.

마크롱의 신당이 예상외로 선전한 것은 마크롱의 저돌적인 스타일과 국정철학이 변화를 요구하는 프랑스인들에게 호소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취임 직후 곧바로 EU의 핵심 파트너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EU와 유로존 개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다.

프랑스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이런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요인에 머물지 않는다. 마크롱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지지한 것이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르몽드 사이트

 

마크롱의 정당은 중도파로 규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노동개혁론자라는 점에서 우파 수정주의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명문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2006년 사회당에 가입한 사회주의자였다. 이어 경제부처 공무원으로 잠깐 일한 뒤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 스카우트돼 기업 인수합병(M&A) 등의 전문가로 활동하며 실물경제를 익혔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엘리제궁에 입성했다가 2014년 개각에서 36세의 나이로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그는 우리나라 상공회의소 격인 경제인연합회(MEDEF) 모임에 참석해 사회당의 주요 노동 정책인 주 35시간 근무제를 비판했다.

"예전엔 좌파가 기업에 대항하고, ‘기업 없이도 정치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한때 집권 사회당이 발칵 뒤집혔다. 집권 세력내에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보수 우파가 있다느니 하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올랑드의 사회당 지도부는 그의 친기업 정책을 포기할수 없었다. 실업률이 치솟자 생각을 바꾼 것이다. 사회당은 전통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용비용이 상승하고, 따라서 알자리를 줄여야 수지를 맞출수 있게 된다. 신규 고용이 더 줄어들게 된다. 이 시장 원리를 깨닫는데 올랑드 정부가 3년이 걸렸다.

그의 승리 배경에는 유권자들이 기존 좌우 거대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에 염증을 느낀 것도 있다. 게다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사회당 정부 내에서 친기업 성향으로 우파개혁을 추진해왔던 것이 유권자들을 파고들었다는 해석이다.

그는 2015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파리 샹젤리제와 같은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 개혁법을 추진했다. 프랑스 노조와 사회당에서는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며 이 법을 반대해왔다. 의회의 반대가 심해 법안 통과가 어렵게 되자, 마크롱은 올랑드 대통령을 설득해 의회 표결을 피해 헌법 예외조항을 이용, 표결을 거치지 않고 정부 발표로 대신하는 방법을 동원해 정책을 관철했다.

그는 강한 유럽연합 건설, 법인세 인하, 공공부분 일자리 12만명 감축, 재정지출 축소, 친환경·직업훈련 예산 확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통적으로 유럽 좌파들은 기업에 막대한 세금과 복지부담을 안기고,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근로조건을 만들어 표로 연결시키려 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악화하고, 근로조건이 보다 유리한 나라로 공장을 이전시키려 한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실업률은 올라간다. 프랑스 좌파 정권이 뉘늦게 이를 깨닫고 노동세력의 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이제 프랑스엔 좌(左)와 우(右)의 이념 정당이 무너졌다. 50년전 유물인 5월 혁명을 팔며 장사하던 사회당은 완패했고, 국가와 민족을 외치는 우파 정당도 깊은 물에 가라 앉았다. 대신에 프랑스인들은 경제 실리를 주장하는 새로운 정당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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