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⑦…주식대중화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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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⑦…주식대중화 선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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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부동산보다 주식 선호…저금리시대 재테크 수단

 

텍사스주 댈러스에 살고 있는 기리 크라옌하겐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그는 잠결에 컴퓨터를 켜고 밤새 들어온 뉴스를 체크한다. 델 컴퓨터의 분기 이익이 전년대비 52% 증가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뉴욕 증시가 마감한 다음 들어온 뉴스였기 때문에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델 컴퓨터의 주가는 뛸 것이 분명했다.

새벽 4시 43분, 동부 시간으로 5시 43분이었다. 그는 델 컴퓨터 주식 1,00주를 전날 종가인 주당 113.18 달러에 샀다. 아침 8시 30분(동부 시간은 9시 30분) 뉴욕증시가 개장했다. 그는 개장과 동시에 델 컴퓨터 주식을 팔았다. 개장초 델 컴퓨터 주가는 119.50 달러로 전날 종가대비 6 달러 뛰었고, 그는 새벽잠을 설친 대가로 몇 시간만에 6,000 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미국 경제의 심장부인 월가는 컴퓨터 온라인 망을 통해 전국의 펀드는 물론 가정까지 연결돼 있다. 월가는 미국 기업과 금융산업의 중심지일 뿐아니라 미국인들 생활의 중심에 서있다.

미국의 봉급쟁이들은 노후 생활을 위해 주식시장에 적금을 붓는다. 장난감을 사겠다는 아이에게 “스스로 대학 학비를 준비하려면 유망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미국 부모들이다. 초등학교 선생들은 1만 달러가 있다면 어느 회사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해 오라고 숙제를 낸다. 학생들은 어려운 월스트리트 저널지를 보며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투자회사를 선정한다. 학생들은 며칠후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를 차트로 만들어 제출하는 커리큘럼이 미국 학교에서 유행하고 있다. 고사리 손으로 한푼두푼 모아 저금통장에 넣던 시절의 얘기는 전설로 전해 올뿐이다.

평론가 제이콤 와이스버그씨는 아메리카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을 ‘아메리카 주주연합(The United Shareholders of America)'이라고 표현했다. 1998년에 월스트리트 저널지와 NBC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 성인의 51%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유권자의 53%가 주식 보유자로 나타났다.

주식시장의 장기호황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주식이 장기투자로 많은 이익을 남기는 상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뉴욕타임스지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 9월 현재 미국인 가정의 재산 가운데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28%로 부동산 비율 27%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년전인 지난 1990년 부동산 투자 비중이 33%였고, 주식 투자 비중이 12%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미국인 가정에서 집이나 땅보다 주식을 사는데 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들어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장기호황은 미국인들을 주식 열풍으로 몰아넣었고, 이 바람이 또 증시 호황을 불러오는 선순환을 형성한 것이다.

월가는 미국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1980년대초 800대였던 다우존스 지수는 2만을 넘어섰다. 무려 24배 이상 뛰었다. 다우 지수, 나스닥 지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지수는 90년대 말에 연평균 20%씩 뛰었다. 저금리 시대인 점을 감안하면, 주식만큼 재산을 불려줄 수단이 없었다.

 

▲ /그래픽 = 김인영

 

뉴욕 월가는 미국인들에게 주식투자 대중화를 만들어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주식투자 경진대회도 성행하고 있다. 1998년도 경제뉴스 전문 케이블 채널인 CNBC와 전화회사 MCI가 주최한 모의 경쟁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의 예를 들어보자.

뉴욕주 태리타운의 해클리 고등학생 5명은 1만 달러를 가지고, 개장 일수 61일만에 21만2,109 달러를 불려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의 투자 방법은 짧은 시간에 치고 빠지는 단기 매매방식이었다. 소년들은 월가의 프로들도 낭패하기 쉬운 투기성 거래에 과감히 도전, 두달만에 모두 198회의 거래를 시도했다. 비록 모의 투자였지만, 학생들은 두달만에 21배의 돈을 불렸다는 소식은 월가에선 충격적이었고, 일반 미국인들에게도 화젯거리였다.

 

정치인들도 주식투자자들을 겨냥해 지지를 호소한다. 유권자의 대부분이 주식투자자이기 때문이다.

1997년 가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무역자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신속처리권(패스트트랙)을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그때 클린턴은 주식투자자들을 향해 “이 법안이 통과되면 주식시장에 매우 긍정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며 호소했다. 대통령이 의회와 마찰을 빚으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호소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관행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무역법안을 밀어붙이면서 유권자가 아닌 주식투자자에게 호소했던 것이다. 유권자 중에서 주식투자자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지와 NBC TV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1%가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전체 유권자 가운데 주식투자자가 53%로 비투자자들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클린턴은 무역법안이 통과되면 북미와 남미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형성, 미국 경제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뛸 것이라고 강조, 대다수 유권자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법안은 공화당의 완강한 반대로 유산됐지만, 워싱턴의 정가가 뉴욕 증시에 투자한 막강한 개미군단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일깨워준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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