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제품에 몰린 한국 젊은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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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산 제품에 몰린 한국 젊은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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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0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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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소비가 성장 동력?

(이 글은 2002년 3월 18일자 타임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외국산 제품에 몰린 한국의 젊은 소비자들

(Veni, Vidi, Gucci)

- 미국 Time, 3. 18, Donald Macintyre -

한국경제의 ‘구세주’인 최주희양(20)의 씀씀이를 살펴보자. 신용카드 두 장과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그녀는 옷을 사고, 친구들과 한 잔 하며 휴대폰 비용을 내는데 매월 적어도 78만원 가량을 쓴다(휴대폰을 얼마나 썼던지 한번은 아버지가 그녀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집전화를 한달간 끊은 적이 있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것 중에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상표가 붙은 간편화와 프라다표 캐주얼 신발이 들어 있다. 최근 쇼핑에 나선 그녀는 흰 면으로 만든 DKNY 스커트를 발견했다. 함께 간 어머니는 “너무나 튄다”면서 사지말라고 말렸다. “요새 아이들은 도대체 돈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없이 무엇이든지 사고 싶어한다”고 최양의 어머니는 말했다.

한국이 방글라데시처럼 가난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부모 입장에서 볼 때 딸아이의 씀씀이는 버거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도 요즈음 한국경제가 왜 잘 나가는지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선박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생산하는 한국은 지난 10년간 수출강국으로 부상했으며 4년전의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다시 활기를 찾도록 한 것은 국제무역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적 경기침체로 사정은 달라졌다. 미국의 수요가 줄어들자 한국은 국내소비 증가를 통해 불황을 탈출하고 있다.

대우그룹의 파산과 하이닉스반도체의 준도산 등 아직도 많은 문제가 널려있다. 그러나 구조조정 노력 덕택에 한국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활력을 되찾고 성숙해졌으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소비자 신뢰지수가 크게 높아진 가운데 지난 주 국내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기업실사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무기력했던 종합주가지수는 9.11 테러사태 이후 무려 75%나 상승했다. 유럽이 아직도 그로기 상태고 미국은 다시 맥박이 뛰며 바닥에 쓰러진 일본에 대해 카운트가 불러지고 있는 가운데 작은 한국은 올해 3.2% 내지 6%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약 7%의 성장이 예상되는 거대한 중국 다음으로 한국은 아시아의 스타가 될 것이다. 노무라 증권 서울지점의 시장분석가인 폴 프레슬러씨는 “한국은 아시아 어떤 나라보다 구조조정과 외자유치를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장건설과 수출촉진 등으로 계속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중국과 달리, 한국의 성장 엔진은 갈수록 채워지는 ‘돈지갑’의 힘에 있다. 지난 2천년 GDP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율은 32%였고 서비스 부문은 43%나 되었다. 지난 87년, 4천7백만의 소비자들이 지출한 비용은 GDP의 약 50%에서 58%로 증가했다. 세계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장래를 밝게 보는 소비자들 때문에 세탁기와 냉장고 등 내구성 제품의 판매가 작년 9월이래 상승곡선을 긋고 있으며 승용차는 지난해 5% 늘어난 1백45만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건설경기가 폭발적이며 주택의 개보수가 뜬금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5년전만 하더라도 다섯 명중 한 사람이 여기에 관심을 보였으나 지금은 너도나도 리모델링을 한다.

한국사람들의 소비성향도 달라져 값싸거나 이름도 없는 샴푸를 사는 대신, 동네마다 들어선 피부미용실에 가서 열대지역산 젤 같은 것으로 몸을 마사지 한다. 스포츠 클럽, 요가 교실 등이 늘어나고 한국인들의 외식 횟수와 영화보기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제 서울 극장가에서는 관객의 46%가 국산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고난 이들은 커피 숍에서 카푸치노를 홀짝거린다. 2년전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스타벅스 같은 외국의 커피 가맹점이 국내 커피점과 경쟁을 하고 있다. 종이컵을 손에 든 이들은 ‘뉴욕사람’ 기분을 내고 싶어 한다. 소비자들은 기업을 창출한다. 국내지출로 기술과 서비스 부문의 회사들이 생기는 등 산업부문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97년, GDP의 8% 미만이었던 첨단기술은 이제 15%로 증가했으며 인터넷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보급되어 예컨데 www.freechal.com은 한달에 약 3천원을 내는 회원 11만명을 확보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다양화는 또한 한국의 전통적 고용회사였던 재벌 회사 이외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하긴 재벌들은 오히려 감원을 했다. 심경주씨는 아시아 위기가 왔을 때 SK 케미칼의 게임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SK는 회사 몸집을 줄여야 했다. SK를 떠난 심씨는 정부로부터 벤처 자금을 얻어 자신의 부서를 위저드(마법사) 소프트(Wizard Soft)라 불리는 벤처회사로 변형시켰다. 재벌 경영진의 가혹한 통제에서 벗어난 심씨와 동료들은 곧 ‘쥬라기 시대의 원시 대전 11’같은 히트 상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999년에 설립된 회사는 이익을 냈다. 심씨는 전 고용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게임을 모른다. 그들은 결정을 늦추고 매 고비마다 제동을 걸었다. 위저드는 신속하고 효율적이다.”

한국은 아무래도 재앙에 의한 축복을 받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의 추락으로 정부는 경제를 개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산의 문턱에서 정부는 삐걱거리는 금융제도를 쇄신하고 과도한 차입으로 경제를 죽인 책임을 물어 재벌들을 응징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일본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부실 회사 및 비생산적 자산 처리를 꾸물거리는 동안 한국은 무자비했다. 예를 들어 한국 은행들의 악성부채는 부실 자산 매각으로 작년 55% 이상 줄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행들은 부실 기업에 대한 악성 대출 증가로 붕괴 직전에 있다.

서울은 또한 여러 조치들 중에도 특히 신용카드의 한도를 없앰으로써 억제돼온 소비욕구를 충족시켰다. 한국인들은 한때 열심히 저축했다. 정부도 국내 자본이 제조업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하기 위해 저축을 장려했다. 오늘날 시민들은 저축보다 쇼핑을 더 많이 한다. GDP 대비 한국의 저축률은 1987년 이후 10%나 줄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저축률은 큰 변동이 없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만사를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러나 신용카드가 일반화되고 사용에 따른 세금혜택까지 주자 구매자들은 카드를 마구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의 사무보조원 서은희씨의 말을 들어보자. “그건 쉽고 재미있어요. 전보다는 더 많이 지출해요. 전에는 백화점에 가서 사고싶은 걸 살 수 없었어요.” 작년 2,350억 달러의 물건이 신용카드로 구매되었다. 1998년에는 겨우 500억 달러에 불과했었다. 한국인들의 구매력은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갔다. 정부는 그동안 은행의 소비성 대출을 억제했다. 오늘날 재벌에 대한 대출은 가계대출로 대체되었다. 이는 은행의 안전한 수입원이 되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소비성 대출로 수백억 달러의 돈이 경제로 쏟아져 들어갔다.

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분석가 토머스 바이런은 한국의 위기는 겸허한 교훈을 가르쳤으며 기업과 정부의 편협성을 줄였다고 말했다. 바이런은 최근 한국 경제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무디스는 한국의 외환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리는 문제를 검토중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차입 비용은 줄어든다. 그는 전 같으면 입수하기 어려웠던 주요 데이터를 간단히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 경제부총리의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고 방한시에는 그와 독한 소주를 마신다. 그는 “전에는 경제 장관과 만찬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게 일상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장 낙관적인 한국 전문가들도 한국이 아직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수십년 동안 한국 경제는 대부분 정부가 끌고 왔다. 지금은 자유방임과 자유시장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족벌이 경영하는 재벌들은 아직도 주주들이 회사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투명성과 공개는 아직 세계기준에 미달한다. 기업의 부채는 아직 많고 부실 기업을 정리하기 위한 개선된 파산법이 필요하지만 아직 입안단계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부실 기업이 너무 많다.

미국에서의 힘찬 회복이 한국의 전망도 더 밝게 할 것이다. 미국인들이 휴대폰과 스테레오와 냉장고 그리고 특히 미국 소비자들의 필수품이 된 삼성전자의 DVD 플레이어를 사기 시작하면 한국의 거대한 전자제품 수출업자들은 큰 혜택을 볼 것이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메이커인 삼성전자는 또한 미국의 하이테크 분야에서도 한 몫 잡을 것이다. 그밖에 한국의 조선업 납품업자, 자동차 생산자, 재벌 수출업자 등이 재미를 볼 것이다. 한국의 대미 시장 의존도는 줄었다. 그러나 아직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현재까지의 발전으로 큰 점수를 따고 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의 관료주의는 아직도 대기업들의 파산을 꺼리고 있다.(하기야 현대 그룹과 대우의 붕괴는 아무리 큰 기업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지만) 정부는 국영 은행과 기업의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전력의 민영화를 둘러싼 파업은 6월의 지방선거와 연말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여준다.

좌우간 최씨 같은 젊은 한국인들이 소비를 계속하는 한 한국의 GDP는 점점 높이 올라갈 것이며 좋은 세월이 이어질 것이다. 자, DKNY 스커트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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