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외국어 커튼 뒤에 숨은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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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외국어 커튼 뒤에 숨은 시민의식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3.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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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소통 자유로운 시대…지구화 시대, 국제 매너 모범 보여야

[조병수 프리랜서] 며칠 전 딸이 어느 커피숍에서 주문한 음료를 받으면서 포인트를 적립해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이다. 그때 뒤에서 기다리던 젊은 남자가, 그 바람에 자신의 음료 준비가 늦어진다고 볼멘소리와 입에 올려서는 안될 욕설까지 담아서 영어로 구시렁대더라는 것이다.

듣다 못한 딸이 “먼저 양해를 구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직원이 해줄 수 있다고 해서 부탁한 것인데 왜 욕을 하느냐?”고 하니까, 자기 속내를 들켜서인지 잠깐 움찔하던 그 젊은이가 되려 큰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잠깐이나마 부질없는 설전이 벌어졌다고 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요즘은 영어 모르면 싸움도 못하겠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고···.

그 이야기를 듣노라니, ‘불만이 있으면 굳이 외국어라는 커튼 뒤에 숨지 말고 점잖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점점 배려와 인내심이 사라져가는 각박한 세태도 세태려니와, 이 땅에서조차 영어로 자기 감정을 표출해야 마음이 편해질 정도가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내 경우에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화나는 일이 있을 땐 우리말로 ‘한마디’하고 나면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예사롭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젊은이들, 김밥집에서 떡볶이를 나누어먹으며 영어로 떠드는 어린이들, 외국인 선생님 인솔하에 노란 가방 하나씩 울러 매고 줄지어 걸어가던 유아들까지, 우리네 주변도 정말 많이 변했다.

▲ <한국의 모 국제학교 모습> /사진=조병수

 

지긋한 연배의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어에 대해 나름대로의 부담과 울렁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외국어 소통능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의 부모님들은 ‘조기유학’이니 ‘기러기아빠’같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자녀들의 외국어교육에 힘써왔다.

십여 년 전 캐나다 토론토에 출장 갔을 때, 아침나절 던킨도너츠 매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던 여인들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난 뒤 모여있는 한국 엄마들”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잠깐 먹먹해졌던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기러기 아빠인 의사가 자녀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야간과 공휴일 진료를 마다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듯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헌신적인 가족들의 성원이나 여유 있는 환경 덕분에, 세계로 나아가 남다른 경험과 배울 기회가 주어진 사람이 많다. 그리고 지난해 해외여행객수가 2천2백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드나들며 세계와 교류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도 많이 받고 해외문물을 접한 사람들도 많아진 요즈음인데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좋은 문화들도 많이 배워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쩐 일일까?

외국에 나온 우리 동포들은 대체로 현지관습과 예법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현지인들과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웃고, 문 열어주거나 엘리베이터 잡고 기다리는 친절에 “생큐”라고 감사하며, 때때로 "실례합니다(excuse me)"라는 말에도 인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문을 잡고 기다려주어도 아무런 말도 없이 쑤~웅 지나가고, 같은 아파트 한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잔뜩 굳은 자세로 외면하며 지나친다. 이런 모습들에 불편한 마음을 나타내면 아내는 "마음이 쓰여서 친절을 베풀었으면 그걸로 되었지, 괜히 그 반응을 기대하지는 말라"고 한다.

그러니, 정말 가물에 콩 나듯이 “감사”의 뜻을 표하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지나치는 동네 어린아이들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사무실이나 공중전화부스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뛰어다녀도 제대로 제어(制御)하는 부모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세계와의 교류가 일상화된 시대이다. ‘옛사람’들처럼 외국인을 보면 시선을 떨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육도 받고 의사소통도 자유로울 정도인 사람들이 앞장서서, 제대로 된 시민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 국제사회에 어울리는 매너까지 모범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 배려하고 미소 지으며 사는 건강한 사회, 말만 들어도 멋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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