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의 과학과 철학] 배터리와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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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의 과학과 철학] 배터리와 둥지
  •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 승인 2020.12.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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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새·아기새, 둥지에 있다 헤어져...배터리 방전과 닮아
둥지는 높을수록 안전...배터리는 높은 전압 내는 리튬이 '최고'
자연의 이소 행위는 '비가역적'이지만 배터리는 '가역적'
전압 가하면 아기 전자도 엄마 리튬이온도 되돌아가...'충천' 과정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이소(離巢) 유도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개의 탐지능력에 놀란다. 수풀에 숨어 있는 고라니를 놀래기도 하고 차 밑에 숨은 고양이를 공격하기도 한다. 올봄 어느 날 줄이 갑자기 팽팽하여진다고 느끼는 순간 강아지 세 마리는 참새를 쫓고 있었다. 목줄을 꽉 잡고 살펴보니 아기 참새 두 마리가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어미 새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내는 이소 중인 참새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기 참새는 둥지로부터 미숙한 날갯짓 하며 허공으로 떨어진다. 어미는 결코 낙하 비행을 도와주지 않으며 떨어진 새끼를 일으켜 세우지도 않는다. 가까이 오면 더 멀리 달아난다. 안전한 숲 속에 도착할 때까지 새끼를 끊임없이 재촉한다. 이 시기의 비정함이 새끼의 남은 일생을 보장한다.

충전과 방전

우리는 매일 충전과 방전을 통해 휴대폰을 사용하므로 밥솥보다 익숙한 배터리를 알지만 작동원리는 모른다. 사실 휴대폰 사용자는 굳이 배터리의 작동원리를 알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우리나라 배터리 개발 전략을 세우는 자라면  배터리의 작동 원리 정도는 알아야 한다. 배터리 산업의 주식 투자자도 첨단 기술을 읽어둬 나쁠 이유가 없다.

배터리 기술은 '참새의 이소' 과정으로 보면 대충 맞다. 우리나라 대부분 학생들은 화학을 어렵다고 여겨 선택을 기피한다. 화학을 선택한 학생도 산화환원 반응이 나오는 순간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외워 넘어간다. 화학 학위를 받았다고 산화환원 반응을 아는 것도 아니다.

배터리의 충전과 방전 반응은 산화환원 반응의 대표적 예이다. 화학반응에 전자가 출현하면 산화환원 반응이고, 출현한 전자가 도선을 따라 흐르면 충전방전 반응이다. 이소 행위를 통해 충전과 방전을 이해하고 산화환원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이소하는 참새 모습. 사진=연합뉴스
새 둥지를 찾아 떠나는 참새. 사진=연합뉴스

어미새와 아기새, 리튬과 전자

충전과 방전 반응은 물질에서 전자가 튀어나와 선을 따라 흘러야 한다. 둥지에서는 어미새와 아기새가 함께 있었지만 이소 과정에서 서로 헤어진다. 엄마새는 엄마의 길로 가고, 아기새는 아기의 길로 간다. 아기새는 공중으로 몸을 던지고 엄마를 쫓아가는 행위를 통해 성장한다. 엄마새는 숲 속으로 바로 날아간다. 엄마새가 정에 이끌려 아기새를 낚아채 함께 떨어지면 오히려 불행을 잉태한다.

첨단 배터리로 각광을 받는 리튬전지의 방전 반응은 리튬이온과 전자의 분리로 개시된다. 리튬이온은 어미새, 전자는 아기새에 해당된다. 음극에서 분리된 리튬 이온은 전해질 속을 헤엄쳐 이동하고, 분리된 전자는 전선을 타고 이동하여 양극에서 만난다. 리튬 이온은 물에 뛰어들기를 좋아하지만, 덩치가 작은 전자는 헤엄치지 못해 전선을 따라 이동한다.

설계나 제작 불량으로 리튬이온과 전자로 분리되지 못한 리튬이 양극과 만나면 폭발이 일어난다. 전지의 화학물질은 원래 화학 에너지를 지녀 폭발성이 있지만 1800년 이탈리아 화학자 볼타가 화학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배터리를 발명했다. 배터리는 열로 방출되는 화학 에너지를 전류로 전환시키는 혁신적 발명이었다. 간혹 신문에 나오는 배터리 폭발성은 과장이 아니다.

큰 용량의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전지 물질의 폭발성이 좋아야 한다. 폭발성이 가장 큰 물질이 원자 리튬이다. 리튬의 폭발성은 리튬이 리튬이온과 전자로 잘 분해되는 성질에서 나온다. 이 성질을 보통 금속의 이온화 경향이라고 한다. 차세대 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후보물질을 찾지만 리튬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폭발성이 큰 물질을 제어하는 기술은 모든 과학기술의 목표이고 배터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림= 정연섭 칼럼니스트
그림= 정연섭 칼럼니스트

둥지와 땅, 음극과 양극

둥지는 알이 부화하는 품이고, 어미새와 아기새가 함께하는 놀이터이다. 어미새는 뱀이나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하도록 둥지를 높은 곳에 짓는다. 배터리의 음극은 둥지이다. 음극에서는 리튬 원자가 머물고 있다. 둥지가 높아야 하듯이 음극의 전압이 높아야 한다. 둥지의 높이는 새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참새보다는 매가 높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튼다.

음극의 전압도 전지의 물질에 따라 결정된다. 납축전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납이 전지의 물질로 사용되었지만 최근 첨단 제품에는 리튬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온화 경향이 높은 리튬이 가장 높은 전압을 발생시킨다. 배터리 개발자는 높은 전압을 찾기 위해 수많은 물질을 시도하지만 결국 리튬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참새는 둥지를 나뭇가지로 만들지만 나뭇가지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어미새는 나무 가지 외에 진흙도 물어가고 마른 풀도 물어가고 철사도 물고 간다. 배터리 개발자들은 리튬을 음극의 핵심 소재로 사용하지만 흑연도 넣어보고, 고분자도 넣어보고, 세라믹도 넣어 최상의 조합을 찾는다.

음극에서 헤어졌던 리튬이온과 전자는 양극에서 다시 만난다. 자식인 전자는 전선 따라 가로등에 불도 켜고 모터도 돌리는 일을 하면서 양극에서 엄마를 만날 일념으로 달려왔다. 반면에 엄마 리튬이온은 전해질을 헤엄쳐 왔다. 수영이 우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전해질에도 이동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다. 배터리 개발자들은 리튬이온이 한눈팔지 말고 신속히 이동하도록 전해질을 개선하고 있다. 일본에서 연구가 활발하다는 고체 전해질도 한 후보인데 이는 리튬이온이 걷듯이 수영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배터리 양극에서는 아기 전자가 접안하는 엄마 리튬이온의 손을 잡는다. 잡는 순간 둘은 하나의 리튬 원자가 된다. 양극은 모자가 머물 집을 마련해 줘야 한다. 몇 리튬 원자들은 노숙을 할 수 있지만 집이 없으면 문제가 생긴다. 전해질에서 달려오고 있는 리튬이온이 뭍을 거부할 수도 있고 자식 전자를 거부할 수도 있다. 배터리 개발자들은 음극 못지않게 양극의 재료에 신경을 쓴다. 잘 알려진 양극물질은 리튬 코발트 산화물이다. 적은 무게로 많은 집을 짓을 수 있으면 좋다.

가역성과 비가역성

나는 아기 참새가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아기 참새를 잡아 다시 둥지에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아기 참새는 한 번의 이소만으로 하늘 날아가는 법을 배운다. 자유 낙하 과정을 봐야 하는 것은 나의 비뚤어진 욕심일 뿐이다. 자연의 이소 행위는 비가역적이다. 결코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배터리는 가역적이다. 배터리의 충전은 아기새를 다시 둥지에 넣는 행위와 유사하다. 전압을 가해 배터리의 방전 과정을 강제로 되돌린다. 가압을 통해 아기 전자는 전선 따라 되돌아가고 엄마 리튬이온은 전해질을 역류하여 되돌아간다. 인위적 충전전압이 너무나 강해 모자가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이렇게 배터리는 낮에는 방전이 일어나고 밤에는 충전이 일어난다. 이론적으로 배터리는 가역적이라고 하지만 수천 번을 반복하면 배터리도 닳는다. 배터리 개발자는 10년 써도 막 산 듯한 재질을 찾고 있다. 급 충전되는 재질을 찾고 있다.

배터리의 전망

10년 전에 나는 볼타의 오래전 발명과 화학적 원리를 고려하여 배터리의 급격한 기술 진보를 기대하지 않았다. 기술에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리튬이온 전지의 단위용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났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리튬 이온 배터리의 단위 용량이 급격히 늘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배터리는 단위 용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더라도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할 듯하다.

●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 거쳐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크로의 과학사냥'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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