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경영’으로 본 ‘사상가 이건희’② 성공한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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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신경영’으로 본 ‘사상가 이건희’② 성공한 덕후
  •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전 서울경제신문 산업부장)
  • 승인 2020.10.2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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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의 본질은 '질 경영'..."양 경영에서 벗어나라" 방향제시
특유의 경영철학 밀어부친 원동력은 '몰입성'...모든면에서 '덕후'
몰입에서 출발, 끝까지 도전하며 입체적·창의적 사고...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강력'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전 서울경제신문 산업부장)] 1993년 초, 미국 LA와 일본 도쿄 회의를 거치면서 ‘위기에 빠진 삼성의 현실과 개혁’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 그 하이라이트가 신경영의 출발점이 된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 곳에서 이 회장은 그룹 회장단 뿐 아니라 임원, 유럽 주재원 등 다양한 대상을 향해 자신의 경영 철학과 비전을 쏟아냈다. 하지만, 당시 삼성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회장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체계화해 18만 임직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회장의 분신으로 평가된 그룹 비서실과 핵심 임원들도 마찬가지.

프랑크푸르트 회의가 끝난 뒤 한달 쯤 지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건 이 회장. 8시간 넘게 외친 자신의 ‘질(質)의 경영’이 현장에 적용되는 기미가 별로 없는데 대해 이 회장은 매우 답답해 하고 있었다. 

이 회장: 질 경영이 왜 이리 더딘거죠?
비서실장: 양도 생각해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이 후 이 회장의 ‘전화 특강’은 1시간 20분 넘게 이어졌다. 이날 회장과 비서실장의 통화 내용은 임직원 교육용 자료로 쓰였다. 신경영 초기, 그룹 비서실 조차 이 회장의 경영철학과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살펴볼 게 이 회장의 경영관과 신경영의 핵심이며, 삼성의 오늘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 가운데 하나인 ‘질(質)의 경영’이다. 이게 뭘까? 이 회장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생산량을 줄여서라도 품질을 외고 불량품이 나오면 결함의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그 때까지 라인을 세워도 좋다.”
“결함은 암이다. 암부터 퇴치하지 못하면 조금도 못 나간다. 3만명이 만들고 6천명이 고치러 다니는 게 삼성전자의 현실이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삼성전자는 이미 1986년에 망한 회사다.”

'질의 경영'은 품질 뿐 아니라 기획, 디자인, 관리, 판매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질적인 혁신을 뜻한다.

이 회장은 93년 7월 독일을 거쳐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수행비서팀은 7월 17일 두툼한 문서하나를 팩스로 보낸다. ‘회장 경영철학의 이해’라는 제목이다.

그 내용은 다음 그래픽에 잘 담겨 있다.

1993년 삼성 '신경영선언' 당시 삼성 비서실이 만든 '회장 경영철학의 이해'라는 책자에 있는 신경영 개념도.
1993년 삼성 비서실이 만든 '회장 경영철학의 이해'라는 책자. 신경영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위기의식과 과거 반성의 토대에서 ⟶ 나부터 변화하고 ⟶ 질 위주의 경영으로 ⟶ 국제화와 복합화를 정착시켜 ⟶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 회장의 철학을 삼성인이 머리로 이해하는데도 한 달 이상 필요했다. 그만큼 쉽게 이해하고, 실행하기 어려웠다. 삼성 신경영은 삼성 뿐 아니라, 국내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인에게 디지털 세상을 안겨 주었고, 삼성은 세계 1위 상품을 20개 거느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같은 성과의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이건희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 엇갈릴 수 있지만 초일류기업을 향한 목표와 실천 전략, 과감한 추진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회장은 여러 회의에서 밝혔듯이 위기의식과 변화에 대한 의지는 부회장 취임부터 시작됐다. 스스로 “힘이 없어서” 제대로 실천할 기회가 없었다. 회장이 됐지만 변화가 없었다. 변화를 외쳤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측근에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나는 속았다. 비서실장, 사장, 팀장들이 모두 날 속였다. 집안에 병균이 들어왔는데도 5년, 10년간 나를 속였다. 측근들이 이 정도이니 임원들은 어느 정도이겠는가?”(1993년 7월, 일본 오사카회의)

자신의 말과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데 대한 속내를 이같이 표현했다.

“감정의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쓸쓸함, 씁쓸함, 허무함, 화가 나는, 울화통 터지는, 한심한, 체념하는...개인과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감정은 포기다. 나는 평생 두 번의 포기를 했다. 이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직장이냐?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분명히 말하지만 내 자신의 부귀영화를 하자는 게 아니다. 현재 내 재산이면 충분하다. 명예 때문이다. 성취감이다. 성취감은 여러분, 삼성, 대한민국이 잘 되게 하는 것이다.”(프랑크푸르트 회의)

TV브라운관 앞에 앉아있는 어린 시절의 이건희 회장. 그는 이런 TV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다 뜯어서 내부를 확인하는 '덕후'였다. 사진제공= 삼성
TV브라운관 앞에 앉아있는 어린 시절의 이건희 회장. 그는 이런 TV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다 뜯어서 내부를 확인하는 '덕후'였다. 사진제공= 삼성

다방면 '덕후' 이건희 회장

이런 ‘악조건’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개혁을 추진하고, 삼성에 자신의 경영철학을 정착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건희 회장의 몰입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는 중요한 성공 요소다. 18만 임직원의 거대 조직에서, 최측근인 비서실장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신경영을 펼친 것은 ‘끝장을 봐야 하는 몰입’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필요하면 파고들고, 분해하고, 연구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건희 회장은 ‘덕후’가 됐다. 한분야가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그의 몰입(덕후 기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회의에서 한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나는 일본에 있을 때 일본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짜리 비디오테이프 45권 짜리를 수십 번 봤다. 도쿠카와 이에야스 36회 이상, 도요토미 히데요시 10회 이상, 오다 노부나가 5~6회를 보았다. 이렇게 하려면 시간, 정신 집중을 해야한다. 나는 과거 1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어떤 이는 이를 ‘영화광의 취미생활’로 보지만, 이런 현상이 영화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다.

그는 ‘분해와 조립 덕후’다. TV와 VCR, 전자레인지 등 삼성전자의 신제품이 나오면 분해하고 조립했다. 판매하는 제품이 어떤 구조와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끝장론, 특유의 몰입이 가져온 결과다. 너무 몰입해서 조립을 못해 기술진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관심 영역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개, 자동차, 스포츠, 영화, 국내외 다큐멘터리 등. 이같은 덕후 기질은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보는 경영 스타일로 연결됐다. 그리고 입체적 사고와 복합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입체적 사고와 복합화는 모두 신경영의 핵심이며, 이 회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삼성이 내부 자료로 만든 ‘신경영 사고방법론’을 보면 입체적 사고의 뜻이 잘 드러난다.

“사고는 입체적으로 해야 한다. 평면적 사고가 아닌 사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까지 분해하고, 분석해 들어가 본인의 창의로운 발상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의 이같은 사고 체계는 뿌리 깊은 경험의 결과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가서 3년을 머물렀다. 스스로 친구도 없고, 외로운 생활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0 CES를 참관한 이건희 삼성회장이 3D 안경으로 신기술을 경험하고 있다. 사진제공= 삼성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0 CES를 참관한 이건희 삼성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3D 안경으로 신기술을 경험하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이학수 전비서실장등이 뒤에 서있다. 사진제공= 삼성

몰입과 집중, 입체적 사고의 전개

몰입과 집중, 이것이 입체적 사고로 연결되는 경영철학을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일본에서 나는 하루에 5~6편의 영화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다. 2년여 동안 본 것만도 1천 편은 넘을 것이다. 100~200편을 보고 나니 그때부터는 대충 다음 스토리를 예상하게 됐고,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서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촬영 당시 감독의 지시와 카메라맨의 위치, 심지어 배우의 마음가짐까지도 선명히 느끼게 됐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감독과 배우, 카메라맨과 조명기사의 입장이 되어 분석하고 평가하게 됐다. 마침내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도 피력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초등 5학년~중학교 2학년의 경험이다. 이 회장의 몰입과 분석, 입체적 사고의 깊은 뿌리를 보여준다. 

이 회장과 신경영의 핵심을 간추려 보면 ‘입체적 사고’로 이어진다.

입체적 사고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듣는 사람들이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삼성이 신경영 추진에서 초기에 임직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회장님 말씀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이 회장의 입체적 사고와 관련이 깊다.

입체적 사고는 ‘본질’에서 출발한다. 삼성에서 ‘업의 개념’은 곧 본질에 대한 이해를 뜻한다. 입체적 사고와 본질이 만나면 남들이 생각하기 힘든 창의적이고, 특별한 해법으로 이어진다.

한가지 예를 보자.

“달동네 가난을 구제하려면 ‘탁아소’(어린이 집, 직장 유치원 등)를 많이 지어야 한다.”
얼핏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이 회장의 말을 들으면 공감이 간다.

<달동네 주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려야 한다 ⟶ 여성의 사회 진출을 확대하려면 아이를 돌봐주는 ‘탁아소’를 지어야 한다 ⟶ 사회공헌 활동으로 전개한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이건희 식 해법을 도입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회장의 공과는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특히 몰입에서 출발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이를 통해 입체적이고 창의적 사고 체계, 이를 통해 삼성이 우리에게 준 긍정적 영향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의 사고 체계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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