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別抄 뱃길 탐사③-유구 왕국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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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別抄 뱃길 탐사③-유구 왕국 유물
  • 채바다
  • 승인 2015.12.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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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탐라와 유구(琉球·류큐) 왕국' 특별전(국립제주박물관) 은 오키나와에서 대여해 온 13~14세기 '수막새'기와는 13세기 고려기와를 비교하는 전시회로써 많은 화제를 일으켰다. 이 전시회에서 주목을 끌었던 주요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이 기와는 1955년, 오키나와(沖繩)현,우라소에서 출토된 기와에서 [癸酉年高麗瓦匠造;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 장인이 만들다] 명문(銘文)이 쓰여지고 있다.

 

▲어골문(魚骨文)

1982년, 수리성 발굴조사에서 대량의 고려기와에서 어골문이 나타났다.

어골문은 고려기와의 대표적인 무늬이다.

 

▲ 진도용장산성 출토 수막새(왼쪽)와 오키나와 우라소에 출토 수막새.(사진/ 국립제주박물관)

 

▲ 오키나와 암키와. 출토 계유년(1273년).으로 표시(사진 / 국립제주박물관)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삼별초가 진압된 해는 1273년. 이 기와에 새겨진 계유년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진도 용장산성 수막새에 새겨진 연꽃잎이 8개, 오키나와 것이 9개라는 것

오키나와 발굴 기와에서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 장인이 만들다(癸酉年高麗瓦匠造).'

여기에 근거하는 계유년은 1273년, 탐라의 삼별초가 모두 섬멸된 해이다.

이와 비슷한 년대의 고려기와'는 우라소에성 뿐만 아니라 슈리성(首里城) 등 여러 곳에서 출토되어 오래 전부터 알려지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려사'에서 최초로 유구국과 교류 기록은 중산왕(中山王) 찰도(察都)가 사신을 파견한 1389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연대 비교는 14년 차에 불과하다.

1231년. 원나라가 고려를 쳐들어왔다. 고려는 항몽시대를 맞는다. 고려는 40년을 버텼지만 칭기즈칸의 대 제국에 대항하기에는 역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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